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의 날: 시타델, 콘도티에르, 카르카손
얼마 전까지 보드게임 생활에 심한 회의를 느끼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때 이후 티츄 몇 번 하면서 (의지박약..ㅡㅡ;;) 내가 생각만큼 바보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특별히(?) 보드게임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래서 어제는 뱀프군 주도로 한 보드게임 모임에 나가 승한군, 뱀프군, 준영군, 지준군과 함께 민토에서 놀았다.
첫 게임은 시타델. 라운드마다 왕, 마법사, 상인, 주교, 용병대장 등 플레이어 역할이 달라지고 각 역할의 특징을 이용해 건물을 짓는 게임이다. 플레이어 하나가 건물 8개를 지으면 끝나고, 건물마다 점수를 받는 방식이다. 라운드마다 누가 어떤 역할인지 모르고 시작하는 점에서 생기는 의외성이 특히 재밌었다. 대를 이어 도둑질 하는 준영군의 감명깊은 장인 정신이라든지 (비록 손자 대에서 좀 말아먹었지만), 누가 건물 8개 지으면 용병대장이 나타나서 건물 뽀개는 과정의 연속이 인상깊었다.
콘도티에르는 이탈리아 도시에 말을 놓아 전장을 정한 뒤 차례대로 손에 쥔 카드를 내려놓으면서 합계가 높은 사람이 도시를 점령하고, 서로 맞닿은 도시 3개를 점령하면 이기는 게임이다. 언제 숫자카드와 특수카드를 소모하고 언제 카드를 아끼고 철군할지 정하는 자원 관리의 묘미가 있다. 더불어서 거래와 배신의 재미도 빼놓을 수 없고.
네 번째 게임은 타일을 내려놓으며 맵을 완성하는 그림 맞추기 게임 카르카손. 강 확장팩까지 해서 얼마 안 남은 시간 동안 놀았다. 처음에는 승한군이 좀 달렸고, 나랑 준영군은 (지준군의 농간에! ㅠㅠ) 성을 완성할 수 있을까 조마조마하다가 거의 마지막에 완성하면서 하이파이브 작렬. 하지만 결국 1등을 간 건 농부를 박아둔 장기투자형 석한군이었다. 잠을 거의 못 자서 정신이 오락가락했다는 석한군은 제정신으로는 절대 카르카손 1등은 못 했다고 주장했다.

최종적으로 내가 1등 하기는 했지만, 사실 결정권을 행사한 건 내가 아니라 마지막 라운드 용병대장 승한군. (그 라운드에서 내가 선택권이 있었는데도 용병대장 안한 게 판단 미스였던 것 같다.) 나 아니면 지준군이 건물 8채를 가장 먼저 완공한 보너스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승한군이 지준군 건물 중 좋은 것을 부순 덕에 1등 갈 수 있었다. 승한군 회비는 내가 내는 걸로 뒷거래 완료 (?). 뭐 원래 용병단한테 돈 주고 배신시키는 건 중세 전쟁의 기본인 거다. (먼산)
두 번째, 세 번째 게임은 용병이 짱이라는 주제의식의 연속으로서 콘도티에르. 9월 말 귀국 환영회 때도 했던 게임이었는데, 그때는 사실 이걸 무슨 재미로 하나 싶었다. 이번에 다시 해보고서야 이게 얼마나 재밌는지 깨달았다. 누구 말마따나 이건 한 번쯤 해봐서 좀 사악해져야 재미있는 게임인가보다.

첫 판의 나는 특수카드라고는 까마귀 (이미 내려놓은 숫자카드를 다시 손에 되돌릴 수 있는 카드) 한 장밖에 없이 눈물을 뿌리며 때를 기다렸다. 가끔 패스 안하고 낮은 카드 내려놓아서 다른 사람들 카드를 소모시키는 정도만 하다가, 남들이 피렌체 등의 격전지를 두고 싸우며 거의 다 손 털었을 때 북부에서 지준군과 1:1로 붙었다. 지준군은 나에게 북서부 구석의 도시 하나를 넘길 테니 밀라노를 달라고 했고, 나도 그러마고 했다. 다들 밀라노가 더 좋다는 의견이었지만.
그리고 지준군이 포기한 상태에서 도시를 점령한 후... 손에 쥔 카드를 비교해보고는 협약을 깨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역시 힘이 불균등하면 약속 이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건 현실이나 게임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원망 들을 각오는 해야겠지만. (미안 지준군..ㅠㅠ) 눈 내리는 밀라노에서 (눈 카드 나오면 히로인 외의 모든 숫자 카드가 1) 머릿수로 버티며 결국 약속을 배신하고 밀라노에 입성했다.
이후 다시 카드를 돌렸는데 이번에는 패가 좋았다. 도시를 두 개 점령했으니 14장이라 카드도 많았고. 까마귀떼가 아주 통째로 날라와서 10을 넣었다 뺐다 하며 남들 카드 소모시키고 북부의 도시를 하나 더 점령해 3개 연속 천하통일 달성.
두 번째 콘도티에르 판은 상당 부분이 운이었다. 첫 핸드는 제일 높은 숫자 6에 특수카드는 까마귀와 교황 들고 눈물을 삼키며 때를 기다리다가 도시 좀 점령하고, 마지막 한 장 교황을 (전투 무산 카드) 아끼고 아끼다 승한군의 승리를 저지하며 털었다. 석한군이 노른자 피렌체와 연속하는 도시 하나를 먹어 유력해 보이는 가운데 준영군도 2개 연속 점령, 승한군은 4개 점령해서 아무도 3개 연속이 안 나오면 판정승으로 이기는 상황이었다. 나도 북서부에 연속하지 않는 도시 3개가 있어서 승리로 갈 길이 몇 갈래 있었다.
그렇게 1등 갈 수 있는 사람이 몇 명 있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내 패가 엄청나게 좋아서 결국 내가 1등 갔다. 승한군은 도시 수에 힘입어 카드가 무려 18장이라 다들 긴장했는데 거의 1이나 까마귀였다는 암울한 후일담을 나중에 들을 수 있었다. 석한군도 카드가 매우 안습했다고 하고, 난 하이카드와 특수카드가 난무하는 행운의 핸드. 비록 10과 히로인까지 내려놓았다가 교황님 나오시는 바람에 아멘~을 외치며 철군했지만, 아직 10과 열쇠가 남아 있어서 (내려놓는 순간 가장 높은 합이 이김) 카드값을 2배로 불리는 지준군의 둥둥거리는 북소리에 하이카드로 버티다 열쇠로 연속 3개 달성했다. 1위가 가능한 위치까지 간 건 판단이었다 해도 마지막에 간 건 정말 운빨이었다.
(나중에 승한군에게 한 얘기이지만 콘도티에르의 배경인 이탈리아 혼란기에 활동한 마키아벨리는 자기 이름을 라틴어로는 말클라벨루스 (Malclavellus)라고 썼다. 뜻은 '나쁜 열쇠.')

그렇게 어두워진 후 민토에서 나와서 뭘 먹을까 얘기하다가 결국 피자헛 행. 처음에 지준군은 저어했지만 '좋다고 할 때까지 팬다'는 간단한 해결책으로 만장일치해서 피자 먹었다. 치즈 크러스트 피자가 맛있었고, 코코넛(가공)유로 먹는 시리얼도 괜찮더라, 좀 달기는 했지만. 먹고 헤어져서 집에 와서 운동이랑 청소하고 씻은 후... 또 놀았다. 정말 푸지게 논 주말이다. 다들 수고했고,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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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3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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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판을 모두 이기다니, 누나는 보드게임 평생 운을 다 써버린거야! (저주!)
그런! (목을 조른다)
씻은 후 ... 또 놀았다. 의 압박인 거군요.
사실 저희도 또 놀았습니다. [....]
(일명 "준영군 지못미")
그나저나 왜 제 블로그의 글들은 최근 목록에 안 뜰까요? [....]
다들 늦게까지 논 모양이로군..ㅋㅋ
그러게 이상하게 뱀프군 글들은 안 뜨네. 왜 업데이트를 안하고 있나 했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