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의 진짜 무서움은, 그리고 극복하는 진짜 어려움은 게으름이 비합리적인 행동이라는 점이 아니라 합리적인 행동이라는 점에서 나온다.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물론 게으름은 비합리적인 행동이다. 할 일을 미루면 나중에 고생하고, 생활이 늘어지면 건강에나 일에나 손해를 본다. 게으름이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게으름은 근본적으로 합리적인 행동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동물이다. 반드시 돈을 벌려고 움직인다는 게 아니라, 비용 혹은 괴로움을 될 수 있는 한 줄이고 효용 혹은 행복을 되도록 늘리려고 일관되게 행동하기에 그렇다. 비용과 효용은 재정적일 수도, 감정적일 수도, 신체적일 수도 있지만 비용과 효용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게으름의 비용은 이미 위에 언급했지만, 사실 그 대가는 모두 장기적인 것이고 미래에 치르는 것이다. 그렇다면 게으름을 인간 정신이 합리적이라고 느끼는 이유, 즉 게으름의 효용은 무엇일까?
우선은 해야 할 일을 하고 절제하는, 즉 부지런한 데 따르는 비용을 피한다는 점이 있다. 뭔가를 하기 싫다는 것은 분명 감정적 비용이다. 그 일이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 온갖 잘못될 수 있는 시나리오에 대한 불안감도 그렇다. 그 외에도 부지런을 떨면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라는 비용을 소모하게 된다.
부지런함의 비용을 피하는 외에도 게으름 자체의 효용도 있다. 편안하고 아무 부담 없는 일, 웹서핑을 한다거나 게시판에 글을 올린다거나 블로그를 쓴다거나 하는 일은 하고 싶으므로 감정적 효용이 있다. 잘 되고 안 되고가 없고, 누군가를 실망시킬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는가.
물론 위에 언급했듯 게으름 자체에도 비용이 따른다. 하지만 이것은 대부분 미래에 치러야 할 비용이며, 삶은 불확실하고 상황은 자꾸 변한다. 따라서 미래의 비용과 효용은 현재의 비용과 효용만한 현실성이 없게 마련이다. 인간이란 그야말로 내일, 아니면 한 시간 후에는 살아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지 않은가. 따라서 무의식을 포함한 인간 정신이 비용과 효용 계산을 할 때면 게으름의 현재적 효용과 부지런함에 대한 현재 비용에는 게으름에 따르는 미래의 비용과 부지런을 떠는 데 따르는 미래의 효용에 비해 가산이 붙게 된다.
게다가 효용에 대해서는 위험을 피하지만 비용을 피하는 일에 대해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인간의 성향은 많은 연구결과를 통해 이미 정설이 되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간단한 예로 알 수 있다.
효용 획득에 대한 위험 기피 성향: 왼쪽 문으로 나가면 무조건 만원을 주고, 오른쪽 문으로 나가면 동전 두 개를 던져서 둘 다 앞이 나왔을 때만 (즉 1/4 확률) 6만원을 준다고 하자.1 확률로 계산해 보면 왼쪽 문으로 나가는 수익은 평균 만원 (1만원 * 100%), 오른쪽 문으로 나가는 수익은 평균 1만 5천원이다 (6만원 * 25%). 하지만 대다수는 왼쪽 문을 선택한다. 평균이 어쨌든 효용을 얻을 기회가 있으면 위험을 기피하고 확실한 수익을 선호하는 성향 때문이다.
비용 회피에 대한 위험 선호 성향: 이제는 왼쪽 문으로 나가면 무조건 만원을 내야 하고 오른쪽 문으로 나가면 동전 두 개를 던져서 둘 다 앞이 나왔을 때만 6만원을 내야 한다고 하자. 계산을 해보면 왼쪽 문으로 나가는 비용 1만원이 (-1만원 * 100%) 확률상 오른쪽 문으로 나가는 비용 1만 5천원 (-6만원 * 25%)보다 적다. 하지만 이때는 대다수가 오른쪽 문을 선택한다. 효용을 얻을 기회와는 달리 비용을 회피할 기회를 위해서라면 위험을 선호하는 것이다.
이 지극히 인간적 성향은 게으름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게으름을 피워서 현재 몸과 마음이 편한 것은 현재의 확실한 효용이다. 반면 부지런을 떨어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효용은 미래에 생기므로 상대적으로 불확실하다. 따라서 효용에 대한 위험 기피 성향이 발동해서 현재의 효용을 제공하는 쪽인 게으름을 선택하는 압박이 생긴다.
그럼 비용 측면을 보자. 게으름을 피워서 생기는 비용은 미래의 것이다. 부지런을 떨어서 생기는 비용은 지금 당장 지불해야 한다. 이번에는 비용을 회피하는 데 대한 위험 선호 성향이 발동해서 현재의 확실한 비용, 즉 부지런함에 대한 비용을 일단 피하는 게으름 쪽을 선택하는 압박이 또 있다.
이쯤 되면 왜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미루는 습관이 더 심한지도 알 수 있다. 로키의 자기합리화 외에도 데이빗 알렌 (David Allen)의 Getting Things Done 거의 마지막 장에 보면 가장 똑똑하고, 창의적이고, 섬세한 사람들이 일을 잘 미루고 더 불안해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와와 사랑해요 데이빗 알렌 그들은 어떤 일에 부담을 받을 때 그에 따를 수 있는 나쁜 결과를 남들보다 훨씬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으므로 그만큼 그 일을 회피한다는 것. 다르게 말하면 사고 회로가 효율적인 만큼 비용과 효용 계산도 더 확실해서 위에 논한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 나온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게으름이 정말로 합리적인 행동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수렵채집을 하며 진화한 우리 본래의 두뇌회로가 합리적으로 느끼는, 본능적이고 무의식적인 행동양식이기에 그만큼 극복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게으름을 공략하려면 그 이유를 알아야 하기에.
인간이 게으름을 종종 선택하는 이유가 결국 비용과 효용의 계산 때문인 것을 알았다면 이제 남은 것은 비용과 효용의 균형을 바꾸는 것뿐이다. 이 비용과 효용 재계산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미 하는 일이다. 컴퓨터 끄고 공부할 때마다, 죽도록 하기 싫은 전화를 할 때마다, 뒹굴고 싶은데 운동을 할 때마다, 놀고 싶은데 잘 때마다 매번. 비용과 효용 중심으로 따져보면 결국 수많은 자기계발 제품이 다루고 있는 것이 이 재계산 과정이기도 하고.
게으름을 극복하는 비용과 효용 중심 방법론을 게으름과 부지런함, 비용과 효용으로 나누어보면 크게 게으름의 비용을 늘리는 것, 부지런함의 비용을 줄이는 것, 게으름의 효용을 줄이는 것, 부지런함의 효용을 늘리는 것 네 가지가 된다. 이 네 가지를 충분히 해서 게으름에 대한 우리의 본능적이고 합리적인 계산 결과를 바꿀 수 있다면, 바로 그 비용·효용 계산의 결과인 게으름 역시 극복할 수 있다.
게으름의 비용을 늘리는 방법으로는 역시 사회적인 방법이 적합하지 않나 싶다. 타인에게 자기 목표를 알리고 자신이 게으름을 피운 것 역시 알게 하는 것. 석한군이랑 준영군이랑 이전에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을 블로그 댓글로 표시하던 아침형 인간 프로젝트가 그 좋은 예이고, 다이어트 할 때 남하고 같이 하라는 것도 그런 원리이다. 이렇게 되면 게으름은 자기만 알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망신을 당하는 행동이 된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 지위에 민감하고, 잘난 척하기를 좋아하고, 꿀리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난 아침형 인간 프로젝트를 관뒀다 이 속성을 게으름의 비용을 늘리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부지런함의 비용을 줄이는 방법도 여러 가지가 있으니 다양한 자기계발 서적이나 비디오, 강연을 참조하면 된다. 다만 하나 주의할 것은, 게으름의 비용이 엉뚱하게 부지런함의 비용으로 둔갑하는 성향이다. 즉, 취업에 충분히 노력을 안해서 (게으름) 실업자가 되는 것 (비용)은 분명 게으름에 따르는 비용, 혹은 손실이다. 그런데 문제라면 사람은 취업하느라고 불철주야 노력하는 것 (부지런함)과 실업자가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비용)을 연관시키는 혼선을 자주 일으킨다는 점.
미래에 대한 불안을 게으름 대신 부지런함과 연관시켜서 부지런함의 비용을 실제보다 부풀리는 성향 때문에 게으름은 더욱 강력한 유혹이 된다. 생각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그렇게 해서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감정적 비용을 피하려고 게을러지는 것. 그래서 이 연관의 혼선을 바로잡아 부지런함의 비용 과장 현상을 막고, 동시에 이것은 실은 게으름의 미래 비용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부지런함의 비용을 줄이는 동시에 게으름의 비용을 늘릴 수 있다.
부지런함의 비용 중에는 감정적 비용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지만, 그 외에도 에너지라든지 시간이라든지 하는 다양한 비용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다양한 작업을 효율적으로 해서 수고와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도 부지런함의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다. 시간 활용 기법에서 눈이 덜 피로한 모니터까지 수단은 다양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도구 그 자체가 마음에 들면 부지런함의 효용도 늘리는 일석이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게으름을 효용을 줄이는 방법 중 대표적인 것은 장소나 환경을 바꾸는 것 같다. 공부하려면 도서관에 가서 유혹을 줄인다든지. (물론 도서관에도 유혹이 많으니 반드시 그런 효과가 나지는 않기도 하지만.) 그 외에도 컴퓨터에서 게임을 지운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게으름을 효용을 줄이는 시도도 하지만, 대체로 게으름의 효용을 줄이는 건 효과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애당초 효용이 그렇게 크지 않으니까. 그보다는 위에 얘기한 부지런함의 비용, 특히 게으름의 비용이 부지런함의 감정적 비용으로 잘못 연관된 비용 거품이 게으름의 원인으로는 훨씬 크다고 생각하니. 하지만 그런 비용 (두려움, 불안감 등)이 상대적으로 적고 게으름의 효용이 유달리 클 만한 유혹 (새 게임, 책등)이 있을 때는 환경을 바꾸거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해 게으름의 효용을 줄이는 것도 생각해볼 만하다.
부지런함의 효용을 늘리는 방법은 이미징 기법의 대표적인 목표인 것 같다. 자기 꿈이나 목표를 책상 앞에 써붙여 놓는다거나, 지금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자신의 멋진 모습을 생생하게 상상해 본다거나 하는 게 소박한 예일 것이다.
위에서 얘기했듯 부지런함의 비용은 대개 미래에 대한 상상에서 나오는 현재의 감정적 비용이다. 역시 Getting Things Done에 나오는 예이지만, 레몬을 먹는 것을 상상하면 침샘이 침을 분비하듯 상상 속에서는 미래와 현재, 상상과 현실의 구분이 불확실하다. 그런 면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장 1절)라는 성경구절은은 인간 뇌의 작용을 정확하게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부지런함의 불확실한 미래의 비용을 상상을 통해 현재로 끌어올 수 있다면 부지런함의 미래 효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을 내자면, 결국 게으름이 강력한 유혹인 것은 모든 인간 행동의 동기인 비용과 효용 계산이라는 나름 합리적인 과정에 기초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비용과 효용의 균형을 바꾸는 합리성으로 게으름의 왜곡된 합리성에 대항하는 것이야말로 게으름과 싸우는 길이다.
마지막으로, 게으름을 극복하는 법에 대해 얘기하기는 했지만 때로는 게으름에 져야 할 때도 있는 것 같다. 운동 안 하고 쉬어서 몸을 회복해야 하는 날도 있고, 힘만 들고 성과는 안 나는 일이라면 그냥 포기하고 낮잠이나 자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자기계발이든 미래를 위한 노력이든 자신을 아끼는 마음이 기반이 되어야 하는 법이다. 그것이야말로 게으름의 진짜 합리성 아닐까.
주석
- 앞뒤가 있고 앞뒤가 나올 확률이 각각 1/2인 주최측의 동전이다. 괜히 '양쪽 다 앞인 내 동전'이나 '앞쪽이 무거운 동전' 하는 식으로 머리 굴리는 당신은 키보드에 얼굴 박고 반성하삼-_- [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