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위키드: 당신이 몰랐던 오즈의 마녀들 이야기 (2막)

오즈의 서쪽 마녀 이야기를 재구성한 뮤지컬 위키드 2막은 위키드 1막에 엘파바가 빗자루를 타고 마법사의 성에서 탈출한 지 몇 년이 흐른 시점에 시작한다.

뮤지컬 포스터

Thank Goodness

오즈의 마법사와 마담 모리블은 서쪽의 마녀가 얼마나 사악하고 무서운지 오즈 시민들에게 겁을 주며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한다. 글린다는 불안해하는 시민들을 착한 마녀로서 안심시키고, 피예로는 엘파바를 찾으려고 마법사의 경비대장이 된다. 신출귀몰하며 마법사에 저항하는 서쪽 마녀에 대해서는 온갖 소문이 떠돌 뿐 행방은 묘연하다.

피예로에 대해 애만 태우던 글린다는 축제에서 피예로와 자신의 약혼 '소식'을 공표하며 그를 함정에 빠뜨린다. (비디오 2분 35초 정도부터 도망치고 싶어하는 표정이 일품..ㆅ) 멍해있던 그는 시민들이 주고받는 엘파바에 대한 왜곡과 헛소문에 황당해하며 글린다에게 어떻게 저런 소리를 듣고만 있느냐고 따져묻는다. 함께 떠나자는 그에게 글린다는 자신도 마음이 아프지만 사람들이 의지하는 입장이라 갈 수 없다고 하고, 그는 인기를 버릴 수 없는 거 아니냐고 한다.

글린다는 네가 그렇게 필사적으로 엘파바를 찾았는데도 찾을 수 없는 것은 그녀의 마음이 떠났기 때문이라며, 우리도 우리 인생을 살아야지 않겠느냐고 애원한다. 피예로는 네가 그렇게 원한다면 결혼하자고 한다. 글린다는 명성과 인기, 신분상승과 사랑하는 남자와의 약혼 모든 꿈을 이루었는데도 허전한 마음을 달래며 시민들 앞에서 필사적으로 웃는다.

The Wicked Witch of the East

엘파바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먼치킨랜드 주지사가 된 동생 네사를 찾아가 며칠 숨겨달라고 부탁하지만, 네사는 도망자를 숨겨줄 수는 없다며 거절하고 언니에게 모르는 동물을 도와주는 것은 그렇게 열심이면서 동생에게는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생각하던 엘파바는 네사가 아버지에게 받은 신발에 주문을 걸어 걸을 수 있게 해준다. 억지로 네사의 곁에 붙잡혀 지낸 보크는 그 모습을 보고 크게 기뻐한다. 그는 이제 내가 필요없겠다며, 글린다가 피예로와 결혼하기 전에 달려가서 진심을 전해야겠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네사는 나를 떠나게 둘 것 같느냐며 엘파바의 마법서에 있는 주문을 외우는데, 주문이 잘못되어 보크의 심장이 줄어든다. 죽어가는 보크를 살려달라고 네사가 애원하자 엘파바는 주문을 되돌리지는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보크의 몸을 심장 없이도 살 수 있는 양철로 바꾼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 절규하는 보크에게 네사는 엘파바의 짓이라며 언니를 원망한다. 엘파바는 쓰린 가슴을 안고 마법사의 성으로 떠난다.

Wonderful

자신이 변이시킨 날개달린 원숭이들을 구하러 성에 침입한 엘파바는 마법사에게 들키는데, 마법사는 반가워하며 엘파바를 오히려 위로한다. 엘파바는 지친 마음을 털어놓으며 당신이 정말로 놀라운 마법사라고 믿을 수 있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고 토로한다. 마법사는 그건 다 생각에 달린 거라며, 중요한 것은 실체가 아닌 이미지라고 한다. (1막의 Popular가 떠오른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겠지?) 속죄하는 악인만큼 매력적인 이미지도 없다며, 돌아와서 힘을 보태주면 더 이상 도망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그는 설득한다.

유혹을 느낀 엘파바는 원숭이들을 풀어주면 그러겠다고 하고, 마법사는 기꺼이 그렇게 한다. 그 와중에 엘파바는 갖혀있는 딜라몬드 박사와 우연히 재회한다. 말을 할 수 없게 된 채 보통 염소가 된 은사를 보고 충격을 받은 그녀는 죽을 때까지 마법사와 싸우겠다고 맹세한다.

마법사가 경비를 부르자 경비대를 이끌고 들이닥친 피예로는 마녀를 녹일 물을 가져오라며 부하들을 내보내고는 총부리를 마법사에게 돌린다. 소란을 듣고 달려온 글린다는 엘파바를와 반갑게 재회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마법사에게 총을 겨눈 피예로에게 무슨 짓이냐고 따진다. 피예로는 엘파바와 함께 떠나겠다고 한다. (비디오 7:50 경인데, 관객이 박수치는 게 재밌다 ㅋㅋ) 글린다는 그동안 계속 나 몰래 둘이 그런 사이였느냐고 하고, 엘파바는 부인하지만 피예로는 맞다고 한다. 두 사람은 함께 탈출한다.

망연자실한 글린다에게 마법사는 마시고 마음을 달래라고 녹색 병을 권하지만, 글린다는 거절한다. 뒤늦게 도착한 마담 모리블과 마법사는 엘파바를 어떻게 굴복시킬까 궁리한다. 화가 나고 슬픈 마음으로 글린다는 엘파바의 동생을 이용하라며, 네사가 위험하다는 소문을 퍼뜨리면 엘파바는 바로 달려올 것이라고 하고는 머리가 아프다며 쉬러 간다. 마법사와 마담 모리블은 좋은 생각이라는 데는 동의하지만, 엘파바만큼 똑똑한 상대에게는 소문은 소용 없을 것이라고 한다. 마담 모리블은 회오리바람을 부르는데...

As Long As You're Mine (함께하는 순간)

(As Long As You're Mine 가사와 해석)

숲으로 도망친 엘파바와 피예로가 서로 마음을 확인하는 대목인데, 가사나 배우들의 연기에 묻어나는 안타까운 마음과 욕망이 일품이다. 가사나 배우들의 동작을 보면 섹스에 대한 암시가 있지만 실제 무대에 올린 것은 노출이나 외설 없이 사뭇 건전한 게 재밌다. 성애를 고상하고 은근하게 표현하기는 쉽지 않은데, 이 곡 연출은 그 점에 성공한 것 같다.

피예로와 정을 나눈 엘파바는 동생이 위험에 처한 것을 느낀다. 달려가려는 그녀에게 피예로는 동생을 구하고 나면 키아모 코에 있는 자기 성으로 피해있으라고 한다. 두 사람은 재회를 기약하며 아쉽게 헤어진다.

No Good Deed (선행의 대가)

(No Good Deed 가사와 해석)

동쪽의 사악한 마녀라고 불린 네사로즈가 회오리바람에 날려온 집에 깔려 죽은 후, 글린다는 네사의 신발을 회오리에 날려온 소녀 도로시에게 신겨 오즈의 마법사가 있는 에메랄드 도시로 보낸다. 그들을 보낸 글린다는 네사의 무덤에 꽃을 바치며 학우의 죽음을 슬퍼한다. 이때 엘파바가 도착해 동생의 유품인 신발조차 나한테 남겨줄 수 없었느냐며 글린다를 원망하고, 동생의 무덤 앞에서 용서를 빈다. 두 사람은 피예로 문제로 말다툼을 벌이고, 육탄전까지 간 순간 경비대가 달려와 엘파바를 붙잡는다.

이때 피예로가 들이닥쳐 글린다를 인질로 잡고 엘파바를 놓아주게 한다. 피예로의 마음을 의심할 여지 없이 확인한 글린다는 엘파바에게 도망치라고 하고, 글린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경비대는 피예로를 옥수수밭으로 끌고가 엘파바의 행방을 물으며 고문한다.

한편 키아모 코 성으로 탈출한 엘파바는 피예로가 다치거나 죽지 않도록 온갖 주문을 외우지만,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절망에 빠진다. 자신 때문에 죽고 다친, 지킬 수 없었던 사람들--동생과 스승, 그리고 누구보다 피예로를 절규해 부르며 엘파바는 다시는 좋은 일 같은 것은 하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그런 엘파바의 절망을 그린 No Good Deed Goes Unpunished는 이 뮤지컬 최고 명곡 중 하나이다. 특히 에덴 에스피노사 (Eden Espinosa)의 압도적인 존재감과 성량, 그리고 표현력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감동을 선사한다. 억압받는 이들을 도우려고 출세도 명성도 마다하고 온 나라의 비난과 매도를 감내했건만, 결국 돌아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과 파멸일 뿐이라니 누구라도 미칠 지경일 거다. 자신을 지탱해온 신념과 투쟁하며 보낸 세월, 자신의 존재 자체에 회의를 느끼는 시간은 영혼의 작은 죽음과 같다.

1막에서 Defying Gravity (비상) 때도 얘기했던 것이지만 이 곡에서도 흔한 표현, 이 경우 속담을 활용한 재치가 돋보인다. 엘파바가 부르는 No good deed goes unpunished라는 가사는 좋은 일을 하면 오히려 벌을 받는다는 역설적인 경구로, 우리말에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줬더니 보따리도 내놓으라고 한다는 속담이 비슷하다. 나중에 My road of good intentions/ Led where such roads always lead라는 대목은 '지옥으로 가는 길에는 좋은 의도가 깔려있다 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라는 속담에서 따온 것이다. 즉, 의도는 좋았지만 결과는 그야말로 지옥이 된 것을 통탄하는 심정인 것이다.

사실 좋은 의도로 나름 좋은 일을 해도 결과가 좋지 않은 일은 허다하다. 지옥으로 가는 길에 좋은 의도가 널려있다는 속담도 그래서 나온 것 아니겠는가. 누구나 자신의 정의는 있기에 세상이 복잡하고 어려운 거다. 학살자도, 독재자도, 사기꾼도 누구나 의도는 좋을 수 있다. 아니, 누군가에게는 학살자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정의의 사도일 수도 있다. 복잡하게 엉킨 도덕적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낼 것이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가 하는 의문은 녹색 피부의 마녀만이 던질 질문은 아닌 것이다.

March of the Witch Hunters

오즈 시민들은 마침내 마녀를 죽이려고 키아모 코로 진군하고, 양철나뭇꾼 보크가 그 선두에 선다. 글린다는 마담 모리블에게 폭도를 막아야 한다며, 당신이 네사를 죽인 회오리를 불렀느냐고 추궁하지만 마담 모리블은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느냐며 입 닥치라고 일축한다. 글린다는 도로시를 가둬놓은 엘파바에게 달려가 폭도가 오니까 도로시를 놓아주고 피하라고 경고를 해준다. 그러나 엘파바는 오히려 글린다에게 몸을 피하라고 한다.

글린다는 너에 대한 진실을 모두에게 알릴 테니 같이 나가자고 한다. 엘파바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테고 너까지 파멸할 거라며 거부한다. 날 구명하는 짓은 하지 말라는 약속을 받아낸 엘파바는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오즈를 위해 글린다가 대신 해달라며 마법서 그리머리를 글린다에게 건넨다. 이것이 마지막 만남이라는 것을 직감한 두 사람은 우정을 확인하며 작별인사를 나눈다.

For Good (너를 알았기에)

(For Good 가사와 해석)

서로 상대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털어놓는 글린다와 엘파바의 심정이 부드러운 곡과 서정적인 가사를 통해 전해지는 아름다운 곡이다. 수 년 전에 헤어졌을 때에는 엘파바는 감정적인 이상주의자였고, 글린다는 냉철한 실리주의자였다. 그러나 이제는 진실을 덮어버리고 글린다가 자리를 지키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엘파바와 자신이 파멸하더라도 친구의 진실을 알리겠다는 글린다가 맞서고 있다. 글린다는 엘파바를 알았기에, 엘파바는 글린다를 알았기에 그들은 각자 변하고 성장할 수 있었다. 비록 고통스러운 순간도 많았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정을 얻은 그들은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록 세상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두 사람이 아는 진실은 변함 없기에.

여기서도 다시 흔한 표현을 비튼 가사가 돋보인다. For good이라는 표현은 보통 '영영'이라는 뜻인데, 단어의 뜻만을 따지면 '선하게'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여기서는 그 점을 이용해서 '영영 달라졌다'는 의미와 '좋은 방향으로 달라졌다'는 중의를 사용하고 있다. 번역하기는 참으로 애매한 부분이라 해석 가사에는 반영하지 않았다. 어차피 널 만나서 일어난 변화는 좋은 일이었다고 글린다와 엘파바가 노래하고 있기도 하고.

Finale

폭도가 키아모 코를 덮치자 엘파바는 글린다를 숨기고, 글린다는 도로시가 끼얹은 물에 엘파바가 녹는 모습을 휘장에 비친 윤곽으로 목격한다. 모두가 마녀의 죽음을 축하하며 사라진 후 글린다는 자신이 오래전에 주었던 엘파바의 뽀족모자를 안고 통곡한다. 이때 엘파바의 날개달린 원숭이 친구 치스터리가 녹색 병을 하나 건네주자 글린다는 어떤 깨달음을 얻고 마법사를 찾아간다.

에메랄드 도시에 있는 마법사의 성에서 글린다는 엘파바가 학창시절에 보여주었던 엘파바 어머니의 유품을 마법사에게 보인다. 이것과 똑같은 병을 본 적이 딱 한 번 있다며. 당신이 나에게 마시라고 권한 병이었다고... 엘파바가 자신의 딸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마법사는 충격에 주저앉고, 글린다는 공식적으로는 당신이 마법사의 중책에 지쳐서 긴 여행을 떠났다고 할 테니 마법사에게 오즈에서 떠나라고 한다. 이제 오즈의 권력이 글린다 수중에 떨어진 것을 깨달은 마담 모리블은 글린다에게 잘 보여보려고 하지만, 글린다는 그녀를 체포해 가두어 버린다.

마녀의 죽음을 오즈 시민들이 기뻐하는 동안, 엘파바의 주문으로 죽지 않는 허수아비가 된 피예로가 키아모 코 성의 뚜껑문을 열고 그 속에 숨어있던 엘파바를 꺼내준다. 물에 녹는다는 헛소문을 이용해 엘파바는 죽음을 가장했던 것이다. 엘파바의 주문 덕에 목숨을 건졌다는 피예로에게 엘파바는 여전히 당신은 내게 멋지다고 한다. 함께 도망치며 엘파바는 글린다에게라도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하지만, 피예로는 너무 위험하다고 한다.

두 연인이 조용히 오즈를 떠나는 그 시간에 글린다는 오즈 시민들을 안심시킨다. 무서운 시간을 겪었지만 이제 자신이 돕고 싶다며 그녀는 엘파바가 준 마법서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린다. 무거운 짐을 남기고 간 친구의 기억이 생생한 만큼 힘을 다해 오즈에 헌신하겠다는 결의를 다지며, 그녀는 시민들에게 있는 힘껏 웃음을 지어준다. 두 친구는 너를 알았기에 내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되뇌이며 각자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세상에는 떠받들리고 사랑받고 갖출 것은 다 갖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상하고 남달라서 두려움과 미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화려한 인생에는 화려한 대로, 어둠에 묻힌 삶에는 또 그런 대로 각자 애환과 행복이 있을 것이다. 세상은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소문과 왜곡이 곧 진실이 되어버리는 것이 세상의 이치일지도 모르지만, 알아주지 않더라도 또 다른 진실도 있게 마련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선이란 안전과 편의의 또 다른 이름일 수도 있으며, 사악함의 이면에 숨은 얼굴은 자신과 세상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그저 불완전한 한 인간의 처연한 초상일 수도 있다는... 선과 악이 불분명하고 진실과 거짓의 구분을 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결국 마지막 하나 남는 진실은 사람이 사람을 아끼는 마음 그 한 가지 아닐까. 그것이 내게는 오즈의 마녀들 이야기, 위키드의 이야기다.

2011/02/04 23:30 2011/02/04 23:30
로키
분류없음 2011/02/04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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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천망-성은 2011/12/16 13:18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곡해석까지 명쾌하게 해주셔서 너무 잘 보고 갑니다. 꼭 보고 싶은 뮤지컬이네요.

뮤지컬 Wicked: 당신이 몰랐던 오즈의 마녀들 이야기 (1막)

오즈의 마법사에 나온 서쪽의 마녀를 기억하는가? 북쪽의 착한 마녀 글린다와 대립하는 사악한 마녀인 그녀는 자매인 동쪽 마녀가 회오리바람에 날려온 도로시의 집에 깔려죽자 그녀는 유품인 구두를 돌려달라며 도로시를 괴롭히다가 결국 도로시가 끼얹은 물에 녹아서 죽는다.

영화에 나온 서쪽 마녀

바로 이분

그런 서쪽 마녀를 재해석한 이야기가 있다. 1995년작 위키드 (Wicked: The Life and Times of the Wicked Witch of the West)는 바로 그 서쪽의 나쁜 마녀가 주인공인 소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민음사에서 출간했다. 서쪽 마녀 엘파바의 삶과 학창시절, 성인기를 추적하면서 오즈의 역사와 정치를 밀도있게 그려낸 작가 그레고리 매과이어의 필력이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위키드는 또한 성공적인 뮤지컬로도 만들어졌다. 위키드: 당신이 몰랐던 오즈의 마녀들 이야기 (Wicked: The Untold Story of the Wizards of Oz)라는 제목으로 나온 이 뮤지컬은 오즈를 뒤흔드는 정치적 격변 속에 글린다와 엘파바의 우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토니상도 많이 탔다고 하는데, 필자는 솔직히 그게 재밌으면 얼마나 재밌겠어 했었다. 그런데 막상 유튜브에 있는 음악과 클립을 보니 이게 나름 물건인 거다. 노래도 좋고, 스토리를 보며 맥락을 파악하니까 더욱 감동이 컸다.

그래서 뮤지컬 위키드의 하이라이트 (라기보다는 내가 마음에 든 대목들)을 가사 해석과 함께 여기에 소개한다. 필자가 그랬듯 즐거운 감상이 되었으면 한다. 당연히 스포일러 만땅!!이다.

No One Mourns the Wicked (서쪽 마녀의 죽음)

(No One Mourns the Wicked 가사와 해석) <- 클릭하면 새 창에 뜬다

뮤지컬을 시작하는 첫곡이다. 원작 오즈의 마법사 끝에서처럼 서쪽 마녀의 죽음에 기뻐하는 오즈인들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뭔가가 석연치 않다. 어째서 글린다는 마녀를 직접 비난하지 않는 것일까? '그 사람 (you-know-who)'의 사악함을 이겼다고 하면서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직접 말하지 않고 (혹시 볼드모트?!), 진실이 거짓을 이긴다는 말은 무슨 뜻인지 애매모호하다. 게다가 왜 글린다는 사악한 마녀의 인간적인 면모와 순탄하지 않았던 삶을 언급하며 마치 두둔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일까? 또한, 대개의 공연 촬영에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지만 글린다의 얼굴을 클로즈업한 이 비디오에서는 종종 눈물을 참는 듯 슬픈 표정을 알아볼 수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한 오즈인이 글린다가 서쪽 마녀의 친구였다는 소문이 사실인지 물으면서 이야기는 과거로 돌아가고, 두 마녀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귀한 집 아가씨이며 사교계의 스타인 글린다 (당시 이름 갤린다)와 동생 네사로즈 (네사)를 돌보려고 학교에 따라온 녹색 소녀 엘파바는 시즈 교정에서 처음 마주친 순간부터 걷잡을 수 없는 반감과 적대심을 느낀다. 엘파바는 당연히 동생과 한 방에 배정될 줄 알았지만 교장인 마담 모리블은 네사로즈를 자신의 방에서 함께 기거하게 한다. 학생들이 모두 기피하는 엘파바의 룸메이트가 될 지원자를 찾는데 마침 갤린다가 마법 수업에 대해 문의하려고 다가오자 마담 모리블은 두 사람을 바로 룸메이트로 결정해버린다. (외부 링크: Dear Old Shiz)

엘파바가 뛰어난 마법적 재능을 보이자 마담 모리블은 엘파바에게 마법을 개인 교습해 주기로 하고, 다른 마법 학생은 받지 않겠다고 해서 갤린다를 실망시킨다. 오즈의 마법사가 엘파바의 재능에 흥미를 보일 것이라며 알현을 주선하겠다는 마담 모리블의 말에 엘파바는 마법사에게 중용되어 모두에게 인정받는 상상에 들뜬다. (외부 링크: The Wizard and I) 여기서 코믹하면서도 비극적인 대목이 있는데, 엘파바는 자신 때문에 오즈 전체가 축제 분위기가 되는 환상을 본다. 물론 이 예지는 사실이 된다. (위 '마녀의 죽음' 참조ㅡㅡ;; ) 그 외에도 '너무 행복해서 녹아버릴 것 같다'거나 '날 보면 사람들이 비명을 지를 거야!' 같은 가사에도 복선이 깔려있다.

What Is This Feeling (이 기분은 무엇일까)

(What Is This Feeling 가사와 해석) <- 클릭!

What Is This Feeling에서 갤린다와 엘파바는 각자 부모에게 편지를 쓰면서 서로 상대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한참 늘어놓는다. 사랑과 증오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던가. 이 노래의 가사는 제목에서부터 시작해 연애감정을 그린 노래의 관행을 일부러 따라가고 있다. 가슴이 뛰고,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마구 뛰는 등등. 한편으로는 그 부조화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복선이 깔려있기도 하다. 갤린다와 엘파바는 우정을 넘어 사랑하는 사이라고 주장하는 팬도 심심찮게 있으니까.

한편 학교에는 새로운 전학생이 나타난다. 잘생기고 재미있는 윙키 왕자 피예로는 순식간에 학생들의 우상이 된다. (외부 링크: Dancing Through Life) 갤린다는 피예로와 함께 학교 파티에 가고 싶은데 먼치킨 남학생 보크가 귀찮게 따라다니자 그를 떼어놓으려고 엘파바의 동생 네사로즈에게 보낸다. 갤린다에게 크게 고마워하는 네사의 부탁 때문에 엘파바는 갤린다를 적대하지 않기로 한다.

파티에서 갤린다는 뜻밖에도 마담 모리블에게 마법 수업에 받아주겠다는 말을 듣는다. 엘파바가 마법 수업을 갤린다와 같이 듣게 해달라고 마담 모리블에게 부탁했으며, 갤린다를 받지 않으면 자신도 그만두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갤린다가 엘파바에게 버리듯 선물한 검은 뾰족모자를 엘파바가 당당하게 쓰고 나타나서 학생들의 비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보고 갤린다는 더욱 죄책감이 든다. 엘파바는 개의치 않고 혼자서 추고 싶은 대로 춤을 추고, 학생들이 더욱 비웃자 갤린다는 뛰어들어 함께 춤을 춘다. 결국 학생들이 모두 따라서 춤을 추면서 모두 즐거운 시간이 된다. 이 일을 계기로 갤린다와 엘파바는 친구가 되고, 갤린다는 엘파바를 인기인으로 변신시키기로 한다.

Popular (인기녀)

(Popular 가사와 해석) <- 딸깍

Popular는 한편으로는 정말 코믹하고 재밌는 노래이면서도 갤린다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해서 더욱 흥미로운 노래이다. 글린다역을 맡은 배우 중 최고에 드는 크리스틴 체노웨스 (Kristin Chenoweth)의 노래와 코믹 연기를 감상하는 재미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편 오즈의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말하는 동물들에 대한 억압이 심해지고 말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동물이 늘어나는 가운데 (외부 링크: Something Bad, 노래는 3:50 경에 시작) 시즈의 유일한 동물 교수인 딜라몬드 박사가 체포당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엘파바는 갤린다의 남자친구 피예로와 힘을 합쳐 말하는 새끼사자를 구해주고 (미래의 겁쟁이 사자 되겠시며), 둘은 서로 이끌리지만 피예로는 결국 접근해오지 않는다. 엘파바는 피예로가 자신을 사랑할 리가 없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외부 링크: I'm Not That Girl, 노래는 2:25 경에 시작)

이때 마담 모리블이 오즈의 마법사가 에메랄드 도시에서 엘파바를 알현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해준다. 갤린다와 피예로, 네사와 보크는 모두 기차역에서 엘파바를 배웅한다. 피예로는 엘파바에게 꽃을 건네며 행운을 빌어준다. 딜라몬드 박사가 체포당한 날 생각을 많이 한다며... 갤린다는 자신도 마찬가지라며, 자신의 이름을 잘 발음하지 못한 딜라몬드 박사를 기리는 의미로 이름을 '글린다'로 바꾸겠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피예로는 별 감흥이 없어보인다. 그가 나간 뒤 글린다는 피예로의 마음이 식은 것 같다고 슬퍼하고, 엘파바는 그런 그녀를 위로하려고 에메랄드 도시로 같이 가자고 한다. 두 사람은 에메랄드 도시를 더없이 즐겁게 구경한다. (외부 링크: One Short Day)

글린다와 함께 마법사를 알현한 엘파바는 말하는 동물들의 권리를 역설하지만, 마법사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은 채 엘파바를 중용해서 귀하게 쓰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고 능력을 보이라고 자신의 마법서 그리머리를 읽어보라고 한다. 애완원숭이 치스터리를 위한 공중부양 주문을... 놀랍게도 엘파바는 그리머리를 읽어내는데, 주문 때문에 치스터리는 날개가 돋는 고통스러운 변신을 겪는다. 뿐만 아니라 방에 숨기고 있던 다른 원숭이들도 날개가 생긴다. 속아서 원숭이들을 변이시킨 엘파바는 충격과 죄책감에 괴로워하지만, 마법사는 날개달린 원숭이들을 말하는 동물들에 대한 첩보활동에 이용할 생각에 들뜬다. 또한 엘파바와 글린다에게 권력과 높은 직책을 약속한다.

글린다는 그 제의에 기뻐하지만, 말하는 동물들을 억압하는 것이 바로 오즈의 마법사라는 사실을 깨달은 엘파바는 그 자리에서 그리머리를 들고 도망쳐나온다. (외부 링크: A Sentimental Man) 엘파바를 옥상으로 쫓아온 글린다는 마법사를 적으로 돌리는 것이 동물 권익에 도움이 될 것 같냐며, 어쩜 그렇게 사람이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냐고 나무란다. 엘파바는 마법사한테 굽신거려서 일신이 편하면 좋느냐고 쏘아붙인다. 마법사의 언론 비서관이 된 마담 모리블은 엘파바가 불쌍한 원숭이들을 돌연변이로 만든 사악한 마녀라며 아무도 그녀를 믿지 말라는 포고를 내리는데...

Defying Gravity (비상 [飛上])

http://www.youtube.com/watch?v=3g4ekwTd6Ig

(Defying Gravity 가사와 해석) <- 사회자 소개 부분은 생략

1막의 끝을 장식하는 노래로, 워낙에 좋아하는 곡인데 쏙 마음에 드는 비디오는 없어서 두 개를 올려둔다. (두 번째는 소스 가져오기가 안 돼서 링크) 첫 번째는 영국에서 한 공연으로, 이디나 멘젤 (Idina Menzel)의 엘파바는 최고인데 글린다가 좀 떨어진다. 두 번째는 2004년 토니 수상식 공연으로 크리스틴 체노웨스의 글린다가 너무 마음에 들고 연출도 좋은데, 공연시간을 맞추느라 노래가 좀 잘렸고 또 이디나 멘젤이 가끔 흔들렸다. 곡이 마음에 든다면 두 개 다 봐도 절대 후회할 일은 없다.

위키드의 가사에 보면 흔한 영어 표현을 비틀어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곡들이 있는데, Defying Gravity도 그 중 하나이다. 직역하면 '중력을 무시하며' 정도 되지만, 일반적인 용법은 뛰어난 곡예나 비행을 꾸며주는 말이다. (예: A gravity-defying leap! 아니면 That takeoff defied the rules of gravity! 등등.) 이 곡에서는 의미가 중의적인데, 한편으로는 엘파바가 빗자루에 마법을 걸어 날아오르는 물리적인 의미가 있고, 또 더 깊은 의미는 가사에서 드러나듯 절대적인 권력의 위협도, 남들의 손가락질도 개의치 않고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물리적인 비상은 사실 중력보다 절대적인 사회의 압박을 이겨내는 엘파바의 용기를 형상화하는 수단일 뿐이다. 희생이 아무리 커도, 어떤 대가를 치러도 불의와 타협하지는 않겠다는 신념의 힘을...

엘파바의 신념은 이 곡에서 글린다의 야망과 실리주의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비디오에서 잘려서 위 가사 해석에 넣지는 않았지만, 엘파바와 글린다가 주고받는 대사에서도 흔한 표현의 의미를 비튼 것이 있다. I hope you're happy라는 표현인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퍽이나 좋겠구나' 하는 식으로 상대의 행동을 비꼬면서 비난하는 것이다. 두 사람이 옥상에서 한 말다툼은 다음과 같다.

(Defying Gravity: 옥상 언쟁)

여기서까지는 I hope you're happy를 일반적인 용법대로 쓰며 서로 비난하는데, Defying Gravity 노래가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에는 그 의미가 사뭇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말 그대로 서로 친구가 후회하지 않고 행복하기를 빌어주는 것이다. 같은 표현을 맥락만 다르게 해서 자신과는 반대의 선택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하지 않고, 그저 그 선택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는 작사가 일품이다.

서로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은 처음의 반감에서 벗어나 친구가 되었지만, 그렇다고 둘의 생각이나 가치관이 비슷해진 것은 아니다. 엘파바는 여전히 전투적이고 저돌적이며, 자기가 아니라면 세상이 두 쪽이 나도 아닌 고집불통이다. 글린다는 여전히 실리주의적이고 이성적이며, 인기와 화려함을 무엇보다 갈망한다. 거의 뭐 독립투사와 친일주의자의 우정을 보는 기분이랄까..ㅡㅡ;;

엘파바는 글린다에게 비겁하다고 비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글린다는 엘파바에게 현실감각이라고는 없는 바보라고 욕할 수도 있다. 그렇게도 해봤지만, 그러면 뭐하겠는가, 어차피 마음이 변하지도 않는데.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차이를 확인한 이상 남는 것은 이 우정을 버릴 것인가 유지할 것인가 하는 선택뿐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 근원적인 차이를 인정하고 진심으로 친구에게 행복을 빌어주는 선택을 한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곧 악한이라고 매도하고 정죄하는 것이 사람인데, 내 생각에 반대하면서도 나를 있는 그대로 아껴주는 친구의 가치를 어떻게 매길 수 있을까. 우정이 가장 빛나는 그 순간이 곧 헤어지는 순간인 안타까움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나와 다른 길을 가더라도, 이제 함께할 수 없더라도 나는 그녀의, 그녀는 나의 마음에 남아있음을 확인하며, 나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고 있는 힘껏 살아가는 수밖에 다른 무슨 방법이 있을까. 심지어 그 길의 끝이 서로 적으로 만나는 것이라고 해도...

위키드 1막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 2막에서 글린다와 엘파바는 온 오즈의 정신적 지주인 착한 마녀 글린다, 그리고 오즈의 대중이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사악한 서쪽 마녀로서 재회하게 된다. 둘다 마음에는 또 다른 진실을 품은 채, 이미 예정된 파국을 향해.

위키드 2막 포스트에서 계속...

2011/02/03 18:14 2011/02/03 18:14
로키
분류없음 2011/02/03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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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국 여행 ▒ 영국 뮤지컬[Musical] - 영국에서 놓치면 안될 뮤지컬 '위키드' & '빌리엘리어트'를 각각 27.5파운드에 즐긴다 ?! tracked from ●● 미요니의 이야기 2011/05/17 05:17  삭제

    유럽여행을 다니시는 분들을 보면 , 영국에 머무르는 기간이 굉장히 짧은데도 불구하고꼭 ! 가는곳이 있으니 바로 뮤지컬극장입니다 ^ ^ 영국에 머무른지 두달이 훌쩍 넘었는데도 여행 다닌다는 핑계로뮤지컬은 늘 봐야지 ~ 봐야지 ~ 하면서미뤄뒀었는데 ,구름가득낀 날씨엔 역시 뮤지컬이 딱 ! 이라는 생각으로 아침일찍 표를 끊으러 빅토리아 스테이션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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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shsong 2011/02/03 20:38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녀를 불태워라!

  2. 말랑뿌딩 2011/10/12 20:14  수정/삭제  댓글쓰기

    ㅎ 제가 이번에 영어뮤지컬부에 오디션을 봐서 합격했는데여, 제 독창부문이 popular이네요^3^많은 도움 됐습니다.

  3. sda 2011/10/28 15:43  수정/삭제  댓글쓰기

    Sports gears are always an important need for every sportsperson.http://www.rabattuggstovlar.com/ , Be it cheer leading, soccer, cricket, tennis of any other sports.http://www.mbtkouluttajienmyynti.com/ , Different sports gears like sports uniforms and clothing, shoes and shoe's accessories, hair bands, knee bands and wrist bands, or different other products are very important and helpful for every sportsperson.http://www.ostalouisvuitton.com/ ,



    Both men and women athletes need best sports gears for better performance and ease during their performances.http://www.louisvuittonegozio.com/ , There are several sports gears manufacturers, however very few of them make those gears with women in mind. Women athletes have different needs than that of men athletes. They have different physical structure and appearance. They need specifically designed sports gears for them, so that they can feel comfortable and give their best performance to games while playing.

    The most important gears that an athlete needs during their plays are their uniforms, shoes, and shoe's accessories. Above said gears are mandatory for an athlete's performance. However they also need other accessories like knee bands and wrist bands for security purposes. An athlete has to roll over or fall on ground intentionally to perform well or accidentally, causing wounds or scratches. Knee bands and wrist bands help them in reducing the possibilities of wounds, wrist bands also help in wiping sweat during hot and humid conditions.

    Sports shoes are another important (in fact most important) sports gear for athletes. They need to run her and there during their sports performances. A perfect pair of sports shoes helps them in running well securely. Well designed shoes not only helps in running, but they also increase their efficiency and strength by providing them comfort and security. Some popular brands in manufacturing of sports shoes are Adidas, Reebok, Nike and Nfinity. They are well known and trusted name in sports community. Specifically Nfinity is very much popular in making specifically designed shoes for women athletes. When you observer any women athlete or cheerleader closely, you will come to know that most of the cheerleaders and sportswomen prefer wearing different Nfinity shoe products.

    The demand of sports gears have increased drastically. Manufacturers of sports gears now understand the special needs of women athletes and cheerleaders and they have started making special gears for women. This is the latest trend and development in sports gears manufacturing.

삐딱한 감동, '축복하소서'

요즘은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 본방사수는 아니고 VOD로 한꺼번에 보다 보니 지난주에 한 이틀 정도는 드라마만 보며 폐인으로 지내기도 했다. 덕분에 어제는 밀린 일 하느라 샐러드와 파워바만 먹고 종일 뛰어야 했으니, 오호 통재라.

이것저것 하고싶은 얘기가 많은 드라마이지만 일단 지금 얘기하고 싶은 것은 극중에 나오는 '축복하소서'라는기도문이다. 다이빙에 미친 청년 호섭과, 호섭의 요리연구가 어머니의 제자인 연주가 마음을 키워가는 동안 연주가 호섭에게 소개하는 기도시인데, 호섭도 그랬지만 나도 몇 구절 듣고 코끝이 찡해졌다. 각자 열심히 일하고 자기 몫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이 드라마와 어울리는 노동 찬가이기도 하고, 연주처럼 나도 보고 힘을 내고 싶어서 한 번 찾아보았다.
각자 읽고 판단하는 거니까 먼저 시 본문을 적어놓고 더 자세히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정말 좋은 시이니까 읽어봐서 손해는 안 날 거다. 본문은 한국기독학생회총연맹 홈피에서 퍼왔다.


축복하소서

하느님,
당신의 사랑과 권능으로 축복하실 양이면
먼저 정직하고 성실한 밥벌이꾼들을 축복하소서.
저들의 건강한 아내들을 축복하시되,
아홉 남매를 낳아 기르느라 힘들어도
생명을 하느님께서 주셨음을 감사하여
번째 잉태를 허락하시면 기꺼이 낳겠다는
위대한 모정에 축복하소서.

모든 정직한 생산자들을 축복하시되
평생 천직으로 알고 농사지은 밭에서
햇감자를 수확하며
갈퀴 손으로 웃음을 가린
소박한 행복마저 내보이기 수줍어하는
촌부에게 축복하소서.

장님이면서도 병약한 아내를 위해 장작을 패고,
자전거를 타고 동리 구멍가게로 달려가 나무 탁자에 걸터앉아
살가운 평생 이웃들과 소주잔을 나누면서
그게 자신이 사는 행복이라고 웃으며
동리 품앗이가 줄어들게 걱정이라 하는
애옥한 삶에게 축복하소서.

여린 손으로
어린 동생의 밥상을 차려내고
빨래를 하며 연탄을 갈아도
눈물을 감추고 동생을 다독이며
어서어서 자라 간호사 되겠다고
꿈꾸는 소녀가장을 축복하소서.

산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고,
겨울이면 굶는 새들을 위해 먹이를 날라다 뿌려주며,
어쩌다 산행 지척에서 뻐꾸기 우는소리를 들은 날은
뜻밖의 행운이라 즐거워하는
산사람에 축복하소서.

동냥 그릇에 지폐 장을 가만히 놓고는
마치 너무 약소해 미안하다는 듯이
뛰어 사라지는 소녀의 마음과
비탈진 골목에 컨베이어를 만들어
독거노인 집에 연탄을 날라 재어주는 인정과
병든 노인을 찾아가 청소를 하고 목욕을 시켜주는
청년들의 선행에 축복하소서

인간은 최선을 다하여 치료할
치유하는 이는 하느님이시니
행여 실수하지 않도록 도우소서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대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범벅이 되어 나오는
의사에게 축복하소서.

박봉에서 성금을 헐어
매달 또박또박 자선단체에게 송금하는 성의와
무료급식소에서 짓고 설거지하는
사제와 목사와 봉사자들의 아름다운 손들과
곳곳에서 이름조차 드러내지 않은
도우미로 봉사하는 이들 모두에게 축복하소서.

아무리 뼈빠지게 일하고
나보다 못한 삶만 내려다보며 살아도
고작 가족 부양에 애면글면 허덕이는 처지에도
공연히 부자를 욕하지 않고
부정한 돈을 탐내지 않으며,
세금 꼬박꼬박 납부하고
이웃에 끼치지 않고 질서와 법규를 충실히 지켜 사는
보통 사람들에게 축복하소서.

(박종형)


읽어보니 짠한 정도가 아니라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라. 가난과 장애, 고된 노동 속에서도 사람 사는 냄새는 여전하다는, 상투적이지만 진실한 감동의 재확인. 특히 2~4연은 정제된 언어와 잔잔하면서도 마음에 깊이 파고드는 시상에 가슴이 뭉클했다. 극중 연주와 호섭처럼 나도 외워볼 생각인데, 읽을 때마다 목소리가 떨리고 눈에 눈물이 고여서 남 앞에서 낭송은 못하게 생겼다. 그 외에도 각자 열심히 살아가며 서로 돕고 각자 삶이 고단하고 기쁜 인간 군상의 모습을 진솔하게 그린 작품이다.

그렇다고 삐딱한 성격에 감동만 먹고 끝나면 이상하지. (내가 가끔 드라마 속 작은삼촌 병걸하고 비슷하다.) 김수현 작가는 드라마 속에서 2~4연을 집중적으로 인용하는데, 1연부터 인용하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다. 나도 보기 시작하면서 '으잉? 이게 이런 내용이었어?' 했으니까. 아무리 다산을 장려하는 시대라지만 (자녀 9명쯤 되면 아마 주택청약 0순위일 듯) 10 자녀를 넘나드는 다산의 의학적, 경제적, 사회적 폐해는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으리라 본다. 피임의 선구자 마가렛 생거어머니는 독실한 카톨릭 교도였는데, 18번 임신하고 11명의 자녀를 낳은 후 50세의 나이에 사망했다. 생거가 괜히 온갖 비난과 위협에 시달리며 평생 피임 운동을 했겠나.

물론 가족계획, 혹은 1연에서 찬양하는 가족계획의 부재는 본인과 가족의 선택 문제이다. 생거 같은 이들의 활약 때문에 이제는 선택의 문제가 되었으니까 어떤 선택을 하든 그건 개인의 자유인 건 당연하다. 감자농사 짓는 촌부가 농업을 천직으로 생각하듯 자식농사를 천직으로 생각하고, 아이들이 집안을 뛰어다니는 것을 얼마든지 행복으로 삼을 수도 있다. 애한테 꼭 돈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하고, 아이의 혼돈과 불편을 싫어하며, 자기든 아이든 경쟁에 뒤처질까 눈에 불을 켜는 현대 부르주아의 불안불안 양육보다 어찌보면 얼마나 대담하고 순수한 모정인가. 그저 부르주아 아녀자로서 굳이 나의 계층을 위한 변명을 해보자면 꼭 많이 낳아야 위대한 모정은 아니라는 것일 뿐이다.

또 하나 뜨악했던 것은 마지막 9연이다. 뼈빠지게 일하고 삶이 아무리 힘들어도 부자 욕하지 않고 세금 꼬박꼬박 내고 폐 안 끼치고 불법 안 저지르는 사람을 축복하라는 것은, 즉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잘못된 법을 고치자고 하며, 거리에서 데모하는 일꾼은 축복 대상에서 빠진다는 것인가?

물론 모든 걸 남 탓을 하고 생산적인 일은 하나도 안하면서 세상에 대해 불평만 늘어놓는 피곤한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은 일꾼이 아니라 그냥 밥버러지니까 축복받거나 말거나. 반면, 사회에 대해 불만이나 비판이 하나도 없이 사회는완전히 공평하니까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믿는 사람은 바보다. 사회는, 그리고 경제는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이다. 부자와 기업은 조직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데 중산층 이하는 응집과 조직화가 되어 있지 않으니까, 아니 일부러 못하게 하니까 노동조건이 점점 열악해지고 삶은 피폐해지는 것 아닌가. 이 시 9연에서 이야기하는 착하고 얌전하고 말썽 안 부리는 밥벌이꾼은 아무리 정치와 법이 불공평해도, 노동력과 임금과 삶을 착취당해도 '그저 소박한 행복이 최고랑께~'를 외치는 '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신을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것이나 1연의 다산모 내용을 보면 시인이 아마도 카톨릭 교도인 듯해서 더 연상이 되지만, 시를 보고 브라질의 대주교 헬데르 까마라 (발음 맞나?)가 한 말이 떠올랐다.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 나더러 성인이라고 한다. 그들에게 왜 먹을 것이 없는지 물으면 공산주의자라고 한다.' 가난을 순전히 개인적인 자선의 문제로 보고, 가난의 근본적 원인을 해소하는 사회적 개혁을 논하는 것은 터부시하는 빈곤의 낭만화는 결국 교회와 권력의 결탁 아닐까?

적선도, 성금도 좋고, 무료급식소도 좋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선의를 어떻게 삐딱하게만 볼 수 있겠나. 개선과 개혁은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니까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나도 비록 적은 금액이지만 실업자 신세에도 매달 후원금을 내고 있다. 하지만 자선이나 감사하게 받고, 혹은 뼈빠지는 일이나 열심히 하고 영원히 가족 부양에도 허덕이며, 그저 부자 욕 말고 얌전히 있다가 가끔 눈시울 뜨거워지는 감상의 대상이 되는 것이 가난한 이에게 주어진 몫의 전부가 될 수는 없지 않을까. 민주주의는 공짜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회 성원으로서의 권리이자 의무를 다하려면 조직도 하고, 정치 참여도 하고, 불평과 비판의 목소리를 드높이는 '안 착한' 일꾼이 될 필요도 분명히 있다. 물론 그렇다고 틈틈이 동리 구멍가게로 달려가 소주잔 기울이지 못할 이유도 없고.

나하고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다고 '축복하소서'의 시적 완성도나 노동과 삶에 대한 긍정적인 메시지가 손상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내가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가난을 접하면 감상에 빠졌다가도 비판의 가시를 세우게 되는, 완전히 우로도 완전히 좌로도 치우칠 수 없는 중도층 중산층의 자기모순인 거지 뭐. 그렇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천차만별로 살아가면서도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게 사회 아닌가. 일용직 노동자에서 외과의사까지, 살림살이는 달라도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은 마음은 다 똑같은 사람들이 모두 함께.

2010/11/04 10:54 2010/11/04 10:54
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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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1/06 23:49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일이 마지막회던데.. 나도 요즘엔 거의 안보다가 오늘 모처럼 봤네.
    난 이제 좀 힘빼고 지내는편. 고민하던 부분도 그냥;; 소식이 좀 뜸했잖아 ㅎ
    따뜻한 시선을 가진 의식이 깨어있는 모습이 멋져보여 끄적이고 감!
    즐겁고 건강하게 지내시길

    • 로키 2010/11/09 17:35  수정/삭제

      땡큐~ 고민이 덜하다니 다행이다 ㅎㅎ 난 오늘도 또 몇 편 정신없이 봐버린(..)

반쪽의 성공 '아바타'

지난주에는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 (Avatar)를 3D, 아니 의자까지 흔들어 주시고 얼굴에 물뿌려주는 4D로 봤다. 어차피 영화관 외에는 절대 볼 생각이 없으니 아침부터 속이 안 좋은 날이기는 했지만 부득불 가서 봤다. 아마 요즘 아바타 보기 어려운 게 다른 사람들도 나랑 비슷한 생각이라 그런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후회하지는 않는다. 영상은 정말 수준급이었고, 실사와 애니메이션 입힌 실사가 기존의 컴퓨터 그래픽이나 외계인 의상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을 선사했다. 외계인의 생김새는 워낙 실감나고 움직임은 너무나 부드러워서 아바타의 기술적, 시각적 완성도에 대한 찬사는 정말 이해할 만했다.

그러나 그 나머지는... (스포일러)


아바타의 영상이나 기술은 분명 훌륭하지만, 영화의 기술은 좋은 이야기를 전할 때 가장 빛난다. 기술이란 도구이며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바타는 기술적으로 높이 쳐줄 수 있지만 이야기로서의, 따라서 영화로서의 실패는 그 훌륭한 영상 때문에 오히려 더 두드러졌다.

아바타의 가장 긍정적인 영향은 영상기술의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바타의 상업적 성공은 기술개발과 투자심리를 촉진할 것이며, 그 결과 더 많은 3D 영화가 쏟아져나올 것이다. 많이 나오다 보면 그 중에는 명작도 있을 것이다. 아바타가 보여준 기술이 앞으로는 완성도 있는 이야기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 되기를 나는 바라고 있다. 기술에 현혹되어 진짜 재밌는 영화가 무엇인지 잊지 않는다면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
2010/03/19 12:37 2010/03/19 12:37
로키
분류없음 2010/03/19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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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shsong 2010/03/19 15:32  수정/삭제  댓글쓰기

    흥흥! 재미있는 오락영화를 애써 폄훼하다니!

  2. lhovamp 2010/03/21 11:32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바타는 정말 수작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영상에 압도당해 멍하게 있다가 나와서 "잘봤네. 너도 봐라." 하는 목적으로서는 말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교육수준이 가장 높은 편이라는 (낮은 문맹률이라던가 기타 등등) 우리나라에서도 평균적으로 사람들은 한달에 책 한권을 읽을까 말까 합니다. 대중은 더 이상 어떠한 의미를 매체로부터 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압도적인 영상과 음향으로 멍하게 앉아 있다가 나오게 하느냐가 중요해지는 시대가 와버렸습니다. 당장에 그 쪽이 돈이 되니까요.

    (지독한) 편견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이야기" 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영화- 혹은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등 - 가 21세기에도 나왔는지, 저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야기는 오직 문학으로 전달될 때 빛나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이래서 저는 활자중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놈의 회사가 책 읽을 시간을 빼앗아 갑니다. 죽겠습니...)

    • 로키 2010/03/22 21:31  수정/삭제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영화가 요즘에 없나? 월-E도 꽤 수작이었고, 밀양도 좋았고, 다크 나이트라든지 드림걸즈라든지 이번에 아카데미 작품상 탄 허트 로커라든지.. 이야기가 좋은 영화는 찾아보면 많은데, 흥행도 괜찮은 게 많고. 뭐, 드라마는 또 말할 것도 없고. 배틀스타 갤럭티카, 더 와이어, 하우스, 로스트 등등. 소설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영화로 전달하는 게 더 효과적인 얘기가 있는 법이고, 영상 기술은 영화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

  3. 삭풍 2010/03/23 01:32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저 영상과 음향에 멍해져 있다 나온 1인으로서
    뒤늦게 로키님의 비평을 읽고 곰곰히 생각해보니 공감이 가는 점이 많네요.
    하긴 넷에서도 주인공 제이크의 선택에 대해 군인크리VS예쁜 애인잡아 잘먹고 잘살기중에 어느쪽을 선택할지는 자명하지 않냐는 우스갯소리가 있었죠.
    개인적으론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의 전(?)상사인 그 대령이 마지막에 꼭 액션게임의 보스같은 전형적인 분위기를 너무 티나게 풍겨서 웃었던 기억이 나네요.

    아바타의 성공은 결국 영화 트랜스 포머처럼
    역시 영화의 기록적인 성공이란 스토리가 아닌 영상기술에 달려있는것인가 하는 자문을 하게 되는군요.

    • 로키 2010/03/23 12:45  수정/삭제

      씁쓸하죠, 스토리가 아닌 돈과 기술로 승부하는 게 남는 장사라면. 그래도 뭐 좋은 이야기에 대한 욕구는 공급과 수요가 모두 계속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뱀프군처럼 포기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 대령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전형적이었지만, 마지막에는 더 그랬죠..ㅋㅋ 스토리 자체가 전형적인 요소가 참 많았어요. 그 전형성을 창의성으로 신선하게 녹여내지 못한 게 아쉽죠 뭐.

지긋지긋한 고통에 숨은 작은 햇살, 밀양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창동 감독, 전도연 주연의 그 유명한 2007년작 영화 밀양 이야기를 이제서야 하면 유행에 뒤떨어지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것은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나는 이 영화를 바로 최근에야 본 것을. 그리고 유행에 형편없이 뒤떨어지는 사람이라는 것도 사실이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유행에 뒤처진 사람으로서 내가 뒤늦게 본 밀양 이야기를 풀어가도록 하겠다.

꽤 된 영화인지라 감출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지만, 혹시 안 봤다면 미리니름 (스포일러) 무지 많으니 이 글은 피할 것을 권한다.

영화 밀양은 고통이라는 쉽지도 편하지도 않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주인공 신애의 남편은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죽었고, 아들 준도 그 아이가 신애에게 얼마나 소중했는지, 둘의 일상이 작지만 얼마나 행복했는지 보여줄 만큼만 시간을 차지한 후 일찌감치 죽으며 자리를 비켜준다. 누가 죽였는지 궁금해할 추적과 수사의 시간도 거의 없고, 사건에 대한 긴장감이나 반전도 없다. 그저 슬픔이 남을 뿐.

시간과 극적 공간을 채울 만한 나머지를 깔끔하게 걷어낸 후 나머지 영화는 온전히 신애의 몫이다. 그녀가 고통에 멍해있고, 몸부림치고, 작은 빛을 찾아 필사적으로 파고들고, 다시 절망하고, 절규하는 모습으로 나머지 영화를 채워가면서 견딜 수 없는 상실을 겪은 한 인간의 고통과 회복이라는 문제를 끈질기게 추적한다.

그래서 오직 한 사람의 고통을 쫓는 이 영화는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없으면 성립하지조차 않는다. 전율이 일 정도로 섬세하면서도 선이 굵고 과감한 그 연기가 없었으면 밀양은 최악으로 시시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동급의 상대역도, 로맨스나 스릴러, 법정 드라마 등다른 장르적 재미도 일체 없는 영화를 채워가는 전도연의 몫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버겁지만, 그녀는 그 도전 앞에서 갈고 다음은 보석 같은 연기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장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 그녀에게 칸느상은 부족하다 싶을 정도이다.

전도연의 그 연기력 때문에 관객은 (영화 시간이 남은 것은 차치하고라도) 신애가 갑자기 기독교인이 되었을 때 그것으로 그녀의 고통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구원을 받았다는 신애의 웃음은 진실하지 않고 불안하다. 자기 안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가 없기에 고통에서 신에게로 도피하는 그녀의 속내를 어색한 웃음은 그대로 보여준다.

신애의 웃음이 어색한 만큼이나 같은 교인들의 태도도 지나치게 즐겁고 일상적이다. 마치 신애가 아들이 살해당한 것이 아니라 기르던 개가 차에 치이기라도 한 듯이, 신을 믿으면 그 모든 아픔에는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것처럼 신애를 포함해 그들은 그녀의 고통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지 않고, 구원받았으니 이제 고통 끝 행복 시작이라고 필사적으로 말한다.

그러한 고통의 부정과 외면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나는 종교만으로 신애가 고통에서 구원을 얻지 못한 것이 종교나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엄청난 현실에 마주하면 도피하고 외면하고 싶은 인간 본성의 정직한 자화상일 뿐이지, 신애를 도우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한 그 정직하고 선량한 사람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신애와 동료 교인들이 그녀가 겪은 상실과 분노의 검은 구덩이를 화사한 종교적 장식으로 덮으려고 애쓴 것이 공감이 가는 이유가 또 있다. 신애도 알고 있었고, 다른 교인들도 느끼고는 있었을 것이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신애는 미친다는 것을. 신애는,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고통의 심연에 도사린 광기에서 그녀를 구하려고 필사적으로 아름답고 숭고한 종교극을 연출했다.

그 외관에 금이 간 것은 신애가 아들을 죽인 범인을 반대를 무릅쓰고 용서하러 간 면회장면부터이다. 신애의 하나님에게 용서받아 너무나 마음이 편하다며 평온히 웃는 그를 보며 이건 뭔가 아니라고 느낀 것은 나와 신애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슨 짓을 해도 용서를 빌면 그만이라는 값싼 구원의 모순에 직시하면서 종교극의 무대는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사실 아무리 용서를 받았다고 해도 어린아이를 유괴하여 죽인 살인자가 마음 편하게 잘먹고 잘 산다는 게 말이 되는가? 진짜 회개는 그런 게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정말로 회개했다면 그런 짓을 저지르고 마음이 편해서는 안 된다. 매일같이 괴롭고, 참회의 눈물을 흘리고, 속죄해야지, 죄가 아무것도 아닌양 길가에 내던지고 이제 난 평화를 찾았다며 유들유들한 얼굴로 미소짓는 것은 회개가 아니다. 예수가 실제로 한 말씀만 봐도 알 수 있다.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8장 9~14절)
결국 유괴범의 신앙은 신애의 신앙을 일그러진 거울처럼 비추고 있었다. 신애가 고통에 직면하는 대신 종교로 가렸듯, 유괴범도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죄책감에 마주하는 대응물로 종교를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거대한 기만 앞에 종교극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면서 아픔의 검은 심연에서는 차가운 광기의 바람이 불어온다.

고통을 한 꺼풀 가린 종교의 장막을 걷으면서 영화는 그나마 종교적 구원 영화로 편하게 빠질 수 있는 마지막 장르적 출구조차 외면하고 주제의식 탐색의 극단을 향해 질주한다. 추적, 복수, 사랑, 신앙 그 어느 하나의 명쾌한 답도 없이 채 영화는, 그리고 신애는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여정을 걷는다.

어떻게든 피하고 외면하려고 했던 고통의 밑바닥은 역시나 유쾌하지도 아름답지도 않다. 그곳은 어둡고, 복잡하고, 더럽고, 추하다. 그러면서도 부흥회에서 '거짓말이야'를 트는 장면에서처럼 통렬한 웃음을 잊지 않는 감각에 이창동 감독과 극작가에게 경이를 표하는 바이다. 미로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는 답답한 길 위에서, 견딜 수 없는 신애의 아픔과 분노에는 어떤 쉬운 해답도 없다.

신애는 목숨은 건지고 치료를 받지만, 멋진 의사선생의 말 한 마디에 울음을 터뜨리며 깨달음을 얻는 의학드라마조차 피한 영화 속에서 그녀의 회복은 여전히 길고 어렵고, 결국 불완전할 것이라는 짐작은 쉽게 할 수 있다. 상실의 아픔은 끝끝내 안고 갈 짐이라는 것을, 구원은 어느 순간 쏟아지는 광휘가 아닌, 아무리 아파도 묵묵히 걷는 가시밭길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신애에게 전도했던 약사가 신의 뜻이 깃들어 있다고 한 그 햇살은 어디에나 숨어있다. 우리가 딛고 사는 땅, 숙명처럼 상실을 겪은 여자가 잘라낸 머리칼이 흩어지는 그 흙 위에도 따사로운, 은혜로운 햇살은 깃든다. 생각만 해도 벅찬 회복의 여정을 묵묵히 걷는 신애의 포기하지 않는 정신 속에, 신애 말대로 인테리어를 바꿨더니 손님이 늘었다고 좋아하는 이웃의 웃음 속에, 눈길 하나 주지 않아도 그녀를 쭐레쭐레 쫓아다니는 노총각의 헌신 속에, 인간이라는 연약하고 때로 추악한 존재 속에는 작은 햇살이 숨어있다. 버거운 슬픔 앞에 그 온기는 불완전한 해답이지만, 때로는 유일한 해답이기도 하다. 고통의 끝에서 붙잡을 수 있는 것은 그 작고 보잘것없는 희망밖에 없기에.
2009/12/26 13:21 2009/12/2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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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전철에서 V for Vendetta를 읽다

V for Vendetta
만화계의 전설 앨런 무어 (Alan Moore)가 글을 쓰고 데이빗 로이드 (David Lloyd)가 그린 만화 V for Vendetta (이하 내멋대로 번역인 '복수극의 V'라고 칭하겠다)는 영화판이 나올 때 알려졌듯 V라고 자칭하는 테러리스트가 주인공이다. 전체주의 정부에 맞서는 무정부주의 테러리스트의 이야기는 반향과 논란을 함께 불러일으켰다. 정치적 폭력에 정당화의 여지가 있는가, 테러리스트가 영웅일 수 있는가 등등.1

미어터지는 출근 지하철에 서서 읽기 시작해서 그럴까, 내가 이 책을 본 관점은 좀 달랐다. 정치적 의도의 폭력과 테러리즘에 대한 논의는 이미 봐서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폭력의 문제 자체보다 나를 사로잡은 것은 지하철이라는 상황과 작품의 연관성이었다. 이곳, 왜 이 많은 사람이, 내가, 우리가 새벽부터 이 미어터지는 출근 전철을 메우고 있는가? 하는 새삼스런 놀라움.

'복수극의 V'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이 정치적 폭력의 문제일지 몰라도 그 출근 전철에서 나는 우리 사회, 특히 서울이라는 곳에 만연한 경제적 강제력을 실감했다. 우리들은 왜 새벽부터 고단한 몸을 이끌고 가축처럼 기차칸에 우글우글 몰려 인구 천만의 도시로 꾸역꾸역 몰려드는가? 개개인의 의지와 상관없는 거대하고 엄정한 경제적 논리가 우리들을 이 전철에 몰아넣었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쳐왔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모여있으면 흔히 들 수 있는 생각이지만, 다들 똑같아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에, 문이 한 번 열릴 때마다 쏟아지듯 몰려들어오는 지친 몸들이 순간 공포스러웠다. 마치 우리가 정말로 가축칸에 누군가 몰아넣은 짐승인 것처럼, 각자의 생각과 꿈과 욕구 같은 건 없이 몸으로서, 경제라는 기계를 돌리는 고기 톱니바퀴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V에 나오는 전체주의 국가의 국민이 개성은 아무래도 좋은 국가의 구성요소로서, 혹은 제거해야 할 방해물로서만 존재하듯이.

그때가 세 번째 중 처음 운 순간이었다. (미리니름)


가축 우리처럼 붐비는 출근 전철에서 읽기 시작한 '복수극의 V'라는 작품은 그래서 내게 개개인의 존엄성과 특별함이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테러 그 자체보다도 더 근본적인 것, V가 전체주의 국가에 대항해 정치적 동기의 폭력을 행사하는 근본적인 이유인 개개인의 가치가 내게는 크게 와닿았다.

개인의 자유와 존엄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해 싸우는 V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것은 어떻게 보면 역설적이지만, 다르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자신의 개인성을 대외적으로 숨김으로써 그는 역설적으로 어느 한 사람이 아닌 모든 사람이 되니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고 싶다는, 부품이나 희생양이 아닌 자신의 가치와 존엄을 존중받고 싶다는 모든 인간의 염원의 표현이,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한 투쟁이 바로 V의 진짜 정체이며 의미이다.


Footnote.
  1. 사실 누군가의 테러리스트가 다른 사람의 영웅이라는 건 이미 다들 잘 아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우리가 '의사'라고 하는 안중근, 윤봉길 의사만 봐도--어렸을 때 로키는 이분들이 의사선생님인 줄 알았지만--객관적으로는 테러리스트 아닌가. 다만 정치적, 군사적 지도자를 표적으로 하는 폭력은 의도적으로 민간인을 표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훨씬 정당화의 여지가 있다고는 생각한다. [Back]
  2. the last inch - 번역본은 '마지막 부분'이라고 하지만 알아먹기 어려워서 '한 치'라고 하겠다 [Back]
2009/12/26 11:35 2009/12/26 11:35
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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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V 2011/05/15 19:08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대한 국가 조직에 '국가 차원의 제재'는 불가피한 요소긴 합니다만,
    V가 살고 있는 사회가 가지는 그 제재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했기 때문에
    V의 폭력성이 어느 정도 정당화 되는 것이 아닐까요.

    • 로키 2011/05/20 08:59  수정/삭제

      예, 그래서 V가 일방적인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논란거리가 될 수 있는 거겠죠.

      국가의 목적을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한다면 국가가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면 저항의 권리도 있는 것이니까요.

      저도 폭력 외에 저항의 여지가 없다면 폭력도 정당화된다고 생각합니다. 넬슨 만델라도 그런 말을 했었고요. (그 양반 2008년에야 미국 테러리스트 목록에서 지워지기 핸지만(..))

      물론 정상적인 정치 참여의 여지가 있는 사회에서는 절대로 안 되는 일이지만요.

I Dreamed a Dream

오늘은 영국 가수 발굴 프로인 Britain's Got Talent에 출전한 수전 보일 (Susan Boyle) 오디션을 보고 얼마나 감동을 먹었는지 모른다. (노래는 1:35경부터 시작) 노래라고는 성가대와 가라오케에서밖에 한 적 없는, 고양이와 둘이 사는 마흔일곱 살 노처녀는 그녀를 깔보던 청중을 노래를 시작한 순간 팬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청중이 감응한 건 그녀의 놀라운 재능 때문만은 아니라고 본다. 그녀의 비디오를 눈물 글썽이며 몇 번이나 보다가 다른 I Dreamed a Dream 비디오를 찾아본 결과, 어떤 세계적인 가수가 부른 I Dreamed a Dream도 이 통통하고 촌스러운 스코틀랜드 아줌마가 부른 노래에 발끝만큼도 닿지 못했다.

워낙에 보일의 목소리가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녀가 선사한 감동의 진정한 실체는 노래와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 삶의 무게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가수를 꿈꾸었지만 기회가 없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세상이 보기에 별볼일 없고 수수한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좌절을 겪었으며, 그 속에서 꿈은 얼마나 멀게만 느껴졌을까.

하지만 그녀의 넉넉하고 환한 웃음과 활달하고 기품있는 태도에서는 생활의 권태와 삶이 안겨주는 실망을 훨씬 넘어선 여유와 힘이 있다. 꿈을 평생 좌절당하고도 낙천적이고 밝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사람, 삶의 그늘과 빛을 모두 아는 사람만이 수전 보일이 부른 I Dreamed a Dream을 부를 수 있다. (아, 물론 재능도 넘쳐야 한다.) 노래에는 목소리와 기술뿐 아니라 마음과 영혼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들어가니까.

I Dreamed a Dream은 뮤지컬 레 미제라블 (Les Miserables)에 나오는 인물 팡틴의, 좌절당한 꿈과 절망스러운 삶에 대한 노래이다. 소설에서는 그렇게 비중 있는 인물은 아닌데, 뮤지컬에서는 여주인공 급인 모양이다.

팡틴이라는 인물은... (스포일러)


다음은 I Dreamed a Dream 가사와 해석. (수전 보일 오디션에 나온 가사는 색을 표시한 부분만이다.)

I Dreamed a Dream

꿈을 꾸었네

There was a time when men were kind,
And their voices were soft,
And their words inviting.
There was a time when love was blind,
And the world was a song,
And the song was exciting.
There was a time when it all went wrong...

남자들이 친절하던 때가 있었네
목소리는 부드럽고
말로 마음을 끌던 때가.
사랑에 분별이 없던 때가 있었네
세상은 노래였으며
그 노래는 얼마나 생동했는지.
모든 것이 잘못된 때가 있었네...

I dreamed a dream in time gone by,
When hope was high and life, worth living.
I dreamed that love would never die,
I dreamed that God would be forgiving.
Then I was young and unafraid,
And dreams were made and used and wasted.
There was no ransom to be paid,
No song unsung, no wine, untasted.

지나간 시절에 꿈을 꾸었네
희망이 있고 살 가치가 있던 때에
죽지 않는 사랑의 꿈을 꾸었네
관대한 용서의 신을.
그때는 젊고 두려움 없었네
꿈은 만들고 소모하고 버렸었고
어떤 대가도 낼 필요 없었고
부르지 않은 노래, 맛보지 않은 술도 없었네.

But the tigers come at night,
With their voices soft as thunder,
As they tear your hope apart,
And they turn your dream to shame.

그러나 밤이면 호랑이가 나와
천둥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희망을 찢어발겨 버리고
꿈을 수치로 짓밟네.

He slept a summer by my side,
He filled my days with endless wonder...
He took my childhood in his stride,
But he was gone when autumn came!

그는 여름 한 철 내 곁에 잠들었지
날이면 날마다 끝없는 놀라움
어리기만 한 나를 보듬었던 그는
가을 바람 불어닥칠 때 가버렸네.

And still I dream he'll come to me,
That we will live the years together,
But there are dreams that cannot be,
And there are storms we cannot weather!

그가 돌아오는 꿈을 여전히 꾸지
평생 함께할 거라고
그러나 이룰 수 없는 꿈도 있으며
헤쳐갈 수 없는 폭풍도 있으니.

I had a dream my life would be
So different from this hell I'm living,
So different now from what it seemed...
Now life has killed the dream I dreamed...

내가 지금 살아가는 현실과
너무나 다를 삶을 꿈꾸었었네
생각한 것과는 너무나 다른...
삶은 내 꿈을 죽여버렸네.
2009/04/15 18:12 2009/04/15 18:12
로키
분류없음 2009/04/1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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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hovamp 2009/04/17 23:03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의 인터뷰 부분이 재밌군요.

    • 로키 2009/04/19 12:16  수정/삭제

      완전 시골 노처녀의 전형! ㅋㅋ

  2. 블로그이쁘네요 2009/04/20 19:32  수정/삭제  댓글쓰기

    http://www.youtube.com/watch?v=-Jo4FvpN3_g
    발끝은 좀 아닌 것 같은데요. 수잔보일의 음색이 사람의 감정을 끌어 올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다른 가수들이 폄하될 정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 로키 2009/04/20 21:06  수정/삭제

      아, 루디 헨샬 버전이군요. 제가 본 것 중 수전 보일 다음으로 좋았죠. (그 다음은 아레사 프랭클린, 그 다음은 헤일리 웨스텐라, 제일 맘에 안 들었던 공연은 엘리자베스 쿤.) 발끝에도 못미쳤다는 건 노래의 감동에 대한 저의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일 뿐, 기술적으로는 헨샬과 프랭클린이 더 낫죠. 기술과 연기력을 포함한 객관적인 평가는 헨샬이 가장 높다고 생각하고, 해석의 독창성은 프랭클린이 더 뛰어났죠. 순전히 미성으로만 따진다면 웨스텐라가 보일을 능가하고요.

      하지만 제 심금을 울리는 데에는 이 세계적인 가수 중 누구도 수전 보일 발끝만큼도 못 미친 건 사실이에요. 저는 미래의 수전 보일조차도 저만한 공연을 다시 할 수 있을지 의문이거든요. 과연 꿈을 이룬, 매니저와 소속사가 있고 상업성을 생각해야 하는 가수가 어머니를 잃은 후 2년 간의 침묵을 처음 깬 시골 노처녀의 노래에 미칠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수전 보일의 이 첫 공연이 더 소중하기도 해요. 다듬어지고 세련된 예술가는 자신을 감추는 법을 배우게 마련인데, 그러기 전의 모습을 볼 수 있었으니까요.

  3. 지나가다 2009/12/25 15:43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솔직히 아마츄어랑 프로랑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
    적어도 유튜브에 올라온 여러 가수들의 노래 중에서
    루시 핸셜이 정말 잘합니다.
    캐릭터와 가사를 고려한다면 이 노래는 곱게 부르는 노래는
    아니죠.
    거장 아리사 프랭클린의 노래도 정말 너무나 색다르죠.
    달리 '소울의 여왕'이겠습니까.

    보일의 경우, 그녀의 사정을 듣고나서 노래를 들었을 때 감동적이라고
    느끼게 되고 관중들이 환호하니 분위기를 타는 상황이죠.
    이런 부분을 제외하고 실제로 노래만 들어보면 특별히 감동을 주는
    수준은 아니라고 봅니다.

  4. dfjoajiaofd 2009/12/26 01:00  수정/삭제  댓글쓰기

    중요한건 아마츄어인데 프로보다 잘하느냐가 아니죠.. 잘하는것은 기준은 '기교' 와 '감성' 이 있겠죠..

    감성으로 기교를 판단하는 것도 좋지 않지만

    기교로 감성을 무시해버리는것도 말이 안되죠..

    • 로키 2009/12/26 11:02  수정/삭제

      그렇죠, 두 가지가 다 필요한 것 같습니다. 안정적으로 감동을 주는 것은 물론 기술이라는 점에서 기교를 평가절하할 수는 없지만, 저의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보일의 그 첫 오디션은 대단한 감동이었어요. 물론 연출의 힘도 있었고, 여러 가지 상황이 어우러진 만큼 재현하기는 어려운 순간적인 감동이기는 했지만, 그래서 그 순간이 더욱 소중했다고 생각해요.

생존을 넘어 살아가기: Wall-E

사용자 삽입 이미지
주말에는 픽사르와 디즈니의 매우 성공적인 합작의 또 다른 결과물인 월리 (Wall-E)를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극찬했던 대로 상당히 괜찮고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기계에서 인간보다 인간다운 감정을 끌어낸 디자인부터 시작해 성장과 용기라는 쉽지 않은 주제를 다정다감하게 다루어낸 대본까지 '월리'는 상당히 뛰어난 작품이다.

more..

2008/11/26 00:36 2008/11/26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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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8/11/26 10:20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 Sihaya 2008/11/27 09:53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관점으로..
    디즈니도 나름대로 성장하고 있구나 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영화였죠. -_-

  3. lainavi 2008/11/28 09:32  수정/삭제  댓글쓰기

    I know what you did last weekend.

    -_-월리같은 소리...피식.

    • 로키 2008/11/28 18:55  수정/삭제

      지난 주말에는 보다시피 건전하게 월리를 봤지! ㅡㅡv

비행기에서 본 영화 세 편

귀국 비행기에서 영화를 세 편 보았다. 정확히는 두 편을 보고 한 편은 보다가 포기했으니 2.5편쯤 봤다고 해야 할까. 이워 지마에서 온 편지 (Letters from Iwo Jima), 인간의 아이 (Children of Men), 드림걸즈 (Dreamgirls) 순서였다. 그 얘기를 하자면...

스포일러! 미리니름! 네타바레! 보기


2007/06/05 18:41 2007/06/05 18:41
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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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넬리


편지: 드디어, 파리넬리.

오늘밤 우리의 오랜 대립이 끝을 맺는구나.

신 앞에서 우리의 빚을 정산하자.

두 사람의 소년기에 형이 약속한 오페라를 기억하는가?

그가 얼마나 흥분하며 오페라 이야기를 했는지?

그것이 네 거세의 고통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울부짖는 양심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는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는가?

핸델: 이제 진실을 직시할 때가 왔다.

유년기부터 너를 괴롭혀온...

알고 있었으면서 어째서 외면하는가?

너를 거세시킨 형에게 재능을 바쳐왔음을.

형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핸델의 얼굴에 침을 뱉었지.

네가 당한 것과 같은 짓을 나에게 했구나.

나의 상상력을 거세했어.

나는 다시는 오페라를 쓰지 않을 것이다.

너에게 처음 알리는 것이며, 오로지 너의 책임이다.

나에게 빼앗은 노래를 끝까지 부를

힘을 달라고 신께 기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파리넬리.

Farinelli Il Castrato (카스트라토 파리넬리)는 제목 그대로 18세기의 유명한 카스트라토 까를로 브로스키, 예명 파리넬리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아닌만큼 뭐, 허구적 가공은 필연적으로 들어갔지만. 아이팝에서 공짜로 해주길래 보느라 밤늦게까지 감동먹었던 영화이다. (시하야님도 끌어들여서 둘이서 MSN으로 수다떨면서 봤다는 전설이..) 수려한 영상과 아름다운 노래, 배신과 증오를 뛰어넘는 예술혼과 사랑, 마지막에는 용서와 화해로 이어지면서 줄곧 사람을 놔주지 않는 감정선...

특히 한참 옛날 노래들인데도 파리넬리가 초기에 불렀던 형의 노래들과 나중에 핸델의 노래를 부를 때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특별히 클래식에 정통한 것도 아닌데도 기교만 부리고 가벼운 곡과 진중한 감동을 주는 곡은 내가 듣기에도 차이가 났다. 영화에서 핸델이 파리넬리의 적수로 나오지만, 그러면서도 파리넬리의 목소리를 진정 해방시켜준 것도 핸델이었다는 것은 참 역설적.

Venti, Turbini (바람이여, 회오리여) - 1절

Di speranza un bel raggio
Ritorna a consolar l'alma smarrita;
Sì adorata mia vita!
Corro veloce a discoprir gl'inganni;
Amor, sol per pietà, dammi i tuoi vanni!

희망의 서광이 다시 한번
내 요동치는 영혼에 비추게 하라
사랑하는 이여!
나를 기만한 자들을 치러 이제 달려가니
사랑의 큐피드여, 불쌍히 여기어 날개를 달아주오!

카스트라토란 참 여러가지 면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남자가 입을 여니까 소프라노 목소리가 나오는데 한편으로는 소름끼치면서도 얼마나 멋진지... (영화의 목소리는 낮은 소프라노와 테너를 합성했다고 들었다.) 카스트라토가 거세된 남자이면서도 의심의 여지 없이 '남자'라는 점이라든가, 생식력이 없으면서도 성욕도 있고 여자들이 따르는 점이라든지..  (실제로 성욕 자체는 적을지 몰라도 거세된 남자들도 발기도 되고 다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존재가 있을 때 그의 주변에서는 끝없는 갈등과 변화, 경계의 재편성이 있게 마련이다. 파리넬리가 바로 그렇다.

카스트라토의 역사는 의외로 19세기 후반까지도 이어져서, 가장 늦게까지 유지했던 이탈리아가 1870년에 법으로 금지했다. 1902년 레오 13세의 포고로 영원히 교회 음악에서 카스트라토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고 교회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카스트라토 알레산드로 모레스키가 1913년 떠나갔으니, 카스트라토가 사라져 간 것은 아주 옛날 일도 아닌 것이다.

Venti, Turbini - 2절

Venti, turbini, prestate
Le vostre ali a questo piè!
Cieli, numi, il braccio armate
Contro chi pena mi diè!

바람이여 회오리여, 나의 발걸음에
그대들의 날개를 빌려주오
하늘이여 신들이여, 나의 팔을 강하게 하소서
나에게 고통을 준 자들에게 대적하도록!

현대에는 매우 드물게 거세 없이 호르몬관계가 비정상인 카스트라토나 특수훈련을 받아 카스트라토 음역을 내는 가수는 있을지 몰라도 음악을 위해 어린 소년을 거세하는 야만적인 풍속은 사라졌다. (그렇게까지 해도 가수로 성공하는 비율은 극히 낮았다는 점이 또 비극이지만...) 실제로 당시에 카스트라토를 위해 작곡된 곡 중에는 오늘날에는 공연이 불가능한 것도 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비록 잔혹한 야만성의 산물이지만 파리넬리와 같은 위대한 예술가의 목소리를 듣고 그 아름다움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카스트라토를 부자연스러운 존재라고 혐오한 영화 속의 핸델마저도 결국에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 비인간적 풍속이,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천상의 목소리는 그 고통의 깊이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진흙 속에 피어난 연꽃처럼...


Lascia ch'io pianga (울게 하소서)

Lascia ch'io pianga mia cruda sorte,
E che sospiri la libertà.

Il duolo infranga queste ritorte
De' miei martiri sol per pietà.

울게 하소서
나의 고통스런 운명에
한숨으로 나는
자유를 갈구하나니

이 고통으로 인하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어
이 환난의 사슬이
끊어지기 간구하나이다
2006/11/22 03:48 2006/11/22 03:48
로키
분류없음 2006/11/22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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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krdmswkddls 2007/05/21 16:23  수정/삭제  댓글쓰기

    ggg

  2. 김도클 2009/11/04 04:21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글 쓰셨네요.
    많은 도움이 되었고 재미있고 유익한 글이었습니다.
    동영상도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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