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지명이나 역사적 배경은 생각나지 않지만, 점령지의 남자를 학살하는 걸로 악명이 높은 군주에 항복한 성 이야기를 들어보았는지 모르겠다. 저항 끝에 성문을 열 수밖에 없게 되자 여자들은 적군에 대표를 보내 여자들은 두 팔에 들고 갈 수 있을 만큼의 가장 귀하고 필요한 재물만을 가지고 평화롭게 떠나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군주는 이를 허락했다.
다음날 아침, 성주 부인을 포함해 성의 모든 여자들은 패물도, 금화도 아닌 남편을 있는 힘을 다해 양팔에 안고 성문을 나왔다. 이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한 군주는 남자들을 죽이지 않았을 뿐더러 그 성의 주민에게는 유례없이 온정적으로 대했다고 한다. 여성들의 기지와 헌신, 숨은 낭만주의자였던 정복 군주, 그리고 아내 품에 공주님 안기로 안겨나온 남자들(...)이 기억에 남는 이야기였다.
20세기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그것도 배경은 2차대전 중 독일, 상대는 히틀러의 악명높은 게슈타포였다. 1943년 베를린 중심부의 로젠스트라세 (Rosenstrasse, 장미의 거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스탈린그라드에서 패배한 독일 제3 제국은 베를린에 잔류한 모든 유대인을 수용소로 강제이송하는 결정을 내렸다. (전쟁 중에 왜 그딴 데에 힘을 쏟았는지는 미지수다.) '아리아인'과 결혼했기에 그동안 강제이송을 피했던 이들 유대인은 대부분 독일 여자와 결혼한 남자들이었다. 이송을 앞두고 이들은 로젠스트라세 2-4번지에 갇혀있었다.
금새 로젠스트라세에는 남편이 체포당한 여자들이 "남편을 돌려달라"며 모이기 시작했다. 목격자들은 첫날에 600여명이 모였으며, 일 주일 동안 총 6000명 정도가 참여했다고 추산한다. 많은 여인들이 출근하는 길에 이 거리에 꼬박꼬박 들렀다. 무기도, 조직도, 지도자도 없는, 대부분 여성인 시위대에 경찰은 몇 번이나 발포 위협을 하며 해산하려고 했지만, 이들은 물러나는가 싶으면 다시 몰려왔다. 체포는 기정사실 갈았고, 유혈극이 벌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인 상황이었다.
이렇게 며칠 동안이나 시위가 끊이지 않자 게슈타포는 기관총을 설치하고 총구를 여인들에게 겨누었다. 누구라도 모골이 송연할 상황에 시위대는 순간 주춤주춤 물러났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앞다퉈 도망쳐도 시원찮은데 이 독일 아줌마들, 오히려 화가 머리끝까지 뻗쳤다. 어차피 죽을 거면 소리라도 지르고 죽어야지. "살인자! 살인자! 살인자! 살인자!" 죽음을 각오한 여인들의 노호가 장미의 거리를 메웠다.
히틀러의 선전관 괴벨스는 베를린의 나치당 지구장이기도 했다. 여인들을 거리에서 쏴죽이는 건 도덕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나치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사실 유대인이었으면 벌써 죽거나 끌려갔다.) 그러나 괴벨스는 파급 효과를 염려했다. 가뜩이나 불리한 전황에 민심 이반을 조심해야 하는데 베를린 심장부에서 시위가 자꾸 길어진다면, 혹은 독일 여인들이 게슈타포에 사살당하면 자칫 더 큰 저항을 부를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괴벨스는 여인들의 요구대로 남편들을 석방하라고 명령했다. 그에 따라 근 2천 명이 풀려났고, 그들도 그들 가족도 더는 당국에 아무 해코지도 당하지 않고 대부분 종전까지 무사히 살아남았다.
이 일화는 제3 제국의 그 살벌한 상황 중에도 시민 불복종으로 놀라운 결과를 낸 사례라는 점에서 독일 국민들이 만약에 더 적극적으로 저항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하는 불편한 의문을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세가 기울면서 당국이 오히려 시민의 눈치를 봐야 했고, 시위 자체가 매우 비정치적인 성격이었고, 시위대가 주로 독일 여성이었던 점 등 특수한 상황이 성공을 이끌어냈다고 본다. 따라서 로젠스트라세를 가리키며 '독일 국민이 저항했으면 되지 않느냐'고 일반화하기는 좀 섣부르지 않을까. 물론 아무리 독재라도, 아니 독재일 수록 정부는 단합한 시민을 두려워한다는 일반화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드는 생각이라면 아줌마는 역시 무섭다는 거(...) 게슈타포가 불쌍하다고 순간이나마 생각한 건 평생 처음이었다. 애들 아빠가 위험해서 눈에 보이는 게 없는 600명의 아주머니가 '살인자!'를 외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아무리 게슈타포라도 사람인 이상 평생 엄마한테 혼난 모든 기억이 총천연색 블루레이 동영상으로 떠오르면서 식은땀이 흘렀을 거다.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세, 생사람 인생을 하루아침에 절단내는 독재가 아무리 대단해 보여도 결국 땅 위가 아니면 무엇이 설 수 있을까. 모든 권력과 모든 삶의 기반에 있는 것은 평범한 사람, 보편적이고 소박한 감정이다. 옆집 아줌마가 아저씨를 위해서라면 총부리 앞에서도 눈을 부릅뜰 수 있는 마음이 바로 권력도 이기는 힘이다. 그래서 권력은, 독재는 언제나 시민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료출처
Rosenstrasse Documentary
Rosenstrasse Protest
Searching for 역사
3 articles found.
- 2009/10/13 로젠스트라세 - 시민 저항의 힘에 대하여 (2)
- 2007/02/13 미국 인디언 박물관 (4)
- 2006/11/22 파리넬리 (3)
미국 인디언 박물관
TAG 역사공짜 박물관들이 집에서 지척이다 보니 심심하면 그중 하나를 가기도 하는데, 오늘은 산책하는 김에 미국 인디언 박물관 (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에 다시 들렀다. 원래 미대륙의 토착 부족들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특히 미국 인디언 박물관은 그 존재 자체에 담긴 중의 때문에 더욱 흥미가 가는 곳이다. 한편으로는 국가에서 만들고 운영하는 박물관이 그 국가의 근원적인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다분히 승자의 우월감의 산물로 보일 수 있다는 점. 아마 그런저런 이유로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중 설립 순서가 늦었던 것이겠지.
다행히도 박물관은 기획과 설립 과정에서 많은 부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하고, 그런 참여가 특히 잘 드러나는 부분이 인디언 부족들의 과거 못지않게 현재 모습에도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 사실 주류 문화의 입장에서야 인디언들은 (우리 입장에서야 체로키, 나바호, 셰이엔, 수우, 라코타, 아파치, 코만치, 이로쿼이, 알공퀸, 피마, 세미놀, 치카소 등등등 + 수많은 하위 구분이 잘 눈에 들어올리 없으니) 영원히 자연과 공존할줄 아는 고귀한 야만인의 모습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주는 것이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죽여댔음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살아남은 사람들 입장에서야 비극적으로 사라져주는 예의를 지키기란 참 힘든 일 아니겠는가. 우리에게 미국 원주민들의 이야기가 슬프지만 낭만적인 과거라면, 미국 원주민들 자신에게 역사는 편리하게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니라 매일 새로 만들어가야 하는 그들 자신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훔친 유물의 전시에 그치지 않고 원주민들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것은 높은 점수를 줄만하다고 생각한다.
조금 다른 얘기를 하자면, 아주 이질적인 집단보다는 비슷한 집단이 더 미워하기 쉽게 마련이다. 또한 세상에 이웃끼리의 증오만한 것도 없게 마련. 우리나라와 일본, 영국과 프랑스, 발칸반도 국가들을 생각하면 간단하다. 그러니 쉽게 짐작할 수 있었던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디언 부족들이 백인들보다 부족끼리의 적대감이 더 큰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알고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하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기나긴 역사속에서 백인은 아주 최근에야 나타난 존재이고, 그 전에 수천년간 자기들끼리 싸운 역사의 무게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애당초 첫 추수감사절 때 굶어죽어가던 백인들을 먹여살려준 '친절한 인디언'들은 사실 부족연합간의 대립 속에서 치밀한 정치적 계산을 하고 행동한 것이라는 기사를 흥미롭게 읽은 기억도 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난 어떤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고귀하다는 발상 자체가 숨은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해서 난 박물관의 설립 과정에서 인디언 부족들과 연방정부간의 관계 못지않게 인디언 부족간의 역학이 어땠을까 궁금하다. 아메리카 대륙은 유럽인들이 나타나기 수천, 수만년 전부터 이미 복잡하고 유동적인 연맹과 적대의 장이었으니까. 인간이 살아온 곳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하지만 그런 숨겨진 속사정들은 외부인으로서는 끝내 알 수 없는 것들이겠지. 좋든 싫든 역사는 수백개의 서로 다른 부족들을 '인디언'으로 묶었고, 사실상 자신을 그냥 '인디언'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좋은데도 (음반이든 잡지든 뭐든 인디언들 자신이 참여한 매체를 한번 보길. 누구 하나 이름 나오면 반드시 어느 부족인지부터 나온다) 그들의 다양성은, 그리고 복잡한 사정들은 밖에서 볼 때면 그 이름표의 획일성에 묻혀 잘 보이지 않게 마련이다. 뭐 다 그렇고 그런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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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박물관은 기획과 설립 과정에서 많은 부족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하고, 그런 참여가 특히 잘 드러나는 부분이 인디언 부족들의 과거 못지않게 현재 모습에도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 사실 주류 문화의 입장에서야 인디언들은 (우리 입장에서야 체로키, 나바호, 셰이엔, 수우, 라코타, 아파치, 코만치, 이로쿼이, 알공퀸, 피마, 세미놀, 치카소 등등등 + 수많은 하위 구분이 잘 눈에 들어올리 없으니) 영원히 자연과 공존할줄 아는 고귀한 야만인의 모습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주는 것이 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죽여댔음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살아남은 사람들 입장에서야 비극적으로 사라져주는 예의를 지키기란 참 힘든 일 아니겠는가. 우리에게 미국 원주민들의 이야기가 슬프지만 낭만적인 과거라면, 미국 원주민들 자신에게 역사는 편리하게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니라 매일 새로 만들어가야 하는 그들 자신의 이야기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훔친 유물의 전시에 그치지 않고 원주민들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것은 높은 점수를 줄만하다고 생각한다.
조금 다른 얘기를 하자면, 아주 이질적인 집단보다는 비슷한 집단이 더 미워하기 쉽게 마련이다. 또한 세상에 이웃끼리의 증오만한 것도 없게 마련. 우리나라와 일본, 영국과 프랑스, 발칸반도 국가들을 생각하면 간단하다. 그러니 쉽게 짐작할 수 있었던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디언 부족들이 백인들보다 부족끼리의 적대감이 더 큰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알고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하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기나긴 역사속에서 백인은 아주 최근에야 나타난 존재이고, 그 전에 수천년간 자기들끼리 싸운 역사의 무게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애당초 첫 추수감사절 때 굶어죽어가던 백인들을 먹여살려준 '친절한 인디언'들은 사실 부족연합간의 대립 속에서 치밀한 정치적 계산을 하고 행동한 것이라는 기사를 흥미롭게 읽은 기억도 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 아닌가?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난 어떤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고귀하다는 발상 자체가 숨은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해서 난 박물관의 설립 과정에서 인디언 부족들과 연방정부간의 관계 못지않게 인디언 부족간의 역학이 어땠을까 궁금하다. 아메리카 대륙은 유럽인들이 나타나기 수천, 수만년 전부터 이미 복잡하고 유동적인 연맹과 적대의 장이었으니까. 인간이 살아온 곳마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하지만 그런 숨겨진 속사정들은 외부인으로서는 끝내 알 수 없는 것들이겠지. 좋든 싫든 역사는 수백개의 서로 다른 부족들을 '인디언'으로 묶었고, 사실상 자신을 그냥 '인디언'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좋은데도 (음반이든 잡지든 뭐든 인디언들 자신이 참여한 매체를 한번 보길. 누구 하나 이름 나오면 반드시 어느 부족인지부터 나온다) 그들의 다양성은, 그리고 복잡한 사정들은 밖에서 볼 때면 그 이름표의 획일성에 묻혀 잘 보이지 않게 마련이다. 뭐 다 그렇고 그런 거겠지.
빅터: 우선 바보같이 웃지좀 마. 인디언은 웃는 게 아니라고. 좀 근엄해져봐. 성깔있어 보이지 않으면 백인들한테 우습게 보이니까 전사처럼 보여야돼. 방금 들소 한마리 잡고 온 것처럼 말야.
토마스: 야, 근데... 우리 부족은 들소 사냥한 적 없잖아? 물고기 잡았지.
빅터: 방금 낚시하고 온 사람처럼 보이고 싶냐? '연어와 함께 춤을' 찍어? 낚시꾼이 무서워 보일 것 같아? 전사처럼 보여야 된다니까. 것봐, 훨씬 낫지. 두번째로, 말수를 줄여. 신비롭게 보여야 한다구. 비밀이 있어 보여야 돼, 알어? 대지하고 대화하는 사람처럼 말야.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거야. 바로 그거야! 그래야 위험해 보이지.
- 영화 Smoke Signals 中
파리넬리
TAG 가사, 비디오, 비평, 역사, 영화, 음악편지: 드디어, 파리넬리.
오늘밤 우리의 오랜 대립이 끝을 맺는구나.
신 앞에서 우리의 빚을 정산하자.
두 사람의 소년기에 형이 약속한 오페라를 기억하는가?
그가 얼마나 흥분하며 오페라 이야기를 했는지?
그것이 네 거세의 고통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울부짖는 양심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는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는가?
핸델: 이제 진실을 직시할 때가 왔다.
유년기부터 너를 괴롭혀온...
알고 있었으면서 어째서 외면하는가?
너를 거세시킨 형에게 재능을 바쳐왔음을.
형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핸델의 얼굴에 침을 뱉었지.
네가 당한 것과 같은 짓을 나에게 했구나.
나의 상상력을 거세했어.
나는 다시는 오페라를 쓰지 않을 것이다.
너에게 처음 알리는 것이며, 오로지 너의 책임이다.
나에게 빼앗은 노래를 끝까지 부를
힘을 달라고 신께 기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파리넬리.
Farinelli Il Castrato (카스트라토 파리넬리)는 제목 그대로 18세기의 유명한 카스트라토 까를로 브로스키, 예명 파리넬리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아닌만큼 뭐, 허구적 가공은 필연적으로 들어갔지만. 아이팝에서 공짜로 해주길래 보느라 밤늦게까지 감동먹었던 영화이다. (시하야님도 끌어들여서 둘이서 MSN으로 수다떨면서 봤다는 전설이..) 수려한 영상과 아름다운 노래, 배신과 증오를 뛰어넘는 예술혼과 사랑, 마지막에는 용서와 화해로 이어지면서 줄곧 사람을 놔주지 않는 감정선...
특히 한참 옛날 노래들인데도 파리넬리가 초기에 불렀던 형의 노래들과 나중에 핸델의 노래를 부를 때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특별히 클래식에 정통한 것도 아닌데도 기교만 부리고 가벼운 곡과 진중한 감동을 주는 곡은 내가 듣기에도 차이가 났다. 영화에서 핸델이 파리넬리의 적수로 나오지만, 그러면서도 파리넬리의 목소리를 진정 해방시켜준 것도 핸델이었다는 것은 참 역설적.
Venti, Turbini (바람이여, 회오리여) - 1절
Di speranza un bel raggio
Ritorna a consolar l'alma smarrita;
Sì adorata mia vita!
Corro veloce a discoprir gl'inganni;
Amor, sol per pietà, dammi i tuoi vanni!
희망의 서광이 다시 한번
내 요동치는 영혼에 비추게 하라
사랑하는 이여!
나를 기만한 자들을 치러 이제 달려가니
사랑의 큐피드여, 불쌍히 여기어 날개를 달아주오!
카스트라토란 참 여러가지 면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남자가 입을 여니까 소프라노 목소리가 나오는데 한편으로는 소름끼치면서도 얼마나 멋진지... (영화의 목소리는 낮은 소프라노와 테너를 합성했다고 들었다.) 카스트라토가 거세된 남자이면서도 의심의 여지 없이 '남자'라는 점이라든가, 생식력이 없으면서도 성욕도 있고 여자들이 따르는 점이라든지.. (실제로 성욕 자체는 적을지 몰라도 거세된 남자들도 발기도 되고 다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존재가 있을 때 그의 주변에서는 끝없는 갈등과 변화, 경계의 재편성이 있게 마련이다. 파리넬리가 바로 그렇다.
카스트라토의 역사는 의외로 19세기 후반까지도 이어져서, 가장 늦게까지 유지했던 이탈리아가 1870년에 법으로 금지했다. 1902년 레오 13세의 포고로 영원히 교회 음악에서 카스트라토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고 교회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카스트라토 알레산드로 모레스키가 1913년 떠나갔으니, 카스트라토가 사라져 간 것은 아주 옛날 일도 아닌 것이다.
Venti, Turbini - 2절
Venti, turbini, prestate
Le vostre ali a questo piè!
Cieli, numi, il braccio armate
Contro chi pena mi diè!
바람이여 회오리여, 나의 발걸음에
그대들의 날개를 빌려주오
하늘이여 신들이여, 나의 팔을 강하게 하소서
나에게 고통을 준 자들에게 대적하도록!
현대에는 매우 드물게 거세 없이 호르몬관계가 비정상인 카스트라토나 특수훈련을 받아 카스트라토 음역을 내는 가수는 있을지 몰라도 음악을 위해 어린 소년을 거세하는 야만적인 풍속은 사라졌다. (그렇게까지 해도 가수로 성공하는 비율은 극히 낮았다는 점이 또 비극이지만...) 실제로 당시에 카스트라토를 위해 작곡된 곡 중에는 오늘날에는 공연이 불가능한 것도 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비록 잔혹한 야만성의 산물이지만 파리넬리와 같은 위대한 예술가의 목소리를 듣고 그 아름다움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카스트라토를 부자연스러운 존재라고 혐오한 영화 속의 핸델마저도 결국에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 비인간적 풍속이,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천상의 목소리는 그 고통의 깊이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진흙 속에 피어난 연꽃처럼...
Lascia ch'io pianga (울게 하소서)
Lascia ch'io pianga mia cruda sorte,
E che sospiri la libertà.
Il duolo infranga queste ritorte
De' miei martiri sol per pietà.
울게 하소서
나의 고통스런 운명에
한숨으로 나는
자유를 갈구하나니
이 고통으로 인하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어
이 환난의 사슬이
끊어지기 간구하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