얼마 전 촛불시위 이후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는데, 그 글에 썼듯 기업주의적 이익과 친일, 군사정권의 잔재, 종교적 극우 등의 권위주의적 세력이 다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을 막으려면 정치적 대안이 될 수 있는 진보, 아니면 최소한 비군국주의, 비극우 후보가 출마하고 또 뽑혀야 한다. 애당초 지금의 대통령 같지도 않은 대통령이 당선된 것도 정치적 대안이 너무나 빈약해서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중요성이 더욱 와닿는다.
그렇다면 생각나는 꽤 근본적인 질문. 말이 좀 되는 후보가 선거에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답을 제대로 알면 골치아픈 공부 안 하고 선거 전략가가 되어 돈을 떼로 벌고 있겠지만, 최소한 도움은 되는 내용을 이전에 온라인 비디오 (영어, 외부 링크)로 봐서 소개하고자 한다.
비디오 강연은 언론매체 연구 기관인 Media Matters의 폴 왈드만 (Paul Waldman)이 자기 책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책 제목은 '옳은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보수의 성공에서 진보가 배울 점' (Being Right Is Not Enough: What Progressives Must Learn from Conservative Success)이라는 제목인데... 길어서 왠지 폭력욕이 생기기는(?) 하지만 어쨌든 제목에서 대충 내용이 나오긴 한다.
왈드만이 제시하는 공화당의 성공 요인이자 민주당, 나아가가서는 어느 나라든 진보당이 배워야 할 점은 상당히 흥미롭다. 개인적 의견도 추가해서 논지를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정책만으로는 부족하다. 진보당이 선거에 지는 건 정책이 지지를 못 받아서가 아니다. 언론 조사 결과를 보면 대개의 시민은 진보적 정책을 지지한다. 꽤 당연한 일이다. 진보 정책은 서민에게 우호적인 게 기본이고, 그렇지 않은 당은 진보적이라고 할 수도 없으니까. 따라서 내용만으로 본다면 선거마다 진보당이 휩쓸어야 한다. 그런데 왜 현실은 그렇지 않을까?
답은 다들 알겠지. 대다수의 유권자는 정책을 보고 투표하지 않는다. 각 후보 정견을 자세히 보는 사람이 인구 중 몇%나 될까? 미국보다 우리나라는 좀 낫다고 보지만, 그렇다 해도 왠만큼 정치에 관심 있고 정보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거 일일히 보고 분석해서 투표하는 일은 없다. 게다가 사실 공약을 내건다 해도 지킨다는 보장도 없고. 그렇다면 무엇을 보고 투표할까.
대다수의 유권자는 정책이 아닌 사람을 보고 투표한다고 왈드만은 말하고 있고, 내가 보기에도 그게 현실에 맞는다. 정책을 골치아프게 따지는 대신 그 사람에 대한 느낌으로 투표한다는 얘기. 먹물 좀 먹은 사람들은 그 점을 욕하지만, 위에 얘기한 공약(公約)이 공약(空約) 되는 문제를 생각해 보면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고 살아왔는지 보는 건 말보다 확실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후보를 개인적으로 아는 게 아닌 이상 '사람'이란 결국 이미지라는 점. 그리고 보수당 후보는 정책으로 싸우면 진다는 것을 잘 알기에 더더욱 선거를 정책이 아닌 사람 문제로 끌어가려고, 자신과 상대의 이미지를 끝없이 정의해간다. 나는 여러분의 전통을 지켜줄 사람, 저쪽 후보는 전통을 무너뜨리려는 위험분자 하는 식으로.
그래서 선거란 결과적으로 자신과 상대의 이미지를 정의하는 싸움이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자신을, 그리고 상대방을 정의하는 데 실패하면 선거에 이기기는 어렵다. 상대는 전통의 수호자, 자신은 전통의 적 하는 식으로 시쳇말로 '말려'버리면 그게 곧 자신의 공적 얼굴이 된다. 반면 상대는 서민의 적, 자신은 서민의 수호자로 정의할 수 있다면 훨씬 싸워볼만 하다. 그렇다면 자신과 상대를 정의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가? 이에 대해 왈드만은 두어 가지 제안을 한다.
우선, 구체적 정책보다 기반 신념을 우선 제시한다. 이게 보수에서 아주 잘하는 것이기도 한데, 구체적인 내용은 얘기 안하고 (어차피 신경쓰는 사람 별로 없고,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면 찍을 사람 별로 없..) '전통' '안전' '자유' 같은 구호에 강한 것이 그 이치다. 복잡한 내용은 찾아보려면 누구나 찾아볼 수 있지만, 매체상의 스쳐가는 이미지 싸움에는 일단 강하고 단순한 표어를 제시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진보 쪽에서도 기반 신념을 표현하는 구호 싸움에 주눅이 들 이유가 없다. 구호 이면의 알맹이까지 충실하니 더욱.
이와 관련해 왈드만은 진보의 기본 신념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 (We're all in it together)로 요약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공공 의료보험, 사회보장제도, 차별 철폐 등 진보적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복잡할지 몰라도, 그 배후에는 결국 사회 구성원 중 억압받거나 비참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곧 나의 일이라는 신념이 깔려 있다. 이렇듯 복잡한 함의를 단순하게 요약해 표현하면 이미지 만들기에는 한결 좋다. 반대로 상대방 후보는 강자만을 위한 착취적 사회, 자기만을 위해 살아가는 이기심을 대표한다고 정의해가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되겠고.
또한, 왈드만은 뚜렷한 신념과 정견으로 자신을 정의하라는 충고도 한다. 정책의 자세한 내용은 몰라도 유권자는 우유부단하고 의기소침한 후보보다는 뭔가 확고하게 믿고 추진하는 정책이 있는 후보에게 더 긍정적으로 반응한다. 심지어는 그 후보의 신념이 자신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언가 그 사람을 대표하는, 그리고 그 사람이 일관적으로 추진해온 정책이 있다면 신념이 확고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생길 뿐 아니라 그 정책에 대해 유권자의 주의도 환기할 수 있는 효과가 있다. 그런 것이 바로 후보를 정의하는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고.
정책이 아니라 정치로 선거로 하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내가 보기에 선거의 진정한 효용은 정치에 무능하면 정책에도 무능하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선거 중 후보로서의 자신을 팔지 못하는 사람이 과연 당선되더라도 정책을 제대로 펼칠 수 있을까? 여론과 이익 충돌, 정치적 반대의 모든 장애를 뚫고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을까? 결국 정책을 제대로 펼치려면 정치도 잘해야 한다. 자신을 팔아서 당선되는 기술은 정책을 파는 기술과 직결된다고 본다.
물론 진보를 정치와 이미지 만들기에 무능하게 하는 구조적인 요소도 많다. 언론의 기업 지배와 소유 독점에 따른 편파성이 대표적이겠지. 왈드만이 있는 단체 Media Matters 역시 그런 편파성을 연구하고 주의를 환기시키는 일을 하고 있고. 그래서 정치를 바꾸려면 선거운동만으로는 부족하기도 하다. 정책 연구, 언론 비판, 시민운동 등 종합적인 움직임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왈드만이 한 얘기 중 흥미로운 것은 권력에 대한 진보의 불신이다. 권력을 원하는 보수파에 반해 진보의 이상은 권력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라고. 물론 비판과 저항은 민주 사회의 기반이지만, 권력을 잡고 정책을 펼칠 수 없다면 변화는 반쪽일 수밖에 없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민권운동을 하고 그 여론을 반영해 린던 존슨 대통령이 민권법을 통과시킨 환상의 합작에서 볼 수 있듯, 시민 저항과 정치적 의지가 둘다 필요하다. 그 수단은 정치이며, 그것이 정치를 하고 선거에 이겨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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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articles found.
- 2008/06/27 선거에 이기려면 (6)
- 2008/06/12 촛불시위, 그 이후는? (4)
- 2008/06/02 너희들은 늘 묻지 (6)
- 2008/05/29 촛불 하나
촛불시위, 그 이후는?
TAG 시사, 촛불전국을 휩쓰는 촛불 문화제와 시위의 열풍을 외국에서나마 지켜보고 지인에게 이야기를 전해듣는 것은 벅차면서도 조마조마한 경험이다. 벅찬 이유는 (거의) 누구나 느끼고 있는 것이겠지. 국민이 거리로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재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켜보면서 동시에 조마조마하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촛불시위가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해도 시위란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활동이며, 확고한 목적이 없이는 추진력을 잃기 쉬우니까. 촛불시위의 끝이 흐지부지하다면 풀뿌리 정치활동 자체에 대한 냉소가 생길까봐 더욱 불안하다.
일단은 쇠고기 수입 문제가 가장 눈에 띄고, 정말 재협상까지 하게 된다면 그건 대단한 승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쇠고기 수입은 이번 정권에 산적한 문제 중 오히려 덜 심각한 편이라고 본다. 광우병에 대한 모든 과학적 증거가 아직 불확실하고, 과연 국산 쇠고기는 안전한가 하는 문제가 남기도 하고.
물론 국민 건강과 생명에 대한 중대한 문제에 국민을 납득시킬 노력조차 하지 않고 밀어붙인 점이 이 정권의 오만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 사실이고, 정책의 정당성 확보의 총체적 실패의 결과가 지금의 시위라는 점에서 중요한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대운하 사업, 포털 사이트와 방송국에 대한 압력과 언론의 자유 문제, 경제적 양극화를 유발할 소득세 개편 문제 등이 오히려 더 심각하지 않을까.
이러한 수많은 사안을 공론화하고, 논의하고, 이들 문제에 대해 압력을 행사할 틀이 되지 않으면 촛불시위는 국민 감정이 가라앉을 때쯤 스러지기 쉽다. 정부의 멋진 과잉반응 덕분에 사람들 뇌리에서 쉽사리 사라질 문제는 아닐 것 같지만. 그래서 촛불시위는 기회이자 위기이며, 한국 정치의 판도를 앞으로 어쩌면 수십년 동안 좌우할 수 있는 이 순간의 원동력이자 상징이다.
결국 '이명박이 싫다'는 것은 매우 공감 가는 감정이기는 하지만(...) 촛불시위를, 그리고 그 이상으로 그 뒤에 있는 풀뿌리 정치운동을 오래 지속하기에는 불충분하다. 단순한 안티 이명박으로 그치는 대신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이들 대안을 꾸준히 연구하고 공론화하고, 또 이명박 주변에 있는 친일과 군사독재의 잔재, 기업주의, 종교적 극우 세력에 대한 정치적 대안이 되는 후보를 내보내고 당선시켜야 근본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촛불시위는 분명 좋은 시작이지만, 부정 (不正)에 대한 부정(不定)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정의에 대한 긍정까지 가려면 촛불시위는 끝이 아닌 더 폭넓고 종합적인 정치적 노력의 시작이어야 한다. 그 촛불이 허무하게 꺼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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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켜보면서 동시에 조마조마하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촛불시위가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해도 시위란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활동이며, 확고한 목적이 없이는 추진력을 잃기 쉬우니까. 촛불시위의 끝이 흐지부지하다면 풀뿌리 정치활동 자체에 대한 냉소가 생길까봐 더욱 불안하다.
일단은 쇠고기 수입 문제가 가장 눈에 띄고, 정말 재협상까지 하게 된다면 그건 대단한 승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쇠고기 수입은 이번 정권에 산적한 문제 중 오히려 덜 심각한 편이라고 본다. 광우병에 대한 모든 과학적 증거가 아직 불확실하고, 과연 국산 쇠고기는 안전한가 하는 문제가 남기도 하고.
물론 국민 건강과 생명에 대한 중대한 문제에 국민을 납득시킬 노력조차 하지 않고 밀어붙인 점이 이 정권의 오만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 사실이고, 정책의 정당성 확보의 총체적 실패의 결과가 지금의 시위라는 점에서 중요한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대운하 사업, 포털 사이트와 방송국에 대한 압력과 언론의 자유 문제, 경제적 양극화를 유발할 소득세 개편 문제 등이 오히려 더 심각하지 않을까.
이러한 수많은 사안을 공론화하고, 논의하고, 이들 문제에 대해 압력을 행사할 틀이 되지 않으면 촛불시위는 국민 감정이 가라앉을 때쯤 스러지기 쉽다. 정부의 멋진 과잉반응 덕분에 사람들 뇌리에서 쉽사리 사라질 문제는 아닐 것 같지만. 그래서 촛불시위는 기회이자 위기이며, 한국 정치의 판도를 앞으로 어쩌면 수십년 동안 좌우할 수 있는 이 순간의 원동력이자 상징이다.
결국 '이명박이 싫다'는 것은 매우 공감 가는 감정이기는 하지만(...) 촛불시위를, 그리고 그 이상으로 그 뒤에 있는 풀뿌리 정치운동을 오래 지속하기에는 불충분하다. 단순한 안티 이명박으로 그치는 대신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이들 대안을 꾸준히 연구하고 공론화하고, 또 이명박 주변에 있는 친일과 군사독재의 잔재, 기업주의, 종교적 극우 세력에 대한 정치적 대안이 되는 후보를 내보내고 당선시켜야 근본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촛불시위는 분명 좋은 시작이지만, 부정 (不正)에 대한 부정(不定)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정의에 대한 긍정까지 가려면 촛불시위는 끝이 아닌 더 폭넓고 종합적인 정치적 노력의 시작이어야 한다. 그 촛불이 허무하게 꺼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면.
너희들은 늘 묻지
TAG 시사, 촛불너희들은 늘 묻지. 배후가 누구냐고.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 유관순이라는 10대 소녀가, 그리고 수많은 독립열사가 문초받았던 바로 그 질문을 이제는 민주적으로 (나름) 선출한 대통령이 추궁하고 있다는 사실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건 일제 협력 시절부터 이어오는 정치적 유전자일까, 아니면 모든 억압의 공통 분모일까.
그래, 당신들은 상상할 수 없겠지. 연줄을 만들고 줄을 잘 서서 생기는 혜택 외에는 행동의 동기가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어. 잘 되면 뭔가 얻으려고 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누가 조작하고 선동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의분에 차서, 자기가 판단해서 들고 일어서는 사람도 있다는 걸. 이 상황에 배후가 있다고 상상하는 당신들의 세상이란 어떤 곳일까? 화가 나려고 하다가도 불쌍해, 그 초라하고 삭막한 영혼이.
너희들은 묻지만, 때리고 잡아 가둬도, 군화로 짓밟고 모든 안전 수칙을 무시해서 시력마저 빼앗아도 그들은, 우리는 대답할 말이 없어. 배후를 생각할 수밖에 없고 배후를 찾아내야 하는 너희들과는 다른 세상에 살아가니까. 슬픈 일도 많고, 잃는 것도 많고, 한도 쌓이지만, 이쪽이 조금은 더 풍요롭고 윤택한 곳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그 변하지도 않는 지겨운 질문에 할 수 있는 대답이란 그렇게 멀지도 않은 옛날 어느 10대 소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배후는 나와 우리들, 아무리 밟고 죽여도 일어나고 또 일어나는 우리 국민이라고. 그건 어떤 곤봉이나 살수차나 심지어는 총과 탱크로도 막아낼 수 없는 정신이며,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신념의 빛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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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당신들은 상상할 수 없겠지. 연줄을 만들고 줄을 잘 서서 생기는 혜택 외에는 행동의 동기가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어. 잘 되면 뭔가 얻으려고 해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누가 조작하고 선동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의분에 차서, 자기가 판단해서 들고 일어서는 사람도 있다는 걸. 이 상황에 배후가 있다고 상상하는 당신들의 세상이란 어떤 곳일까? 화가 나려고 하다가도 불쌍해, 그 초라하고 삭막한 영혼이.
너희들은 묻지만, 때리고 잡아 가둬도, 군화로 짓밟고 모든 안전 수칙을 무시해서 시력마저 빼앗아도 그들은, 우리는 대답할 말이 없어. 배후를 생각할 수밖에 없고 배후를 찾아내야 하는 너희들과는 다른 세상에 살아가니까. 슬픈 일도 많고, 잃는 것도 많고, 한도 쌓이지만, 이쪽이 조금은 더 풍요롭고 윤택한 곳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그 변하지도 않는 지겨운 질문에 할 수 있는 대답이란 그렇게 멀지도 않은 옛날 어느 10대 소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배후는 나와 우리들, 아무리 밟고 죽여도 일어나고 또 일어나는 우리 국민이라고. 그건 어떤 곤봉이나 살수차나 심지어는 총과 탱크로도 막아낼 수 없는 정신이며,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신념의 빛이니까.
촛불 하나
TAG 시사, 촛불지금의 대통령이 당선되면 권위주의적 군국화 경향이 돌아올 거라는 예상은 했다. 자유를 하나하나 빼앗아갈 거라고, 친기업 정책을 펼치며 한국을 점점 더 착취적인 경제구조의 불평등하고 위험한, 이름만 민주주의인 나라로 만들어갈 거라고.
그리고 난 우리 국민이 불평과 냉소만 늘면서 무기력해질 줄 알았다. 그래서 별다른 저항도 없이 그 긴 밤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미리 실망했었고, 정권뿐만 아니라 국민의 무기력과도 긴 싸움을 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명박에 대한 생각은 틀리지 않았지만, 한국 국민에 대해서는 내 예상이 정말 다행히도 틀렸다. 내가 한국 사람을 잘못 봤었다. 우리가 이렇게 들고 일어났다는 사실은 내게는 벅찬 감동이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희망이기도 하다.
전국민의 축제처럼 된 시위가 잠깐 반짝하고 꺼질 불이 아니라 마음에서 마음으로 옮겨가는 더 큰 빛이 되기를 바라며, 태평양을 넘어 넷상으로나마 나도 응원하는 마음에 촛불을 밝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