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딱한 감동, '축복하소서'

요즘은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본방사수는 아니고 VOD로 한꺼번에 보다 보니 지난주에 한 이틀 정도는 드라마만 보며 폐인으로 지내기도 했다. 덕분에 어제는 밀린 일 하느라 샐러드와 파워바만 먹고 종일 뛰어야 했으니, 오호 통재라.

이것저것 하고싶은 얘기가 많은 드라마이지만 일단 지금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극중에 나오는 '축복하소서'라는기도문이다. 다이빙에 미친 청년 호섭과, 호섭의 요리연구가 어머니의 제자인 연주가 마음을 키워가는 동안 연주가 호섭에게 소개하는 기도시인데, 호섭도 그랬지만 나도 몇 구절 듣고 코끝이 찡해졌다. 각자 열심히 일하고 자기 몫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이 드라마와 어울리는 노동 찬가이기도 하고, 연주처럼 나도 보고 힘을 내고 싶어서 한 번 찾아보았다.
각자 읽고 판단하는 거니까 먼저 시 본문을 적어놓고 더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정말 좋은 시이니까 읽어봐서 손해는 안 날 거다. 본문은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홈피에서 퍼왔다.


축복하소서

하느님,
당신의 사랑과 권능으로 축복하실 양이면
먼저 정직하고 성실한 밥벌이꾼들을 축복하소서.
저들의 건강한 아내들을 축복하시되,
아홉 남매를 낳아 기르느라 힘들어도
생명을 하느님께서 주셨음을 감사하여
번째 잉태를 허락하시면 기꺼이 낳겠다는
위대한 모정에 축복하소서.

모든 정직한 생산자들을 축복하시되
평생 천직으로 알고 농사지은 밭에서
햇감자를 수확하며
갈퀴 손으로 웃음을 가린
소박한 행복마저 내보이기 수줍어하는
촌부에게 축복하소서.

장님이면서도 병약한 아내를 위해 장작을 패고,
자전거를 타고 동리 구멍가게로 달려가 나무 탁자에 걸터앉아
살가운 평생 이웃들과 소주잔을 나누면서
그게 자신이 사는 행복이라고 웃으며
동리 품앗이가 줄어들게 걱정이라 하는
애옥한 삶에게 축복하소서.

여린 손으로
어린 동생의 밥상을 차려내고
빨래를 하며 연탄을 갈아도
눈물을 감추고 동생을 다독이며
어서어서 자라 간호사 되겠다고
꿈꾸는 소녀가장을 축복하소서.

산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겨울이면 굶는 새들을 위해 먹이를 날라다 뿌려주며,
어쩌다 산행 지척에서 뻐꾸기 우는소리를 들은 날은
뜻밖의 행운이라 즐거워하는
산사람에 축복하소서.

동냥 그릇에 지폐 장을 가만히 놓고는
마치 너무 약소해 미안하다는 듯이
뛰어 사라지는 소녀의 마음과
비탈진 골목에 컨베이어를 만들어
독거노인 집에 연탄을 날라 재어주는 인정과
병든 노인을 찾아가 청소를 하고 목욕을 시켜주는
청년들의 선행에 축복하소서

인간은 최선을 다하여 치료할
치유하는 이는 하느님이시니
행여 실수하지 않도록 도우소서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범벅이 되어 나오는
의사에게 축복하소서.

박봉에서 성금을 헐어
매달 또박또박 자선단체에게 송금하는 성의와
무료급식소에서 짓고 설거지하는
사제와 목사와 봉사자들의 아름다운 손들과
곳곳에서 이름조차 드러내지 않은
도우미로 봉사하는 이들 모두에게 축복하소서.

아무리 뼈빠지게 일하고
나보다 못한 삶만 내려다보며 살아도
고작 가족 부양에 애면글면 허덕이는 처지에도
공연히 부자를 욕하지 않고
부정한 돈을 탐내지 않으며,
세금 꼬박꼬박 납부하고
이웃에 끼치지 않고 질서와 법규를 충실히 지켜 사는
보통 사람들에게 축복하소서.

(박종형)


읽어보니 짠한 정도가 아니라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라. 가난과 장애, 고된 노동 속에서도 사람 사는 냄새는 여전하다는, 상투적이지만 진실한 감동의 재확인. 특히 2~4연은 정제된 언어와 잔잔하면서도 마음에 깊이 파고드는 시상에 가슴이 뭉클했다. 극중 연주와 호섭처럼 나도 외워볼 생각인데, 읽을 때마다 목소리가 떨리고 눈에 눈물이 고여서 남 앞에서 낭송은 못하게 생겼다. 그 외에도 각자 열심히 살아가며 서로 돕고 각자 삶이 고단하고 기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린 작품이다.

그렇다고 삐딱한 성격에 감동만 먹고 끝나면 이상하지. (내가 가끔 드라마 속 작은삼촌 병걸하고 비슷하다.) 김수현 작가는 드라마 속에서 2~4연을 집중적으로 인용하는데, 1연부터 인용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다. 나도 보기 시작하면서 '으잉? 이게 이런 내용이었어?' 했으니까. 아무리 다산을 장려하는 시대라지만 (자녀 9명쯤 되면 아마 주택청약 0순위일 듯) 10 자녀를 넘나드는 다산의 의학적, 경제적, 사회적 폐해는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으리라 본다. 피임의 선구자 마가렛 생거어머니는 독실한 카톨릭 교도였는데, 18번 임신하고 11명의 자녀를 낳은 후 50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생거가 괜히 온갖 비난과 위협에 시달리며 평생 피임 운동을 했겠나.

물론 가족계획, 혹은 1연에서 찬양하는 가족계획의 부재는 본인과 가족의 선택 문제이다. 생거 같은 이들의 활약 때문에 이제는 선택의 문제가 되었으니까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인 건 당연하다. 감자농사 짓는 촌부가 농업을 천직으로 생각하듯 자식농사를 천직으로 생각하고, 아이들이 집안을 뛰어다니는 것을 얼마든지 행복으로 삼을 수도 있다. 애한테 꼭 돈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고, 아이의 혼돈과 불편을 싫어하며, 자기든 아이든 경쟁에 뒤처질까 눈에 불을 켜는 현대 부르주아의 불안불안 양육보다 어찌보면 얼마나 대담하고 순수한 모정인가. 그저 부르주아 아녀자로서 굳이 나의 계층을 위한 변명을 해보자면 꼭 많이 낳아야 위대한 모정은 아니라는 것일 뿐이다.

또 하나 뜨악했던 것은 마지막 9연이다. 뼈빠지게 일하고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부자 욕하지 않고 세금 꼬박꼬박 내고 폐 안 끼치고 불법 안 저지르는 사람을 축복하라는 것은, 즉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잘못된 법을 고치자고 하며, 거리에서 데모하는 일꾼은 축복 대상에서 빠진다는 것인가?

물론 모든 걸 남 탓을 하고 생산적인 일은 하나도 안하면서 세상에 대해 불평만 늘어놓는 피곤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은 일꾼이 아니라 그냥 밥버러지니까 축복받거나 말거나. 반면, 사회에 대해 불만이나 비판이 하나도 없이 사회는완전히 공평하니까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믿는 사람은 바보다. 사회는, 그리고 경제는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이다. 부자와 기업은 조직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데 중산층 이하는 응집과 조직화가 되어 있지 않으니까, 아니 일부러 못하게 하니까 노동조건이 점점 열악해지고 삶은 피폐해지는 것 아닌가. 이 시 9연에서 이야기하는 착하고 얌전하고 말썽 안 부리는 밥벌이꾼은 아무리 정치와 법이 불공평해도, 노동력과 임금과 삶을 착취당해도 '그저 소박한 행복이 최고랑께~'를 외치는 '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신을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나 1연의 다산모 내용을 보면 시인이 아마도 카톨릭 교도인 듯해서 더 연상이 되지만, 시를 보고 브라질의 대주교 헬데르 까마라 (발음 맞나?)가 한 말이 떠올랐다.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나더러 성인이라고 한다. 그들에게 왜 먹을 것이 없는지 물으면 공산주의자라고 한다.' 가난을 순전히 개인적인 자선의 문제로 보고, 가난의 근본적 원인을 해소하는 사회적 개혁을 논하는 것은 터부시하는 빈곤의 낭만화는 결국 교회와 권력의 결탁 아닐까?

적선도, 성금도 좋고, 무료급식소도 좋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선의를 어떻게 삐딱하게만 볼 수 있겠나. 개선과 개혁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니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나도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실업자 신세에도 매달 후원금을 내고 있다. 하지만 자선이나 감사하게 받고, 혹은 뼈빠지는 일이나 열심히 하고 영원히 가족 부양에도 허덕이며, 그저 부자 욕 말고 얌전히 있다가 가끔 눈시울 뜨거워지는 감상의 대상이 되는 것이 가난한 이에게 주어진 몫의 전부가 될 수는 없지 않을까. 민주주의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 성원으로서의 권리이자 의무를 다하려면 조직도 하고, 정치 참여도 하고, 불평과 비판의 목소리를 드높이는 '안 착한' 일꾼이 될 필요도 분명히 있다. 물론 그렇다고 틈틈이 동리 구멍가게로 달려가 소주잔 기울이지 못할 이유도 없고.

나하고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다고 '축복하소서'의 시적 완성도나 노동과 삶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가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내가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가난을 접하면 감상에 빠졌다가도 비판의 가시를 세우게 되는, 완전히 우로도 완전히 좌로도 치우칠 수 없는 중도층 중산층의 자기모순인 거지 뭐. 그렇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천차만별로 살아가면서도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게 사회 아닌가. 일용직 노동자에서 외과의사까지, 살림살이는 달라도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은 마음은 다 똑같은 사람들이 모두 함께.

2010/11/04 10:54 2010/11/04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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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06 23:49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일이 마지막회던데.. 나도 요즘엔 거의 안보다가 오늘 모처럼 봤네.
    난 이제 좀 힘빼고 지내는편. 고민하던 부분도 그냥;; 소식이 좀 뜸했잖아 ㅎ
    따뜻한 시선을 가진 의식이 깨어있는 모습이 멋져보여 끄적이고 감!
    즐겁고 건강하게 지내시길

    • 로키 2010/11/09 17:35  수정/삭제

      땡큐~ 고민이 덜하다니 다행이다 ㅎㅎ 난 오늘도 또 몇 편 정신없이 봐버린(..)

부자지간 훈훈한 대화

오늘 저녁, 아바이와 동생 (31살)의 대화.

아버지: 야, 김정은이는 스물일곱에 4성 장군이 됐는데 넌 뭐하냐?
아들: 걘 지 아빠가 시켜줬잖아요. (압박의 눈길)
아버지: ;;;;;

과연 북한 체제가 3대 세습을 견딜 만큼 공고할까. 이제부터는 어떻게 돼도 난 몰라 (?)
2010/10/03 21:13 2010/10/0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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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shsong 2010/10/04 17:35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카운터 펀치!

    • 로키 2010/10/05 09:59  수정/삭제

      아빠가 한 대 얻어맞으셨지 ㅎㅎ

  2. Asdee 2010/10/04 18:52  수정/삭제  댓글쓰기

    껄껄껄.. 센스 만점!
    북한 문제는 참 여러모로 쉽지 않네요... 결국은 어떤 식으로든 개혁/개방 노선으로 변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 로키 2010/10/05 10:00  수정/삭제

      정말 걱정이지. 체제가 갑자기 무너지는 건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은데, 점진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개혁과 개방 노선은 권력층의 저항이 너무 심하니.

  3. 고냥마님 2010/10/05 11:49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
    내가 어렸을때 "아빠 나 대통령 딸하고 싶어" 했더니
    아빠가 "대통령 그거 안좋은거야. 골치아픈거야" 라고 ㅋㅋㅋㅋ
    그러니까 내가 대통령 "딸"이 되고 싶은거지
    그러면 나도 청와대에 취업을 했을지도 (응?)

    • 로키 2010/10/14 09:31  수정/삭제

      오 그런 완전 현명한 꿈! ㅋㅋㅋ

동행은 백인하고만 하나?

필자의 모교이기도 한 서울에 있는 한 대학이 국제적 이미지를 강조한 광고 캠페인을 하는 듯, 캠퍼스와 신문 지면에서 이런저런 광고를 보았다.※

그 중 하나는 '일류가 일류를 만나다'라는 카피와 함께 한국인 여학생과 외국인 남자 교수가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또 하나는 한국인 여학생과 외국 여학생이 함께 서있는 광고였다고 기억하는데, 카피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방금 일간지에서 본 전면광고는 '세계와 동행하다'라는 카피와 함께 한국인 여학생 양옆에 두 명의 외국 여학생이 함께 서있다.

제목을 보았다면 필자의 불만이 무엇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앞의 문단에서 묘사한 광고에 나온 외국인은 전부 백인이다. 물론 전부 모델이 아닌 실제 교수나 학생인 캠페인이기에, 이 대학에는 외국인 교수나 학생이 모두 백인이라면 할말은 없다.

문제는 이 대학의 캠퍼스에 얼마간이라도 지낸 사람이라면 학내 외국인은 백인만이 아니라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대학에는 필자가 직접 겪은 학생만 해도 남아프리카 공화국 학생, 터키 학생, 중국 학생, 싱가포르 학생, 베트남 학생, 말레이시아 학생도 있으며, 이들 유색 인종 학생은 교내에서 쉽게 볼 수 있다. 그런 다양성은 필자가 모교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많은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실정이 이런데 광고에는 미국 백인만 나오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특정 프로그램 참가자만이 대상이라거나, 카메라 테스트 후에 고른 사람들이라거나. 하지만 이 학교가 한국인과 백인만 다니는 학교가 아닌 이상 광고가 학교의 실제 모습을 반영하지 못하며, 소외감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히잡을 쓴 여학생, 피부가 검은 남학생도 학교 가족인데 그들을 학교 광고에서 볼 날은 언제일까?

※ 필자가 이 학교의 모든 광고를 점검해본 것은 아니므로 광고가 필자가 본 것보다는 다양성을 잘 살렸을 수 있다. 그저 필자가 본 광고에 외국인이 나오면 전원 백인인 것이 눈에 거슬린, 제한적이고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글임을 밝힌다.
2010/08/21 14:17 2010/08/21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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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냥마님 2010/08/31 09:33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그 광고 봤다. 한쪽은 교수고 한쪽은 학생이더라구. 가운데가 우리 학생
    섭외할 사람이 없어서가 아닐까; 마침 국내에 와 있는 사람중에 하나 찍었겠지. 나 언교원 다닐때 아주 잘생긴 흑인 교수님 한분 계셨는데 아쉽 ㅋ

    각설하고, 광고하는 입장에서 말이징
    광고는 다분 '사진발'이잖아 근데 특히나 신문에 흑백사진으로 실릴때
    피부가 진한 사람인 경우엔 거기에 시선이 딱 꽂힐 가능성이 크거든
    (하양)(하양)(((고동!)))
    안그래도 밋밋한 동양인 얼굴이 묻혀버리는 효과!

    사실 우리 학교가 인종적 편견이 있어서라기 보단 그냥
    사진발 잘 받는+학벌 좋은+여인+울학교 애를 살려줄수 있는
    이런 조합을 찾다보니 그냥 그렇게 된건지도 몰라...

    그러나 저러나 히잡을 쓴 여학생! 이것도 좋았을지도 모르는데 ㅋ
    역시 시선이 그리로 가버리려나?!

    • 로키 2010/09/02 10:35  수정/삭제

      아항~ 그렇구나. 확실히 신문광고는 더더욱... 나도 학교의 편견 같은 게 원인은 아니라고 생각해. 그랬더라면 유색인종 학생이 그렇게 많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저 학교의 실제 모습이 반영이 안 되는 것 같고, 다른 외국인 학생의 존재가 묻히지 않나 하는 노파심이 들 뿐이지. 확실히 고려사항이 많아서 광고란 골치아픈 듯ㅎㅎ

아, 씨발

산모 생명 구하려 낙태 권고한 수녀 파문

미국 아리조나 피닉스의 한 카톨릭 병원에 찾아온 11주 임신한 산모가 임신을 지속할 경우 산모와 태아 모두 사망할 것이 거의 확실한 상황에서 낙태를 권고한 수녀 마가렛 맥브라이드는 교회에서 파문당했다고 한다. 피닉스 대교구의 주교는 태아는 질병이 아니라며 산모의 목숨은 물론 구해야 하지만 직접 낙태는 그 방법이 될 수 없다고 발표했다.

...나가 죽어라, 이 새끼들아. 그래, 태아가 죽을 김에는 여자도 같이 죽으라 이거냐? 아침부터 기분 X나 잡치네.
2010/05/19 10:56 2010/05/19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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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냥마님 2010/06/16 14:11  수정/삭제  댓글쓰기

    -_- 나도 천주교지만 이런거 보면 진짜 병맛이다 싶어

    • 로키 2010/06/23 15:57  수정/삭제

      신앙은 순수한 신앙인이 대다수이되, 뭐든지 권력조직이 되면 폐해가 생기는 듯. 보수화되고 말이야.

동성애에 대한 나의 취향?

다른 글에 쓰고 있다가 별 상관없는 얘기인 것 같아서 별문으로 뺐다.

동성애와 취향 얘기가 나온 김에 동성애에 대한 내 '취향'을 묻는다면, 나는 일단 무슨 목적의 취향이느냐고 묻겠다.

내가 동성애를 할 의향이 있느냐는 의미냐면, 현재 이성과 사귀고 있으며 바람을 피울 생각은 없다. 그런 면에서는 취향이 아니겠지.

(남친이 성전환수술을 해도 계속 연인일지는 그때 가서 생각하겠다. 그에게는 성전환수술이 필요없으므로 추천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 지면을 빌어 전한다.)

다른 사람이 동성애를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묻는 것이라면, 그건 남의 이성애에 대한 생각을 묻는 것만큼이나 묘한 질문이다.

옆집에서 (혹은 옆 도시에서, 혹은 지구 반대편에서) 이성이든 동성이든 혼자든 여럿이든 자기들끼리 뭘 하든 내 취향과는 무관한 게 뻔하잖아.

아니, 오히려 별로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남의 성생활에 대해 왜 취향이 존재하는 걸까, 그게 더 궁금하다.

동성애자와 친구가 될 수 있는지 하는 의미의 취향이라면 당연히 친구가 될 수 있다.

아는 사람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알아서 더 가까워지기도 했다. 이전에는 못했던 연애 고민 얘기도 듣고 했으니까.

BL물이나 야오이에 대한 취향이라면, 특별히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냥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어차피 그건 동성애에 대한 취향이 아니라 매체에 대한 취향 아닌가.

이렇게 여러모로 '남의' 동성애에 대한 취향이라는 건 참 성립하기 어렵다.

그냥 각자 자기 생활이나 잘 챙기면 안 될까. 관음증이 아닌 이상 남의 성생활에 대한 취미라는 건 그 자체가 모순 아냐?
2010/01/06 19:55 2010/01/06 19:55
로키
분류없음 2010/01/06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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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hovamp 2010/01/07 09:21  수정/삭제  댓글쓰기

    맨 마지막 문장이 특히 명쾌하군요 ㅋㅋ. 대체로 저와 입장이 비슷하신데, 맨 마지막 내용은 한 차례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가 글을 읽고 "아!"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로키 2010/01/07 15:41  수정/삭제

      어떻게 보면 사생활에 대한 권위주의는 하나의 집단 관음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물론 뭐 엿보이는 쪽과 합의만 있다면 관음증도 나름 훌륭한 성적 취미이지만..ㅋㅋ 그런 합의가 없다는 게 문제겠지.

  2. Asdee 2010/01/12 22:45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다소 보수적인(ㅎ) 크리스천 입장에서, 동성애를 수긍하진 않아요.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까... 동성애자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지금은 연락이 잘 안되지만), 아무튼 저는 내심 좀 안타까워하고 있죠. 그냥 여자친구도 사귀어보라고만 얘기합니다. 헤헤.

    @ 저, 이번 주말에 워싱톤 DC 놀러갈 듯!! 누나 학교 주변이나 가볼만한 곳 좀 알려주세요~^^

    • 로키 2010/01/14 20:41  수정/삭제

      뭐 그 부분도 그렇고 그양반 말씀 중에는 내가 수긍 못하는 게 많아서 지옥에 자리를 예비해 놓지 않았겠삼..ㅋㅋ

      DC에 놀러가는구나! 스미소니언 박물관이나 의사당 앞에 Reflecting Pool 주변이 관광객 많이 가는 데지. 박물관 중에는 특히 Native American 박물관이랑 현대미술관을 강추함. 차이나타운에 괜찮은 식당도 많고.. 고급 레스토랑도 많지만, 개인적으로는 자주 가던 Chinatown Express가 싸면서 맛있었지. 바로 집 근처기도 했고..

  3. orches 2010/01/15 21:10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성애라.. 전반적으로 로키님 생각과 비슷한 것 같아요. 끔찍하다거나 죽어야 된다던지 그런 생각은 들지 않구요. 사람마다 다양한 취향과 가치관이 있을거고, 그들 역시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

  4. 고냥마님 2010/02/08 16:57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느님이 만물을 창조하였으니 동성애자도 하느님이 창조한거 -_-
    옛날 생식과 번식이 무엇보다 중요했던때는 번식이 안되는 동성애가 죄악처럼 생각되었는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도 구약에 근거해서 동성애를 죄악시 하는건 힌두교에서 흰소 모시는거보다 더 합리성이 없는 이야기
    ....라고 성경학교다닐때 이야기했다가 마귀취급당한경력있음 ㅋㅋㅋ

    • 로키 2010/02/08 21:19  수정/삭제

      이 마귀!! ㅋㅋ 나도 이해가 안 가는 게, 과학적 증거로 보면 동성애는 유전적 형질인 것 같다는 말이지. 그럼 하느님이 그렇게 만들고는 자신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정죄하는 건 내 인간적 머리로는 아스트랄한 일이야. 다운증후군이 있거나 피부가 검거나 눈이 파란 것이 죄라고 할 수 없듯이...아니, 혹시 죄라고 하면 죄인가?!

      하긴 뭐, 진화론만 봐도 종교가 과학이나 사회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건 하루이틀이 아니지. 무조건 옛날 가치관이 좋다는 종교의 보수성이 난 참 싫더라고. 그러니 같은 마귀끼리 잘 지내보세이~

나는 흑인이 싫어: 취향 아닌 취향에 대하여

뭐랄까, 사람이 피부가 검다는 것 자체가 뭔가 이상하잖아? 더러워 보이고.

게다가 미국에서든 아프리카에서든, 왜 그렇게 못 살고 서로 싸워대?

흑인이라고 무슨 차별을 당해야 한다거나 해악을 끼쳐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고,

그냥 흑인하고 알고 지내거나 사귀고 싶지 않을 뿐이다.

취향이니까 존중해 줘야지. 흑인인 게 무슨 감투냐?


언제나 키보드 워리어의 낙원인 이글루스에서 게이혐오 관련 글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누군가 흑인에 대해, 아시아인에, 여자에 대해 저렇게 '취향'의 문제로 쓴다면 어떨까.

솔직히 제목하고 첫 다섯 줄 쓰면서 스스로 혐오감에 손이 떨렸지만...

분명 세상에 게이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듯이, 흑인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는 건 사실이다.

이런 건 모두 취향으로 존중받아야 할까?

어떻게 타고난 피부색으로 사람을 싫어할 수 있느냐고?

동성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것도 유전적이라는 증거가 있는 판에 왜 안 되겠는가.

게다가 무슨 해를 끼치자는 것도 아닌데, 그저 싫다는 것일 뿐이라면.

뭔가 이상하다고? 어째서 이상할까.

사실 이건 취향이 아니라는 데에 진짜 문제가 있다.

빨강보다 파랑이 좋은 건 취향이다. 소녀시대보다 원더걸즈가 좋은 것도 취향이다.

그러나 어떤 계층의 사람을 선험적으로 싫어하는 건 십중팔구 취향이 아니다.

겪어보고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는 개인이 아닌 소속 집단의 문제라는 점에서 이미 정치적, 사회적 사안이다.

L이라는 사람이 우리 애를 가르치는 선생인데, 알고 보니 L은 동성애자였다고 하자.

L의 선생님으로서의 자질이나 실력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L이 학생이나 기타 미성년자에게 성적 관심을 보인 잃은 없다고 하자.

동성애자를 싫어하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1. 당장 L을 해임해야 한다고 학교에 압력을 넣거나, 그런 활동을 심적으로 지지할 것인가?

그렇다면 당신은 동성애 차별주의자다. (L이 무능하거나 잘못을 해서 해임하자는 게 아님을 기억하자.) 당신의 동성애 혐오는 취향이 아니라 정치적 신념이며, 근거를 제시하고 정당화해야 한다. 취향이므로 존중해달라는 변명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

2. 동성애는 싫지만, 아무 잘못도 없는 선생을 해임하는 것은 사생활 침해이며 잘못된 일이라는 주장을 지지할 것인가?

축하한다, 당신은 진정 평등과 인권에 대한 신념이 넘치며, 동성애 혐오는 진짜로 취향이다. 불행히도 당신 같은 사람은 소수다.

3. 아니면, L의 해임을 주장하되 그건 L이 동성애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교사로서 다른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할 것인가?

이 세 번째 경우가 가장 애매하다. L은 당신이 싫어하는 동성애를 하는 사람이다. 그가 일을 얼마나 잘 하는지, 정말로 학생들에게 잘못이 없는지 당신은 객관적으로, 또 평등하게 판단할 수 있는가? 동성애가 정말 싫고, 그 사실만으로도 L과 멀어지고 싶은데, 당신의 눈에는 정말 색안경이 없을 것인가?

개인적으로 고르라면 나는 2번이 가장 존경스럽다. 동성애는 뭔가 좀 싫다, 하지만  성적 취향 때문에 사람을 차별하는 건 내 신념에 어긋난다고 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의 취향은 진짜 취향이고, 정치적 신념이 아니다. 그러나 말했듯 이런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실제로 가장 많이 보는 경우는 1번과 3번이다. 그리고 이 경우는 더 이상 취향은 취향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3번이 가장 위험하다. 차별을 교묘하게 정당화하니까.

그래서 '취향'과 '정치적 신념'이 반대 방향인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이상,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소수자에 대한 취향은 취향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 정치적 신념이며, 따라서 정당한 비판의 대상이다. 취향이라는 말은 그저 토론을 피하는 연막일 뿐이다.

차별적 신념이든 진짜 취향이든, 터놓고 얘기하는 건 좋다. 다만 사회적, 정치적인 사안을 놓고 색상 선호나 아이돌 밴드 취미와 동일시하기는 어렵다. 취향을 놓고 토론하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취향 아닌 것을 취향이라고 우기고 토론을 거부하는 것은 부정직하지 않은가.
2010/01/06 19:21 2010/01/06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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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10/01/06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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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수술과 신데렐라의 두 언니, 루저 파동

모 TV쇼에서 벌어진 루저 발언 파동은 수많은 말과 패러디, 글을 부르면서 이제는 특별히 뭔가 덧붙일 것도 없는 대한민국 방송사의 일부분이 되었다. 정신나간 발언이었고 모욕적인 폭언이었고, 우리 사회 일부에 물든 천박한 허영을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점 등등, 다 옳은 말이다.

워낙 상식없는 짓을 했으니 그 말을 한 여학생을, 그리고 그딴 식으로 방향을 유도했거나 대본을 썼을 수도 있는 (그리고 녹화방송인데 편집도 하지 않은) 제작진을 성토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저거 나쁜년이고, 제작진들은 정신이 나갔다고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들만이 문제일까? 우리 건전한 한국사회에서 그런 일부 '정신나간' 사람들을 성토하고 매도하면 루저 발언의 정신적, 언어적 폭력이 없어질까?

한국 사회가 얼마나 획일적이고 계층적인지는 길게 얘기해봐야 입만 (혹은 손만) 아프다. 모두가 똑같은 기준을 강요받고 그 기준을 따라가려고 헐레벌떡 따라가는 사회다. 돈이면 돈, 외모면 외모, 키면 키 다 어떤 이상적인 잣대가 있고, 그 기준은 곧 좋으이며 옳음이며 선이다. 서울은 지방보다 위고, 키가 크면 작은 사람보다 우월하고, 대졸은 고졸보다 낫고,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능가하고, 전문직과 공무원이 최고고, 예뻐야 눈이 간다. (그 미의 기준도 엄청나게 천편일률적이다.) 그 기준에 미치는 사람은 인생의 승리자다. 못 미치면? 루저~

TV에 어쩌다 나온 어린 여자아이의 말 한 마디에 한 나라가 발칵 뒤집힐 이유가 사실 얼마나 되는가. 이도경양보다 훨씬 오래 살고 많은 경험을 하고, 비교도 안 되게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발언에도 우리는 그렇게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이 기분이 상한 것은 홍대 다니는 한 여학생이 그들을 루저라고 믿어서가 아니다. 자신이 루저라는 믿음, 혹은 두려움을 그녀가 자극했기 때문이다. 키를 포함한 그 단일하고 이상적인 사회적 기준에 못미치는 자신은 패배자가 아닐까 하는 불안은 우리 모두에게 계속 잠재해 있고, 이번 루저 소동은 그 불안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계기였다.

하나의 외부적 기준에만 자신과 삶을 맞추어야 한다는 강박은 교육, 취업, 의료(?)  분야에서 잘 관찰할 수 있다. 타고난 개성과 매력과 무관하게 자신을 어떤 이상에 맞추려는 그 끝없는 노력의 경주 속에서. 그래서 우리들은 무조건 대학에 가려고 기를 쓰고, 공무원이나 전문직, 그도 아니면 대기업 직원의 감투를 쓰려고 무진장 노력한다. 그리고 역시 타고난 모습과 상관없이 남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고 얼굴을 뜯어고치고 다이어트를 한다. 경험도, 살아가는 모습도, 심지어 생긴 것도 모두 비슷비슷해지려는 사회적 몸부림은 눈물겹도록 치열하다. 그렇지 않으면 뒤처지니까, 패배자가 되니까.

그래서 나는 (그녀의 발언에 직접 해당사항이 없어 그런지는 몰라도) 이도경이라는 여학생이 불쌍하다. 그녀는 4천만 국민이 모두 쌍둥이가 되기를 꿈꾸는 국가적 대사업의 처연한 얼굴이다. 남의 시선을 강박적으로 의식하고 외적 잣대에 자신을 맞추는 데에 삶을 바치는 와중에 그녀에게는, 그리고 그녀와 마찬가지인 수많은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자신'이 설 자리가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의 마음, 자신의 행복은 모두 쓰잘데기없는 패배자적 생각일 뿐일 테니까.

삶의 선택에 자신이 없이 남의 시선이 있을 뿐인 홍대 아가씨는 그래서 딱하다. 그녀의 중심이 외적 잣대가 아닌 자신이었다면 도경양은 경쟁력이니 루저니 하는 말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은 키큰 남자를 좋아한다고, 키작은 남자와도 사귈 수 있지만 키큰 남자가 취향이라고 아무도 업신여기거나 모욕하지 않고 당당히 말했을 테니까. 자신의 취향이 아닌 맞춰야만 하는 외적 잣대가 삶의 기준이 될 때 그것은 다원성이 아닌 폭력이 된다. '나는 ~~를 좋아해'가 아닌 '너는 ~~하지 않으므로 가치가 없어'가 된다. 그래서 획일화는, 그리고 획일화를 향한 강박의 이면은 사회적 폭력이다.

신데렐라 이야기의 원전에는 어린아이들에게 흔히 읽히는 판본에 빠진 대목이 있다. 무도회에 구두만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진 그녀를 찾으러 왕자가 그녀의 구두를 전국 각지로 보내 여자들에게 신어보게 했을 때, 신데렐라의 못된 두 의붓언니는 왕자비가 되는 실마리인 그 구두에 발을 맞추려고 발가락과 발뒤꿈치를 자르고 발을 우겨넣었다. 신분상승과 성공이라는 지상과제 앞에서 그녀들은 자신들의 발 모양이나 크기, 심지어 발의 온전함이나 고통에도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 신발에, 그 잣대에 자신을 맞추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 모습이 오늘날의 성형수술 열풍과 겹치며 오싹했던 사람이 나뿐일까.

외적 잣대가, 타인의 시선이 자신을 압도하는 순간 멀쩡한 발뒤꿈치와 발가락을 잘라내서라도 남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일은 너무 당연하게 되어버린다. 자신의 취향, 재능, 꿈, 개성, 건강 같은 별거 아닌 것들을 잘라내고 도려내서 마침내 신데렐라의 신발에 발을 우겨넣을 수 있게 되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한, 자신을 잘라낸 고통은 승리의 별거아닌 대가일 뿐일 테니까. 그때에야 자신을 좀먹는 모든 공허와 불안과 너는 패배자라고 속삭이는 목소리에서 자유로울 것이라고 믿어마지 않는다.

내가 너무 구식이고 고리타분한 것일까? 나는 행복은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자신을 개조하려고 해도 결국 외적 기준은 외적 기준일 뿐이고, 자신의 내적 기준은 또 다른 얘기다. 화려함은 외적 기준에 맞추는 데서 나올지 몰라도 행복은 자신의 기준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외적으로 결혼, 직장, 외모 등 모든 것이 완벽한 사람들이 실은 공허와 불행에 시달리기도 하는 것을 따로 설명할 방법이 없다. 자신이 빠진 행복이란 있을 수 없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진짜 패배자는 키가 180이 안 되는 남자들이 아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키큰 남자들한텐 매력을 못 느낀다.) 자기 기준 없이 외적 잣대에,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며 그 획일적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언어적, 정신적 폭력을 휘두르는 그들, 그 불쌍한 사람들이 진짜 루저다. 타인의 시선에서 행복을 찾는 이상 행복할 수도 없고, 뿐만 아니라 남까지 불행하게 하려는 것이 그들이니까. 남의 신발에 맞추려고 자기 발을 잘라내는 것처럼 어처구니 없는 짓, 딱한 루저짓이 또 있을까.
2009/11/30 20:09 2009/11/3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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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hovamp 2009/12/01 22:13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루저 파동은 여러가지로 재미있었지요.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이걸 가지고 마초이즘을 끌어내는 칼럼이었는데 말입니다. [...] 외모 관련 비하가 정신적 쇼크를 준다고 해서 고소한다면 여자들은 이미 수백번도 더 고소를 했어야 했다던가, 사회 기득권층인 남자의 80% 정도를 루저로 씹었기 때문에 이렇게 까인 거라던가 하는.

    집단주의는 그래서 무서워요. 말씀대로 기준이 내가 아닌 남에 있기 때문에 그 기준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라는 틀을 만들고 자신을 끼워넣고 그 틀 밖에 있는 사람은 모조리 적이 되는. 그래서 유독 우리 사회는 편가르기가 성행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2. lhovamp 2009/12/01 22:16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복잡한 생각인지도 모르겠으나, 수백년간 예의와 "염치" 라는 것을 강조해온 민족이라 남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문화적인 뿌리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네요.

    • 로키 2009/12/03 11:15  수정/삭제

      확실히 우리나라는 그런 집단주의적 전통이 강하지. 어찌보면 개인의 소신과 도덕보다는 집단 (특히 집단의 지도자들)에 따르는 게 더 미덕이었을까. 집단주의는 자신의 양심이나 도덕을 집단에 맡길 수 있는 게 정말 무섭지. 집단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정당화할 수 있으니...

  3. Sihaya 2009/12/02 18:00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늦게 이 프로를 봤더랬죠.
    사실 저 발언 자체보다는 그 이후까지 하는 이야기를 보면서 정말 뭘 듣고 자라면 저런식의 가치관을 갖게 될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나 자기 스스로 인생을 개척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가능성을 두지 않고 타인과 여러가지 다른 타자에 의존하는 생각들이 적나라하게 표현되더군요.

    • 로키 2009/12/03 11:17  수정/삭제

      참 문제죠... 자신이라는 게 없어지고, 남에게 잘 보이려는 생각만 남는다는 것. 부모가 그렇게 키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 가치관을 형성하게 키우는 게 아니라 남 눈치보고 남보다 앞서게만 가르쳤으니 그렇지 않을까요.

  4. Asdee 2009/12/03 22:10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잘 읽었습니다. 어렴풋하게 느끼곤 있었는데, 예리하게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주셨네요. 단순히 한 사람이나 방송사 책임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을...

    미국에 와서 살아보니까, 여긴 그런 점에서 상대적으로 다른 이들의 시선, 평가가 덜 일괄적이라는 점은 나은 것 같아요. 잣대가 없는 건 아니지만, 한국처럼 모두가 한 가지 잣대를 갖는 수준은 아니니...

    한편 요즘 케이블에서 유행하는 [남녀 탐구생활]을 보면서도, 너무 남성성/여성성을 단편적인 측면으로 몰아가는 듯 해서 좀 씁쓸했습니다. (정말 여자들이 다들 그런 건가요? oTL.)

  5. Asdee 2009/12/03 22:13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침 오늘 알라딘에서 온 책 소개 메일에서 올리버 제임스의 [어플루엔자 Affluenza]를 접한 참이라, 더욱 여러모로 생각해보게 되네요..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525710

    • 로키 2009/12/04 19:28  수정/삭제

      어느 사회든 외적 잣대는 있지만, 우리나라는 유달리 획일성이 심한 것 같아. 그건 어떻게 보면 각종 차별 문제하고도 상관이 있고. 남자도, 여자도 다 각양각색인데 모두 한 가지 틀로 보려는 경향이 있으니까... 희화하는 의도로 활용하면 차라리 낫지만, 문제는 웃음거리만은 아니라는 것. 물론 차별은 어디에나 있는 문제인 만큼 결국 인간 자체의 특징일지도 모르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플루엔자 재밌어 보이네. 학교 도서관에 있으니 심심할 때 빌려봐야지.

로젠스트라세 - 시민 저항의 힘에 대하여

정확한 지명이나 역사적 배경은 생각나지 않지만, 점령지의 남자를 학살하는 걸로 악명이 높은 군주에 항복한 성 이야기를 들어보았는지 모르겠다. 저항 끝에 성문을 열 수밖에 없게 되자 여자들은 적군에 대표를 보내 여자들은 두 팔에 들고 갈 수 있을 만큼의 가장 귀하고 필요한 재물만을 가지고 평화롭게 떠나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군주는 이를 허락했다.

다음날 아침,  성주 부인을 포함해 성의 모든 여자들은 패물도, 금화도 아닌 남편을 있는 힘을 다해 양팔에 안고 성문을 나왔다. 이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한 군주는 남자들을 죽이지 않았을 뿐더러 그 성의 주민에게는 유례없이 온정적으로 대했다고 한다. 여성들의 기지와 헌신, 숨은 낭만주의자였던 정복 군주, 그리고 아내 품에 공주님 안기로 안겨나온 남자들(...)이 기억에 남는 이야기였다.

20세기에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있다. 그것도 배경은 2차대전 중 독일, 상대는 히틀러의 악명높은 게슈타포였다. 1943년 베를린 중심부의 로젠스트라세 (Rosenstrasse, 장미의 거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스탈린그라드에서 패배한 독일 제3 제국은 베를린에 잔류한 모든 유대인을 수용소로 강제이송하는 결정을 내렸다. (전쟁 중에 왜 그딴 데에 힘을 쏟았는지는 미지수다.) '아리아인'과 결혼했기에 그동안 강제이송을 피했던 이들 유대인은 대부분 독일 여자와 결혼한 남자들이었다. 이송을 앞두고 이들은 로젠스트라세 2-4번지에 갇혀있었다.

금새 로젠스트라세에는 남편이 체포당한 여자들이 "남편을 돌려달라"며 모이기 시작했다. 목격자들은 첫날에 600여명이 모였으며, 일 주일 동안 총 6000명 정도가 참여했다고 추산한다. 많은 여인들이 출근하는 길에 이 거리에 꼬박꼬박 들렀다. 무기도, 조직도, 지도자도 없는, 대부분 여성인 시위대에 경찰은 몇 번이나 발포 위협을 하며 해산하려고 했지만, 이들은 물러나는가 싶으면 다시 몰려왔다. 체포는 기정사실 갈았고, 유혈극이 벌어지지나 않으면 다행인 상황이었다.

이렇게 며칠 동안이나 시위가 끊이지 않자 게슈타포는 기관총을 설치하고 총구를 여인들에게 겨누었다. 누구라도 모골이 송연할 상황에 시위대는 순간 주춤주춤 물러났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앞다퉈 도망쳐도 시원찮은데 이 독일 아줌마들, 오히려 화가 머리끝까지 뻗쳤다. 어차피 죽을 거면 소리라도 지르고 죽어야지. "살인자! 살인자! 살인자! 살인자!" 죽음을 각오한 여인들의 노호가 장미의 거리를 메웠다.

히틀러의 선전관 괴벨스는 베를린의 나치당 지구장이기도 했다. 여인들을 거리에서 쏴죽이는 건 도덕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나치에게는 일도 아니었다. (사실 유대인이었으면 벌써 죽거나 끌려갔다.) 그러나 괴벨스는 파급 효과를 염려했다. 가뜩이나 불리한 전황에 민심 이반을 조심해야 하는데 베를린 심장부에서 시위가 자꾸 길어진다면, 혹은 독일 여인들이 게슈타포에 사살당하면 자칫 더 큰 저항을 부를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괴벨스는 여인들의 요구대로 남편들을 석방하라고 명령했다. 그에 따라 근 2천 명이 풀려났고, 그들도 그들 가족도 더는 당국에 아무 해코지도 당하지 않고 대부분 종전까지 무사히 살아남았다.

이 일화는 제3 제국의 그 살벌한 상황 중에도 시민 불복종으로 놀라운 결과를 낸 사례라는 점에서 독일 국민들이 만약에 더 적극적으로 저항했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하는 불편한 의문을 남기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세가 기울면서 당국이 오히려 시민의 눈치를 봐야 했고, 시위 자체가 매우 비정치적인 성격이었고, 시위대가 주로 독일 여성이었던 점 등 특수한 상황이 성공을 이끌어냈다고 본다. 따라서 로젠스트라세를 가리키며 '독일 국민이 저항했으면 되지 않느냐'고 일반화하기는 좀 섣부르지 않을까. 물론 아무리 독재라도, 아니 독재일 수록 정부는 단합한 시민을 두려워한다는 일반화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드는 생각이라면 아줌마는 역시 무섭다는 거(...) 게슈타포가 불쌍하다고 순간이나마 생각한 건 평생 처음이었다. 애들 아빠가 위험해서 눈에 보이는 게 없는 600명의 아주머니가 '살인자!'를 외치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아무리 게슈타포라도 사람인 이상 평생 엄마한테 혼난 모든 기억이 총천연색 블루레이 동영상으로 떠오르면서 식은땀이 흘렀을 거다. 이래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세, 생사람 인생을 하루아침에 절단내는 독재가 아무리 대단해 보여도 결국 땅 위가 아니면 무엇이 설 수 있을까. 모든 권력과 모든 삶의 기반에 있는 것은 평범한 사람, 보편적이고 소박한 감정이다. 옆집 아줌마가 아저씨를 위해서라면 총부리 앞에서도 눈을 부릅뜰 수 있는 마음이 바로 권력도 이기는 힘이다. 그래서 권력은, 독재는 언제나 시민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료출처
Rosenstrasse Documentary
Rosenstrasse Protest
2009/10/13 22:17 2009/10/13 22:17
로키
분류없음 2009/10/13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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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9/10/14 11:22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로키 2009/10/14 13:30  수정/삭제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산과 육아에 대한 생각

내가 사는 곳 바로 앞에는 어린이집이 있어서 출퇴근할 때면 부모나 조부모가 아이를 맡기고 찾아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근처에는 또 초등학교, 중학교도 있어서 아이들이 집단체조하고 노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려오고, 일할 때면 창밖에 꼬마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이 보인다. 출산율이 극도로 낮아졌다지만 난 주변에 애들이 유달리 많은 환경에 있는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 뭐가 좋아서 저렇게 낳고 기를까? 애들은 이쁘기는 하지만 그것도 자기 책임이 없는 남의 애 얘기지, 오래 같이 있으려다 보면 시끄럽고 정신없고 잠시도 안심이라고는 할 수 없고 종종 무례하고 막무가내다.

어머니의 삶에 아이가 끼치는 영향은 길게 얘기해봤자 입만 아프다. 일차적인 육아책임은 어머니에게 있다는 것이 사회적 인식이니 어머니가 된 순간부터 편할 날이 있을까. 직장에서는 눈치보여, 집에서는 힘들어, 남편이란 사람은 돈 번다고 (애는 또 돈 잡아먹는 괴물이니) 보이지도 않아... 애는 잘 있나 종일 걱정하면서 칼퇴근해서 애 찾아다 애가 빽빽거리는 집을 치울 생각에 이미 난소가 "나 안해!" 하고 오그라드는 것만 같다.

물론 그런 과정이 있었으니까 나도 태어나서 비교적(?) 무사히 자랐고, 그 과정에서 부모님이 하신 희생에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하겠다는 사람들에게는 경의를 표하고, 대한민국의 개같은 출산과 육아지원정책이 빨리 좋아지도록 노력하고 싶다. 하지만 적어도 현재로서는 내가 개인적으로 출산과 육아라는 엄청난 과업을 해낼 생각은 별로 없다.
2009/09/12 21:55 2009/09/12 21:55
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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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09/09/12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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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스카 2009/09/13 21:38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건 또 모르는 일 아닐까...

    • 로키 2009/09/13 22:17  수정/삭제

      뭐 생각은 자꾸 변할 수 있는 거겠지..ㅋㅋ 지금 생각은 그래.

  2. Wishsong 2009/09/14 17:40  수정/삭제  댓글쓰기

    밥 먹여 주세요(빽빽빽)

    • 로키 2009/09/14 21:03  수정/삭제

      매를 먹여주마! (철썩철썩)

  3. 2009/09/15 00:54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촌에게 글쓰면서 생각나 적은 건데.
    논문쓰는거랑 비슷한 거 아닐까?
    (논문이 나오는건 아기 나오는 거랑 비슷하다는 말 하는데. 키우는 것도?)
    뭔지도 잘 모르면서 시작하면서 깜짝 놀래고,, (이건 내이야기야.. ^^;;)
    쓰면서 정신적인 무리도 많이 하게 되고.
    외부와 차단도 되고. 다른 놀이(?) 포기도 해야 하고.

    너의 마음가짐이라면 결혼이건, 출산이건, 적극적 선택이라는
    -책임감과 일단 하게 되면 잘할 거라는 기운이 팍팍 느껴지는걸.

    전에 수녀님이 학교에서 강의 하는데 당신들이 행복해져야 하오.
    perfect가 아니라 good enough가 되어주면 되오. 라는 말을 했어.
    책에선가? 여자는 일과 남편과 육아중에서
    다 열심히 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니
    두개를 중점적으로 하면 된다고 했다는데
    육아를 안하거나, 무게중심을 덜 두는-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겠지.

    나는 아직도 싸이월드 보며 남들처럼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서지. 너처럼 뚜렷하게 안하겠다는 주관이 없지.
    하지만 우리 엄마 같이는 못하겠다는 생각은 들고.
    우리 기준을 한번 세워나가보자. 서로 힌트, 격려도 되어주고.

    • 로키 2009/09/16 17:41  수정/삭제

      맞는 말이네..ㅋㅋ 지금 상태에서는 별로 원하지 않고 있지만, 닥치면 뭐든지 할 수는 있겠지. 할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느낀다면 어떻게든 해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그 가치에 대한 확신을 못하겠달까. 객관적인 가치가 아니라 내 삶에서의 가치를 말이지.

타임지의 김대중 대통령 회고 사진들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김대중 전대통령 회고 사진 에세이를 올렸다. 대부분 전에도 본 사진이지만 새삼 이게 전세계적 뉴스라는 걸 느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09/08/19 21:51 2009/08/19 21:51
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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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09/08/19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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