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의 여동생 절망 ('세 번의 9월과 한 번의 1월' 中)

샌드맨은 그런 꿈의 화신이 주인공인 만화 시리즈다. 그는 삶의 여러 측면을 상징하고 관할하는 일곱 영원 (The Endless) 중 하나로서 꿈결의 군주이다. 그와 죽음, 욕망, 분열 등 형제들은 인간사에 드나들며 때로 간섭하고, 때로 관조한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정말이지 다양한 인간 군상과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 샌드맨의 재미다.
샌드맨 5권 '너라는 게임 (A Game of You1)'과 6권 '우화들 (Fables & Reflections)'은 어떻게 보면 샌드맨 시리즈가 다 그렇듯 꿈과 현실이 맞닿는 경계 이야기다. 그리고 이 경계에서 꿈은 무익한 허깨비 이상의 위력을 보인다. 아니면 현실도 꿈만큼 연약한 허깨비여서 그런 것일까.
5권이 현실을 위협하는 꿈 이야기라면 6권에 나오는 단편들은 뭔가 하나씩 꿈을 쫓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꿈은 첫 단편인 '세 번의 9월과 한 번의 1월'에서처럼 어리석고 허황된 것일 수도 있다. 이야기에 나오는 노튼 1세는 실존 인물로, 19세기 샌프란시스코의 명물이었다. 미국 황제를 자칭하는 그를 보고 비웃을 수도, 재미있어할 수도, 동정할 수도 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예우해주는 모습에서 나는 어떤 위대함을 느꼈다.
광기는 신성하다고 했던가. 생각해 보면 자신에게, 자신의 꿈에 그렇게까지 충실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들 주변과 사회에 적당히 맞추어 살아가지, 자신의 법칙대로 살아가려고 하면 조소와 구설수의 대상이 되기 쉽고, 심지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자기 꿈을 계속해서 외칠 수 있는 사람은 있고, 그런 사람은 이상하고 사회화가 덜 된 사람이지만 동시에 경이로운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예술가라고도 한다.
"광기가... 광기 덕분에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어."
- 꿈의 여동생 분열 ('세 번의 9월과 한 번의 1월' 中)

하지만 때로 그러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내 꿈대로 현실이 따라야 한다고, 내 꿈이 옳다고 뻔뻔하게 주장하는. 아무도 사려고 들지 않는 대본을 수십 군데째 보내는 대본가이든, 다들 돈이 안 된다고 하는 사업에 돈을 쏟아붓는 사업가이든, 미합중국의 황제를 자칭하는 남자이든. 그들을 얼마든지 비웃을 수 있지만, 그들이 굴하지 않을 수록 그 꿈은 현실에도 반향을 일으킨다. 그리고 현실의 일부라도 이들 미치광이의 꿈에 물들어 간다. 그러지 못하고 그들은 비참하게 파멸해갈 수도 있지만, 그 파멸조차 꿈의 증거로 남겠지.
꿈은 아무것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냉엄한 현실 앞에서는 사랑도, 예술도 아무것도 아니다. 그 모든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광기로서, 이런 것은 적당히 감추고 억누르며 살아가야 제대로 사회화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화들'에는 잘 사회화되지 않은 인물들이 뻔뻔스럽게 현실을 꿈의 색채로 칠하려 든다. 사랑의 신화를 쫓아 죽음의 경계를 넘고 ('오르페우스의 노래'), 초상화의 주인공을 쫓아 모험을 떠나기도 하고 ('사냥'), 영원을 위해 현재를 버리기도 한다 ('라마단'). 그리고 그럼으로써 그들의 꿈은 우리의 현실이 되고, 때로는 우리 꿈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세상은 냉엄하고 무자비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바로 꿈꾸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당신에게서, 나에게서 시작한다. 그래서 연약하고 덧없는 개개인의 꿈이란 현실이라는 또 다른 꿈의 시작이기도 하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 히브리서 11장 1절
주석
- 국내 번역판에서는 '당신의 게임'이라고 하고 있지만 난 이쪽이 더 좋다 [돌아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