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하면서 나는 다시 현실 속의 사람이 되었다. 미국에서는 가족 없는 유학생으로서 맥락도, 관계도 없이 그 사회 속에 부유 (浮流)했다면 이제는 나를 묶고 지탱하는 모든 관계의 망 속으로 돌아온 느낌. 사회의 일원으로서 권리를 누리고 의무를 진다는 것은 한편 마음이 무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 내 삶을 재개했다는 느낌도 든다. 부담감과 행복감, 구속감과 소속감 모두. 그 모든 것이 없이 나는 완전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귀국과 함께 나는 다시 완전해졌다.
1. 방문
엄마 묘지를 아빠와 함께 찾아갔다. 아주 한적하고 경치 좋은 곳. 더 날 눈물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절하면서 좀 눈물이 나긴 나더라. 귀국을 불안해하고 있었던 건 확인하기 싫은 것을 확인해야 한다는 이유도 있었겠지. 하지만 마음은 가볍다. 보고 싶은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심한 고통은 아니니까. 난 잘 견뎌왔고, 앞으로도 괜찮을 거다.
오는 길에는 은행 업무를 처리하고 냉면을 먹었다. 내가 냉면값 내니까 아빠가 너한테 얻어먹은 게 이게 평생 처음 아니냐고 좋아하시데. 그리고 나서는 너 돈 없으면 안 된다고 집에 들어와서 밥값의 두 배가 넘는 돈을 받았다. 하여튼 부모란 밑지는 장사야..ㅡㅡ;;
2. 독서
요즘 독서생활에는 꽤 만족하고 있다. 소설 하나, 정치서적 하나를 틈날 때마다 읽고 있는데, 소설은 승한군이 준 온라인 서점 상품권으로 산 China Mieville의
Perdido Street Station, 정치서적은 미국 정치의 세대교체와 변혁을 다룬
Millennial Makeover이다.
영국 작가인 차이나 미에빌 (China Mieville)의 '페르디도 거리 기차역'은 후속편인
The Scar를 보려고 먼저 보기 시작했는데, 정말로 재밌게 빠져들고 있어서 이쪽을 먼저 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The Scar는 더 훌륭하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인데 그렇다면 그쪽은 얼마나 멋질지 생각만 해도 전율스러울 정도. 미에빌의 대담한 상상력과 수려하고 기발한 문장에는 정말이지 혀를 내두르고 있다.
'페르디도 거리 기차역'은 마치 5개의 기찻길의 교차점에 있는 페르디도 거리 역 자체처럼 다양한 장르와 영향의 경계선에 서있다. 우주 여행이 되는 배경이라는 점에서는 공상과학, 몸을 개조해버리는 잔혹한 형벌이나 (7척짜리 노동용 기계에 예쁜 여자 머리, 공범에 대한 증언을 거부한 벌로 입이 없어진 좀도둑 등) 도시의 더럽고 남루한 정경, 과학과 마법이 공존하는 배경은 스팀펑크, 벌레 머리 케프리, 조인(鳥人)족 가루다, 선인장 인간, 박쥐 날개로 날아다니는 위어맨 등 환상적인 이종족은 판타지 느낌이 강하게 든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페르디도 거리 기차역'은 '장르 문학'에서 '장르'를 떼어버려도 되는 뛰어난 문학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의 동기와 감정 표현은 생동감이 넘치고, 놀랍도록 창의적인 배경은 그저 과시용이 아니라 인물과 주제의식의 초점을 맞추고 확대하는 정교한 상징체계이기도 하다. 두 강의 교차점에 불길하게 웅크린 뉴 코르부존, 산업 지구와 주거 지구, 부유한 저택가와 슬럼이 마구 뒤섞인 건축, 곤충머리 여인의 가냘픈 인간 목이 벌레의 부드러운 아랫배로 변하는 경계의 그 미묘함, 그리고 다섯 기찻길의 교차점에 선 페르디도 거리 기차역. '과도 (過渡). 존재가 다른 것이 되는 지점. 그것이 당신을, 이 도시를, 세계를 형성하는 힘이오.'
'페르디도 거리 기차역'은, 그리고 차이나 미에빌의 글은 취해버릴 것 같은 사유와 감각의 향연이다. 너무 빨리 끝나버리지 않게, 그리고 천천히, 충분히 소화할 수 있게 한 장(章)씩 천천히 읽고 있다. 장르 문학을 한동안 포기하고 있었던 요즘, 미에빌은 어슐라 르귄 할머니 이후 그쪽 분야에서 최고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는 작가이다.
Millennial Makeover는 번역하자면 '천년세대의 반란' 정도가 될까. 세대론을 정치에 적용한 이 책의 중심 주제는 미국에 새로운 세대와 새로운 통신 기술의 등장으로 인해 정치적 변혁의 물길이 밀어닥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정치사에는 약 40년 주기로 정치적 재형성기가 있는데, 그 시대의 주도권을 잡은 세대의 특징에 따라 이후 40년 정치사의 성격은 이상주의적 혹은 시민적이라고 한다.
미국 정치사의 지난 40년을 두 작가는 이상주의적 정치기로 분류한다. 이상주의적 시대에는 유권자는 자신의 개인적 도덕성을 정치적 결정의 지표로 삼으므로 낙태, 동성애, 인종, 종교 등이 중요한 선거 사안으로 떠오른다. 실제로 닉슨 이후로 지난 40년 동안 공화당은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는 사회적 이슈를 이용해 유권자를 분열시켜서 정권을 잡아왔다. 사실상 동성 결혼에 대한 국민투표였던 2004년의 대선이 그 예이다.
그러나 이러한 유권자 분열은 이제 약발이 떨어질 것이라고 작가들은 예측한다. 그건 앞으로 약 40년 동안 미국 정치를 주도할 천년세대 (Millennials, 작가들의 구분으로는 1983년~2003년 사이에 출생한 젊은이들)는 이상을 두고 갈등하고 충돌하는 이상주의적 세대가 아닌, 이념적 구분을 넘어 당면한 위기를 해결하고 잘 사는 사회를 만들려는 시민적 세대여서 그렇다.
이제 하루가 다르게 유권자층으로 들어오고 있는 천년세대는 미국 역사 속의 세대 중 가장 수가 많으며 (이전 세대인 X 세대보다 2배 이상 많다), 가장 인종적, 문화적으로 다양하다. 동성애나 남녀평등, 인종적 다양성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이들에게 유권자 분열 수법은 이전 세대에게처럼 먹히지 않는다. 그리고 이들은 집단적 성향이 강해서 평등 지향적 정책에 대해 긍정적이며, 국가에 대해 냉소적인 이상주의적 세대와는 달리 국가가 시민 생활에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특징과 결합해 이들 천년세대가 자유롭게 다루는 인터넷을 비롯한 통신기술로 인한 정치적 과정의 변혁은 이미 미국 선거의 모습을 빠르게 바꾸고 있으며, 앞으로 그 변화는 미국 정치를 완전히 바꾸어놓을 것이라고 작가들은 예측하고 있다. 이전처럼 엄청난 돈을 들여 TV 광고를 뿌리는 전략은 한결 효과가 덜할 것이고, 훨씬 사용자 지향적이고 상명하달식 통제가 적은 관계망과 그에서 파생하는 모금과 참여가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그 전조는 이미 민주당이 상하원의 다수를 회복한 2006년 총선과 인터넷을 선거에 전에 없이 활용하고 천년세대의 입맛에 딱 맞춘 정견을 선보인 오바마의 민주당 경선 승리에서 드러났으며, 2008년 대선부터는 그 변화가 완전히 자리잡을 것이라고 한다.
나로서는 작가들이 얘기하는 천년세대의 정신에 많이 공감하기도 하고, 지긋지긋했던 지난 40년의 공화당 지배가 좀 끝나기를 바라고 있다. 물론 천년세대의 대체적인 특징이 그렇다고 해서 그 세대에 속한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라고 작가들도 주의는 하고 있지만, 세대별로 상당한 양의 통계정보를 제공해서 그 세대 내지 시대의 정신이라는 건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진취적이며 진보적인, 어떻게 보면 미국의 가장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줄 천년세대, 그들이 만들어갈 미국의 모습을 나는 기대하고 있다.
3. 산행
오후의 열기가 식을 때쯤에 뒷산에 갔다. 여름의 산에서는 녹색 냄새가 난다. 벌레와 새울음소리 속을 걸어가며 진정 돌아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내 영혼의 일부는 언제나 그 신록의 한가운데 있겠지. 먹고 교미하고 죽이고 죽는 생명의 거대한 노래의 일부가 되어.
4. 양궁
산에 갔다 오는데 아파트 단지가 환호성으로 들썩들썩하길래 올림픽 경기 중계하는구나 싶었다. 서둘러 들어와 텔레비전을 켰다. 설마 금메달을 놓칠 줄은 몰랐는데, 중국 선수가 정말 잘하긴 잘하더라. 장 주안주안은 앞으로도 주목해야 할 선수이다. 박성현이 좀 컨디션이 안 좋은 것 같기도 했지만. 저렇게 잘하는 선수한테 지는 건 전혀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두 선수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맨날 1등하면 무슨 재미겠는가, 2등도 해봤으니 더욱 한국 양궁과 선수들이 발전하기를.
은메달 땄다고 악플 다는 찌질이들은 은메달이 무슨 옆집 강아지 이름인 줄 알고 있어. 니들이 나가서 은메달 따와라, 이것들아. ㅡㅡ++++ 남의 나라 선수가 100% 집중해야 하는 순간에 호루라기 부는 몰상식한 관중과 동급인 것들 같으니.
5. 게임
저녁에는 티츄가 아주 재밌었다. 귀국 기념으로 서버를 개장했는데 그게 그렇게 허무하게 크래쉬할 줄이야..ㅠㅠ 다시 연 달빛서버는 잘 돼서 (필리핀제보다 못하다니 쳇쳇쳇) 후회없는 승부를 치렀다. 석한군하고는 확실히 손발이 잘 맞는 듯. 카드운이 우리쪽에 따르기도 했고 (나만 해도 Q폭탄에 몇 판 연속으로 용, 봉, 에이스를 쥐었으니), 플레이도 순조롭게 풀려서 꽤 큰 점수차로 이겼다. 물론 설욕전은 언제든지! 어차피 실력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돌고 도는 게 티츄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오는 길에 비행기에서 한 컴퓨터 블랙잭도 꽤 재밌었다. 블랙잭이 어떻게 하는 건지 몰랐는데 간단하면서도 꽤 묘미가 있는 게임이더군. 하지만 역시 결론은 일반인으로서는 돈을 안 잃을 길은 없다는 것. 게임의 구조상 우연이 많이 작용하므로 돈을 계속해서 따기는 정말이지 어렵다. 그냥 적당히 땄을 때 욕심부리지 말고 끊고, 그럴 자신이 없으면 안하는 게 남는 장사라는 게 도박의 진실이다. 물론 돈 안 걸고 (내지는 가짜돈 걸고) 재미로 하기는 매우 괜찮은 게임.
6. 분노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하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부당한 취급에 따른 분노는 발산하지 않고 참는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새어 나오고 또 안으로 삭아들어서 사람의 자신감과 마음을, 때로는 건강을 좀먹고, 억누르다 보면 걷잡을 수도, 돌이킬 수도 없이 뻥 터져버리기도 한다. 그걸 알면서 남이 그런 취급을 참는 것을 지켜보는 건 정말로 화나는 일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그것도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가족을 미워하는 것도 기분좋은 일은 아니고.
그리고 또 가해자는 어떨까. 자기 주장을 못하고 감정적으로 취약한 사람이 곁에 있으면 이용해서 이득을 보고 싶다는 강한 유혹이 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근본적으로 이기적이니까. 그런 틈을 열어줘서 가해자를 양산하는 것은 그 가해자의 영혼 또한 좀먹는다. 남에게 부당하게 대하는 만큼 자신의 영혼도 침식당하고, 자신이 하는 짓을 정당화해야 하는 만큼 마음은 작고 비루해지니까. (여기는 승한군이 말한 '거짓말의 진화'에 나온 자기정당화의 심리학을 적용할 수 있겠군) 그래서 날 이용해봐~ 하고 유혹하는 것은 가해자 내지는 잠재적 가해자에게도 못할 짓이다.
결국 크든 작든 불의 (이 경우는 일상의 작은 잔인함)의 부작용은 어느 한 사람이 참는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그런 취급을 당하는 사람 자신의 분노, 그 사실을 알게 되는 타인의 분노 등 불의는 어떤 식으로든 계속해서 부정적인 파장을 낸다. 해결책은 불의를 참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 부당함의 근본을 해결하는 것이다. 참는다고 없어지지 않으니까. 그 잘못의 모든 것을 자신이 내면화하고 끝날 일이 아니니까. 참는 것 자체가 그 부당한 취급의 용인이며, 자신과 타인에 대한 또 다른 불의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