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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


고맙고 고마운 내 아버지
당신을 이토록 죽도록 증오한 덕에 난 아직
살아있고
증오는 나의 힘
배신하지 않을 나의 아군, 나의 주인 나의 힘...
- 김윤아, '증오는 나의 힘'

막상 시작하려니까 막막하네요. 아빠가 보실 리 없고 보셔도 안 되는 글이지만, 그런데도 어떻게 시작할지 모르겠어요. 이런 글을 쓰려는 사실만으로도 분노와 자책감과 애정 때문에 이래저래 혼란스럽고 불안하네요.

음, 일단 제가 아는 어떤 여자분께 들은 이야기부터 해야겠어요. 이분은 자신의 아버님을 가리켜서 자신의 '적'이었다면서, 살아온 길 한 걸음 한 걸음이 아버님과 싸우는 과정이었다고 고백했어요. 참 공감이 가는 얘기였었죠.

자식에게 부모는 곧 세계이죠. 어릴 수록 그래요. 부모 말씀이 (심지어 안 들을 때도) 하느님의 말씀 같고, 부모의 목소리는 내면화되어서 사랑, 양심, 반성, 감시, 통제, 자책, 혹은 증오의 목소리가 되어요. 머리가 굵어지면서 부모, 실제의 부모, 그리고 내면의 목소리가 된 내 안의 부모와 어떻게 대응하는가, 어떤 부분을 받아들이고 어떤 부분을 버릴 것인가, 그게 어찌보면 성장이라는 과제의 전부겠죠.

그래서 저는 제 성장의 과정에서 아빠를 제 적수, 혹은 맞수라고 생각하고 싶어요. 적이나 원수라는 의미가 아니라 제가 맞서고 또 넘어설 상대, 그리고 저에게 교사와 반면교사의 가르침을 주신... 괴롭지만 그 괴로움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는 그런 시련, 그러면서도 존경할 수 있는 상대로요.

이렇게 솔직히 얘기하니까 제 내면의 아빠는 역정을 내시네요. 그래, 그렇게 열심히 가르치고 키워놓았더니 이제 적수 같은 소리나 하고 완전히 맞먹으려고 하는구나. 뭐, 어찌보면 틀린 말씀은 아니에요. 제가 건방지고 못된 걸지도 모르죠. 그런데 아빠의 분노와 저 스스로 하는 자기비하는 어려서부터 너무나 지겹도록 반복한 과정이라 이제는 별 감흥도 없어요. 약발이 떨어졌달까요.

어려서부터 제게 아빠 앞에서 솔직하다는 것은 곧 고통이라는 대가가 따랐어요. 저 유치원 때였던가, 순간적으로 반찬이 아까워서 (전 차례대로, 반찬 양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먹는 계획이 나름 있었거든요) 아빠께 '아빠 그만 좀 드세요' 소리 했다가 엄마아빠게 스테레오로 야단맞은 생각 나세요? 제가 잘한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어렸던 아이가 생각없이 한 소리가 그렇게나 아빠의 권위에 도전이 되고 배은망덕하고 못되고 건방지고 나쁘고 용서 못할 짓이었던가요? 왜 잘못했는지 설명을 해주셨으면 납득하고 죄송하다고 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불같이 화를 내실 일이었나요?

야단맞은 게 서러웠던 게 아니라 그 상황이 너무 감정적이고 격해서 어린 저로서는 감당하기가 어려웠어요. 마치 세상 어디에도 날 사랑하는 사람은 없고 제게 안전한 곳은 없는 것만 같았어요. 제게는 그 집이, 그리고 엄마아빠가 세상이었는데 말이죠. 그날 저녁이 어떻게 끝났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저는 거의 숨을 못 쉴 정도로 울었었고, 울먹이면서 '엄마아빠 죄송해요...' 하다가 정신을 잃었던 것도 같아요.

제게 집이 안전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 것은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뭘 잘못하면 회복의 여지는 없다, 그대로 나는 '나쁜 아이'라는 나락에 빠지고 용서받지 못할 자식이 되어 하룻저녁 정도는 빌고 눈치보면서 지내야 한다는 가르침을 얻었죠. 가족인 만큼 좋을 때는 참 좋았는데, 언제 무슨 말을 잘못해서 집안이 뒤집힐지 모르는 상황에서 마음 한 구석은 늘 가시방석이었어요. 아빠는 나중에 제게 너무 말을 외교관처럼 조심스럽게 한다고 뭐라고 하셨죠. 외교관이라, 참 좋은 비유에요. 말 잘못하면 전쟁이 난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때 이후에도 아빠께 혼나는 시간은 제게 지옥같았어요. 너는 못됐고 못났고 게으르고 참아줄 수가 없고 너 같은 애 때문에 아빠는 얼마나 많은 걸 바쳤고 너 같은 건 필요없고 같은 소리를 들으면서, 뭐라고 한 마디 하라고 하시는데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될지 알았기에 말을 안 하면서 고문 같은 침묵의 시간만 늘리거나, 아빠가 듣고 싶어하시는 소리를 마지못해 하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한다고 비웃음 당하거나, 아니면 못 참고 하고 싶은 말을 했다가 다시 벽력이 떨어지는 별로 유쾌하지 않은 선택지만 남았죠.

그래서 그런 시간이면 뚫어져라 바닥을 보면서 저만의 세계로 도망쳤던 기억이 나요. 아빠께 의존하지 않고 내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 성년이라는 그 미지의 낙원으로요. 그러면서도 아빠가 격한 순간에 하시는 (아마도 마음에도 없으셨을) 얘기는 차곡차곡 마음에 새기면서 아 그래, 나는 못났고 못됐구나. 난 사랑받을 자격 같은 건 없구나. 그래서 아빠가 나 때문에 불행하고 힘드시구나. 하면서 아빠의 감정을 꾸준히 자기혐오로 바꿔갔죠. 그때 노려보던 카펫 무늬는 지금도 눈앞에 선명해요. 그 무늬는 자존감이나 자기애 같은 건 닳아서 없어지던 시간의 시각적 표현이었죠.

어려서 제 꿈은 결혼하는 게 아니라 자립하는 거였어요. 어차피 나같은 애랑 결혼하고 싶을 남자가 있을 리가 없고, 있다고 해도 그런 남자는 틀림없이 정신이 이상하거나 바보일 테니까 결혼하고 싶지도 않았어요. 굶어죽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해서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게는 결혼에 대한 환상 같은 게 별로 없었어요. 어차피 결혼해봤자 남편은 나를 찍어누르려 들 테고, 아이는 나처럼 은혜도 모르는 못된 애일 테니까요. 어차피 잘못 태어났는데, 그냥 나 혼자 한 세상 살다가 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죽는 얘기 하니, 엄마아빠가 다니라고 하셔서 교회에 다녔던 어린시절에는 지옥에 대한 공포에 엄청나게 시달렸죠. 착한 사람이라고 천국 가는 건 아닌데 난 그나마도 못된 애였고, 또 예정받지 못하면 어차피 천국 못 간다고 하니까 제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저를) 지옥 못 보내 안달인 하나님이었어요. 예수님이 아무리 인류의 죄를 대속했어도 예정되어 있지 않으면 영원한 지옥불에 떨어져야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고, 그래서 늘 불안하고 무서웠어요. 성경시험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성경은 재미있었지만 그만큼 모순도 많이 보였고, 변덕스러운 폭군 하나님을 마음 속까지 신뢰할 수는 없었어요. 어쩌면 제 마음 속에서 하나님은 아빠의 얼굴을 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어요.

아빠가 저를 사랑하셨다고는 생각해요. 분명 아빠는 저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몇 번이나 얘기하셨고,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때로는 평가가 아니라 네가 너이기 때문에 믿고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싶었지만...) 토론을 통해 제 생각의 지평을 넓혀주고 논리를 다져주시기도 했고, 또 제가 누구보다 빛나는 미래를 꿈꾸시기도 하셨죠. 아빠 안에는 어떻게 보면 두 분의 아빠가 계셨던 것 같아요. 전쟁 후 농촌의 인습적 권위주의 속에서 자란 청년, 그리고 고등교육을 받고 현대적 생각을 갖춘 엘리트. 그리고 그 둘을 관통하는 테마는 찢어지게 가난한 한국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오신, 개발기 한국이라는 신화의 수많은 주인공중 한 분이었죠.

그런 아빠의 사랑에는 두려움이 너무 많이 들어가 있어서 그 두려움이 저에게도 전염된 것 같아요. 어려운 시절에 고학하고 자수성가하신 아빠가 그 사랑을 표현하시는 방법은 저를 어떤 전형에 꼭 맞추시는 거였죠. 공부 잘하고, 말 잘 듣고, 날씬하고, 키크고, 서울대 졸업하고 등등. 그 엘리트적 전형에 맞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늘 깔려있었으니까요. 어쩌면 아빠께서 생각하시는 성공의 조건을, 필요하면 매를 들고 소리를 지르고 모욕을 줘서라도 갖춰주려고 하신 아빠의 노력은 최상의 사랑이었을지 몰라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제가 잘못일 지도 모르죠. 그 가능성은 인정해요.

언제부터 제 주체성을 포기하고 아빠의 판단을 무조건 따르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아빠와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기가 너무 겁났는지도 모르겠어요. 저 자신이 앞길을 개척해가는 노력을 하기가 귀찮았을지도 모르죠. 어느 쪽이든 아빠께 맡기는 게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보다는 편했어요. 그래서 엄마아빠가 원하시는 서울대만을 목표로 열심히 했고, 그게 떨어진 다음에는 다른 학교 법대에 갔고, 서울대에 못 갔으니까 재학 중 사법고시 합격을 하려고 무던히 노력했죠. 수업 시작하기도 전에 법서를 1~2번 읽으면서 열심히, 그저 열심히 해서 엘리트의 길에 오르는 게 곧 선이라고 생각했어요.

대학교 1학년 때였던가 2학년 때였던가, 학과공부 하면서 사시도 도전하는 게 너무 어려워서 사법고시는 졸업 후 해도 좋다더라, 하고 얘기를 꺼내보았었어요. 그때 아빠는 그런 건 그냥 하는 소리라고, 재학 중 합격이 최고라고 하셨죠. 저도 욕심이 난 건 사실이었고, 이때 저는 성공이나 엘리트가 되는 것이 인생의 최고 가치라고 생각했어요. 서울대에 떨어져서 땅에 떨어진 나의 가치를 (이때 제 생각이 이렇게 유치했답니다) 어떻게든 증명하고 싶었어요.

노는 것도, 봉사활동도 대학 1학년까지가 끝이라고 생각하고 대학 1학년 겨울방학 내내 고시학원을 다녔죠. 그리고 대학교 2학년 여름에 병이 났어요. 처음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도 받는 한편 씩씩하게 걸어서 근처 병원에 통원하며 피검사도 하고, 주는 약도 다 먹었어요. 그런데 왠지 낫지는 않고, 몸은 점점 지쳐가기만 했어요. 결국 휴학을 하면서 내 인생은 이걸로 끝이라는 엄청난 생각까지 했죠. 어느것 하나 되는 것이 없고 건강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으니까요. 나는 실패자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엄마아빠가 안 계셨으면 자살이라도 했을지 몰라요.

몇 년 동안 아파서 맥없이 지내는 저를 위로하고 감싸주신 건 엄마아빠셨죠. 아빠는 그때 네가 그렇게 잘 이겨낸 의지력이 존경스럽다고 하셨지만, 전 사실 포기한 것에 가까웠어요. 아니, 어떻게 보면 병은 저에게 보호막이었어요. 성공을 향해 끝없이 달려가는 대신 제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때 저는 평생 처음으로 제가 쓴 소설을 인터넷에 공개했고 (중고등학교 때 끄적거리던 공책들은 수험 시절에 엄마가 버리셨지만), HTML과 CSS, PHP, MySQL 등도 배워서 웹사이트도 만들 수 있게 되었어요. 병이라는 특수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는 저는 엘리트가 아니어도 되었어요. 엄마아빠는 그저 건강만 해달라고 하셨죠.

우여곡절 끝에 복학하고 졸업한 끝에 저는 이번에는 로스쿨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사법고시가 안 되었으니 이번에는 로스쿨 나와서 미국 변호사가 되는 것이 엘리트로서 저의 사명이었죠. 그런데 아파서 그랬을까, 아니면 이 한 목표에 집착한 시간이 너무 길었을까, 저는 더 이상 대학 때 같은 확신이 없었어요. 법은 나름 재밌기는 했지만 뭔가 비본질적이었고, 그렇다고 따로 아는 것도 없었죠. 저는 수업과 시험에 그냥 끌려가면서 어떻게든 낙제는 면하는 생활을 했어요. 마치 제가 대학 때 그랬던 것처럼 따로 교재를 찾아보고 검색하면서 학과 공부에 열심인 학우들을 보면 신기하면서 동시에 자책감이 들었어요. 쟤들은 진짜 열정이 넘치고 부지런하구나. 난 뭘까. 저렇게 할 마음이 들지 않는 나는 왜 사는 걸까.

선택 과목을 들을 수 있게 된 2, 3학년 내내 거의 국제법 과목만 들은 것을 알고 나중에 아빠는 화를 내셨죠. 왜 이렇게 애가 비현실적이고 전략적이지를 못하냐고. 그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 상황에서 제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었는걸요. 국제법 역시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제가 갈구하고 있었던 탐구주제--평화와 인권의 문제--에 법으로서는 가장 가까이 다가가는 길이기는 했어요. 그래서 3학년 때에는 분쟁해결 관련 수업을 열심히 들었었고요.

물론 전략적이고 똑똑하려면 돈이 되는 분야, 이를테면 M&A나 증권 수업을 들었어야 했겠죠. 그랬어야 했다고 아빠는 나중에 저를 탓하셨어요. 어째서 제가 원하는 것은 뭐든 잘못일까요? 어째서 저는 이렇게나 멍청하고 비현실적인 아이일까요? 제가 원하는 것, 마음이 끌리는 것을 참고 미루어야만 잘 사는 것일까요? 그러면 좋아하는 것은 언제부터 할 수 있죠? 아니면 인생이란 원래 좋아하고 싫어하는 문제와는 상관도 없는 건가요? 마음이 이렇게 생겨먹은 저는 애당초 성공에 부적합한 인간인 걸까요?

왜 전 아빠 마음에 꼭 맞는 딸이 될 수 없었던 걸까요? 그렇게나 억누르려고 했는데, 왜 제게는 아빠와는 다른 욕구와 갈망이 있는 걸까요?

제게 왜 독립적인 인격과 마음 같은 게 있는 걸까요? 그런 거 없이 아빠 말씀만 듣고 살 수 있으면 편할 텐데.

졸업할 때에도 전 계속 갈등했어요. 정석은 법무법인에 들어가 몇 년 경력을 쌓고 귀국하는 것이었겠지만, 저는 정부나 NGO 일이 더 끌렸어요. 몇 군데 지원했지만 떨어졌죠. 어차피 저는 큰 법무법인에서 반길 만큼 성적이 좋지도 못했고, 또 네트워킹과 자료수집에 힘쓸 열정도 없었어요. 무엇보다 확신이 없었으니까요. 참 바보같죠?

다행히도 모교에서는 별로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던 저를 좋게 봐주어서 가르치고 연구하는 자리를 주었어요. 그리고 페이퍼를 쓰지 못하면 계약은 연장되지 않을 수 있다고 처음부터 경고했었죠. 아빠는 뛸 듯이 기뻐하셨고, 저는 솔직히 직업 문제로 더 고민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어요. 기필코 좋은 페이퍼를 많이 써서 교수가 되겠다고 다짐했죠. 제 인생은 이제 다 승승장구할 것 같았어요. 서울대와 재학중 고시 합격과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는 건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렇게 저는 나름 교수라는 직책을 달게 되었고, 학교에서는 처음부터 수업은 조금 등한시하더라도 페이퍼를 쓰는 것이 최고라고 강조했어요. 저도 정말 그러고 싶었고요. 하지만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어요. 로스쿨 때 나름 열심히 썼던 텀페이퍼를 다른 교수님 종용으로 교내 학술지에 내보았는데, 별로 새로운 것이 없는 페이퍼라는 지적이 돌아오면서 또 다른 좌절이 시작되었어요. 역시 문헌 연구가 부족했던 걸까, 다른 텀페이퍼를 뒤적거려 보았지만 하나같이 새로운 건 없어보였어요. 제가 공부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이때부터 느끼기 시작했어요.

어떻게든 그 페이퍼를 보완해보려고 온갖 책을 찾고, 밥먹는 시간에도 책을 뒤지면서 머리를 쥐어짰어요. 그런데 그럴 수록 머릿속은 점점 백짓장이 되어가기만 했어요.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무슨 질문을 할 지도 알 수가 없었어요. 얘기를 꺼내다가 눈물만 나올 것 같았고, 제가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도 알 수가 없었어요. 그저 교수가 되어서 아빠와 선생님들과 모두에게 보답해야 한다는 생각만 머리에 꽉 차 있었어요. 진지한 학문적 탐구 같은 건 들어갈 자리도 없을 정도로요.

남자친구와 사귀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어요. 먼저 나에게 고백해왔고 유학 중 엄마가 돌아가신 힘든 시간에 위안을 준 그에게 솔직히 얘기했죠. 내가 너를 정말 좋아하는지, 아니면 내가 일이 잘 안 풀리고 마음이 허해서 위안을 바라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그 착하고 따뜻한 사람은 그래도 괜찮다고 했어요.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지 나와 닮은 고민을 하고 있는 그와 서로 솔직하게 터놓고 고민을 나눈 시간이 그 시기의 유일한 위안이었어요. 고민이 없어지거나 페이퍼를 갑자기 쓰게 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더욱 견디기 어려운 시간이었을 거에요.

결국 계약 기간이 다 되었고, 아무 성과도 내지 못한 저는 예상대로 재계약을 하지 못했어요. 차라리 후련했어요. 그 자리에 있는 한 순간 한 순간이 제게는 마음이 편하지 못했고, 사기꾼이 된 기분이었으니까요. 그리고 2년 동안 고민하면서 차차 드러난 해답,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낸 것이 제게는 무엇보다 큰 성과였어요. 비록 연구는 잘 하지 못했지만 가르치는 것은 아주 재밌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한 과목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 저는 혼쾌히 동의했죠. 커리어에 별 도움도 안 되는 그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는 게 정말로 비현실적이고도 바보같죠? 그런데요, 전 그게 마음이 편하고 제 자리 같아요. 연구도 하고 글도 쓸 거지만, 가르치는 사람도 필요하고 또 제가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이런 일련의 과정을 (다른 말로 하면 제 인생입니다만) 거치면서 깨달은 거라면 일단 내가 살고 봐야겠다는 깨달음이었어요. 아빠를 포함한 타인의 기대, 세상이 좋다고 하는 목표를 최고선으로 삼아 달렸는데, 문제는 제가 행복하지가 않았어요. 아빠는 이런 저를 안타까워하시죠. 가장 빛나는 자리에 있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으면서 회의와 망설임 때문에 모든 걸 망쳐버린다고요. 어쩌면 저에게 있는 이런 가능성과 잠재력 때문에 아빠가 더욱 필사적이시고 감정적이실 지도 모르죠.

그런데 회의하지 않고 망설이지 않으려고 한다고 그게 없어지는 건 아니더라고요.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언젠가는 튀어나와요.마음이 기계처럼 '이걸 좋아해야지' 하면 좋아하고 '회의하지 말아야지' 하면 회의를 안 하고, 그렇게 뜻대로 움직이지가 않아요. 제 생각을 억누르고 아빠랑 똑같이 생각하려고 몇 번이나 시도했는데 한계가 오더라고요. 두려움과 불안에 마음이 말라죽을 것 같아서 못 참겠어요. 제가 2년 동안 그랬듯 그렇게 불행하면 교수를 하든, 아무리 빛나는 자리에 있든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어요. 이런 제가 실망스럽고 한심하시겠죠. 하지만 사실이에요. 아빠 딸은 이렇게나 한심하고 게으른 걸요.

아빠도 마음이 느긋하실 때면 인생이 절대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라고, 꼭 교수니 성공이니 하는 데 집착할 거 없다고 하시죠. 그러면서도 또 마음이 급하고 지치실 때면 그거 다 페이퍼 얼마든지 쓸 수 있는데 네가 안하는 건 다 게을러서 그런 거라고 뭐라고 하세요. 둘다 맞는 말씀인데, 솔직히 이제는 지쳐요. 기분에 따라 변하는 아빠 원칙에 따라, 어릴 때부터 그랬듯 아빠한테 눈치보면서 제 기준이 없이 살았다가는 제가 죽어요. 몸이든 마음이든 어느 한쪽이 가버릴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아빠를 제 인생에 대한 책임에서 놓아드릴래요. 이제는 아빠 판단이 아니라 제 판단대로 하고, 책임도 제가 질게요. 아빠가 뭐라고 하시든 그 말씀에 죽고 사는 게 아니라 참고할 것만 참고할게요. 실수하면 실수하고, 잘못하면 잘못할 거에요. 그런 시행착오 없이 좋은 판단력을 기를 수도 없고, 실패도 제 선택의 일부니까요. 아빠는 아빠 말씀 들어서 시행착오를 줄이라고 하시지만, 사실은 판단을 전부 저 대신 해주고 계셨잖아요. 그렇게 맡긴 덕분에 편하게 살아온 것도 사실이지만, 더는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는 '제' 인생은 영영 시작하지 않아요. 행복이든 불행이든 제가 선택할게요. 그만큼 아빠가 키워주셨으니까요.

제 책임을 아빠께 버려두어서 정말 죄송해요. 무서워서, 불편해서, 귀찮아서, 아빠가 책임지실 수 없는 제 인생에 대한 판단과 선택을 아빠께 맡긴 건 저의 직무유기였어요. 좀 더 일찍 반항하고, 좀 더 많이 싸우고, 좀 더 빨리 실망시켜드렸어야 하는데 그 과정을 미루고 미룬 제 무책임을 깊이 반성하고 있어요. 제 삶에 대해 온전히 책임지는 것이 저의 적수인 아빠에 대한 예의였는데, 그러지 않고 보낸 시간이 너무 길었네요. 너무 무거운 짐을 지시고 그동안 힘드셨죠? 이제 내려놓으셔도 돼요. 싸워서라도 아빠께 그 짐, 제 인생에 대한 책임이라는 무게를 빼앗을 거니까요.

착한 딸이 되고 기대대로 살고 싶었지만, 이제는 저 자신답게 사는 것이 그 이상의 소명이라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어요. 아빠가 생각하신 길보다는 조금 더 어렵고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제게는 유일한 길이기도 해요. 뭐라고 하시든 속마음은 저를 믿고 응원하신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가끔 불안감에 겨워 싫은 소리 하셔도, 이전에야 자기혐오와 자기불신에 못이겨 떨었겠지만 앞으로는 그냥 웃고 말래요. 아빠 말씀에 너무 파르르 떨지 않는 것도, 때로 적당히 귀먹는 것도 효도일 테니까요. 결국 제가 행복한 것만한 효도가 어딨겠어요?

저는 제가 착한 딸이 되어 아빠 희생에 보답하고 아빠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돌아보니 그건 오만이더라고요. 아빠 행복은 아빠가 찾으셔야 하고, 제 행복은 제가 찾아야 해요. 지독하게 개인주의적인 얘기지만 그것밖에 길이 없는 것 같아요. 부녀로서 우리의 교감은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면서 서로 기대고 아껴주는 그 접점에 있는 것이지, 삶을 대신 살아주고 행복을 책임져주려고 드는 그 뭉그러진 혼돈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늦게서야 그걸 깨닫고 서른이 넘어 시작하는 저의 사춘기 반항을 지켜봐 주세요. 아빠도, 세상 누구도 아닌 온전히 저다운 행복을 향한 서투른 몸부림을.

On Children

자녀에 대하여

Kahlil Gibran, The Prophet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中


Your children are not your children.
They are the sons and daughters of Life's longing for itself.
They come through you but not from you,
And though they are with you yet they belong not to you.

너희 자녀는 너희 자녀가 아니니,
그들은 생(生)이 자신을 갈구하는 마음의 아들과 딸이니라.
그들은 너희를 통해 나되 너희에게 나지 않으며,
너희와 함께 하되 너희게 속하지 않을지라.

You may give them your love but not your thoughts,
For they have their own thoughts.
You may house their bodies but not their souls,
For their souls dwell in the house of tomorrow,
which you cannot visit, not even in your dreams.
You may strive to be like them,
but seek not to make them like you.
For life goes not backward nor tarries with yesterday.

자녀에게 사랑을 주되 생각을 줄 수는 없나니,
그들은 자신의 생각이 있음이라.
자녀의 몸에 보금자리를 주되 영혼은 그리할 수 없나니,
그들의 영혼은 내일의 집,
너희는 꿈속에서조차 찾을 수 없는 그곳에 거하는도다.
그들과 같아지려 노력하되,
그들을 너희와 같이 만들려 하지 말라.
생은 거꾸로 흐르지 않으며 어제에 머물지 않나니.

You are the bows from which your children
as living arrows are sent forth.
The archer sees the mark upon the path of the infinite,
and He bends you with His might
that His arrows may go swift and far.
Let your bending in the archer's hand be for gladness;
For even as He loves the arrow that flies,
so He loves also the bow that is stable.

너희는 살아있는 화살인 자녀를
쏘아보내는 활이로다.
궁수는 무한의 길목에 있는 표적을 보시고
그 권능으로 너희를 크게 휘어
그분의 화살을 빠르게, 멀리 보내시니라.1
궁수의 손에 휘어짐을 기쁨으로 여기라.
그분께서는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시듯
흔들림 없는 활을 사랑하시나니.


Footnote.
  1. 시편 127편 4-5절 '젊은 자의 자식은 장사의 수중의 화살 같으니/이것이 그의 화살통에 가득한 자는 복되도다' 성경에서 자녀를 화살이라고 하는 이미지를 절묘하게 차용한 지브란은 부모는 화살을 소유한 궁수가 아닌 화살을 쏘아보내는 활이며, 그 활을 당기는 궁수는 신이라고 하고 있다. 자녀를 부모의 소유로 보는 성경적 가부장주의를 성서 자체에 나오는 비유를 이용해 뒤집어놓는, 일종의 문학적 메치기가 아닐 수 없다. 전통에 든 정적인 화살이 아닌 쏘아져 나가는 동적인 화살 이미지는 또한 새로운 시대의 요구, 과거를 고수하는 대신 미래로 나아가는 창조성을 연상시킨다.게다가 신의 손에 당겨져 휜다니,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고통과 희생을 이렇게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글이 또 있을까. [Back]
2011/05/24 01:54 2011/05/24 0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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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몰랐는데, 내가 어떤 공부를 하고싶은지 얘기하다 보면 말투라든지 표정이 굉장히 열심인가보다. 타고난 학자라거나 (에헴!), 학문적 관심이 대단히 깊어보인다거나 하는 얘기를 들으니 말이야. 그냥 나한테 흥미로운 것을 설명한다고 생각했는데, 드러내려 하지 않아도 뭔가 열정이 전달되나봐.

공부, 특히 입시공부는 그냥저냥 재밌게 하는 편이었지만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내가 그동안 학문에 대해 얼마나 나태했는지, 정말로 좋아하는 게 보이니까 알겠어.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건 다 읽고 싶고, 트위터니 비디오니 팟캐스트니 자꾸 찾아보게 된다. 아쉬운 소리 하는거 참 싫어했는데 이젠 이사람 저사람 다 붙잡고 도와달라고 하고 싶어져.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깊이 원하니까 힘이 나는 거다.

이 새로운 꿈이 날 어디로 휩쓸어갈까, 이제는 불안감 대신 기대감으로 내일을 기다리고 있다. 정말로 원하는 것이 생기니까 이제는 미래가 초조하지도 않고, 남이 눈치보이지도 않는다. 물론 지금보다 힘든 날이 많이 있겠지만 그런 날에도 이 열정의 반짝임이 힘이 되기를, 그래서 하루하루 충실하고 행복하기를 나는 꿈꾼다.
2010/04/23 14:29 2010/04/2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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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을 두려워 말자

생각해보면 나는 편한 데에 너무 길들여진 것 같다.

뭐 편한 것 자체는 좋은데, 문제는 그 틀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면 불안~하다는 거지.

그러다 보니 변화가 그렇게 불안할 수가 없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불신도 상당하고.

뭔가 새로운 것을 개척해가고 내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신뢰는 별로 없다.

잘 돼도 노력이 아닌 요행 같아서 내 부족함을 언제 들킬까 늘 불안하다.

하긴 뭐, 변화가 두려운 건 어느 정도 인간 본성이기는 하지.

대개는 불확실한 것을 위해 지금 있는 것을 버리기 힘든 게 인간이니까.

노동의 경쟁이 심한 시대에 어떤 직장이든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방어기제이기도 하겠다.

하지만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기도 하다.

고생을 해보았다는 것은 역경 앞에서 자기 생활을 제어해본 적이 있다는 뜻이며,

그만큼 변화의 불확실성 앞에 당당할 수 있다는 뜻일 테니까.

고생할 텐데 난 아마 안 될 거야 못할 거야 하는 자기불신과 불안에 갇히는 대신에

자기 갈 길을 파악하고, 고생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 위에 움직인다면

그거야말로 돈 주고 사서라도 마련할 만한 자산인 거다.

사실 하루에 16시간 주7일 힘겨운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의 '고생'을 무슨 고생이라고 하겠는가, 완전 호강이지.

사람이 사람을 착취하고 지상에 지옥을 만드는 그 지독한 악순환을 끊는 데에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기운이 팍팍 날 것 같다.

시덥잖은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목표 앞에서 이렇게 설레어본 것은 처음인걸.

지금은 이 느낌을 믿고 가보고 싶다. 그러다 보면 길이 보일지도 모르니까.

잘못 생각하는 부분도 있을 수 있고,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어.

그런 의미에서 지금 가는 길이 막다른 골목에 부딪힌 것이 오히려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방향을 바꾸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르니까.

많이 알아보고 생각해서 그런 시행착오를 줄이려고 노력해야겠지만,

실수할 땐 실수하더라도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내가 살아가는 내일에 두려움이 아니라 기대와 희망이 가득하기를 바라니까.
2010/04/18 12:26 2010/04/18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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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have to be

나는 대단하지 않아도 된다.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즐거우면 된다.

무엇이 진정 즐거운지 찾아서 하면,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루하루가 즐거우면

그게 성공이고, 그게 진짜 대단한 거다.

이제 성공의 족쇄에서 놓여나자.

불안이 아닌 희망의 렌즈로 내일을 보고 싶어.

의무나 명성이 아니라 기쁨을 위해 살았다고,

그래서 삶이 너무나 즐거웠다고 죽을 때 말하고 싶어.

I don't have to be...

Anything.

I will be what I want.

To speak no longer in the language of obligation and fear

But of joy and desire

Is the highest aspiration of life

And the noblest way to live.

I'm scared because freedom is a terrible, frightening thing,

(Thus spake V, and I believe him for he is wise)

And laughing at myself because I know the risk I take is vanishingly small

Compared to the size of my fear.

But laugh at me, do, for I am really a small-minded, sheltered woman

Whose fears outmatch any of her realities,

Petit-bourgeois, navel-gazing in the worst of ways.

Is there a point to all this? Does there have to be?

This is my own declaration of independence, in my narrow bourgeois way.

Freedom from expectations, freedom from self doubt

And aye, from obligation, that dour, sour-faced death of love.

I'm looking, I'm searching, seeking ultimately myself

Somewhere to belong, something to do, someone to be

I may find it tomorrow, next year, a lifetime later, never;

I may waste my potential, my money, my time, my life--

But I will never regret the search. This I believe.
2010/04/08 18:34 2010/04/08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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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꿈이 생겼다

무엇이 막혀있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난 편한 자리에, 지위와 타인의 시선에 집착하고 있었던 거야.

그러나 스스로 신념이 없는 일을 해서는 죽었다 깨어나도 행복할 수 없다.

그 사실을 깨달으면서 내게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 새로운 사랑만큼이나 설레는 기대감과 불안이...

잘못 생각하는 것일 지도 모른다. 실패할 지도 몰라. 때로는 분명 후회할 거다. 그냥 지금 상황에 대한 도피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건 포기할 수가 없다. 그저 이걸 할 수만 있다면 실패하더라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아.

잘 될까? 성공할까? 가치는 있는 일일까? 모르지. 세상에 보장받은 게 어딨어?

하지만 정말 많이 원하긴 한다. 지금은 일단 이 느낌을 믿어보고 달리고 싶어.

겁도 나고 불안하더라도 온전히 나답게 내 열정을 쫓고 싶어.

비록 잘못이었다 하더라도, 비록 도피에  열정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을 붙인 게 전부였다 하더라도,

그건 내 실패이며, 나의 시행착오이겠지. 따라서 나의 삶일 것이다.
2010/04/03 09:29 2010/04/0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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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hovamp 2010/04/07 12:32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고 싶으신 일을 찾으셨군요. 축하드립니다!

    • 로키 2010/04/07 17:30  수정/삭제

      땡큐..ㅋㅋ 기대감, 불안, 자괴감 그런 게 막 뒤섞이네.

그럴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늘어지게 늦잠 잔 금요일 아침, 추천서 업무 때문에 사무실에 나왔다. 학생 하나에게는 추천서를 줬는데, 약속한 다른 학생 하나는 영 안 나온다. 잊어버린 것 같아서 전화를 해봤다.

나: 안녕하세요, A양. 오늘 추천서 받으러 11시에 오기로 하지 않았어요?
학생: 아~ 같은 시간에 다른 학생하고 약속 있다고 하셨던 걸로 기억해서...
나: (이미 쓴 추천서를 A양, B양 한꺼번에 만나서 주겠다는 뜻이었는데 말이 잘못 전달됐군.) 이런, 말이 엇갈렸던 모양이네요. 나와서 받아갈래요? 아니면 혹시 집에 있는 건가요?
학생: 예... 그래도 제가 가서 받아오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 (그때까지 여기 있긴 싫다) 그냥 내가 직접 제출할게요. 어차피 학교에 있으니까.
학생: 예, 어제 제가 드린 자기소개서도 혹시 같이 내주실 수 있으세요?
나: 그러죠. 좋은 주말 돼요. (그러나 학생은 이미 끊고 있다)
나: (좀 놀라서 끊는다)

말은 얼마든지 엇갈릴 수 있다. 약속 잡으면서 내가 좀 장난스럽게 말했던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오늘이 추천서 내는 날이었는데 시간약속이 11시에 안 됐다고 생각했다면 대체 언제 와서 받아갈 생각이었던 건지. 그리고 전화는 어른이 끊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우리나라 예법인데, 역시 외국에서 오래 산 학생이라 그런 부분은 모르는 건가.

A 학생이 크게 잘못한 건 아니지만 약간 화가 나고 당황스러워졌다. 아무래도 상대가 보이는 성의에 따라 나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차이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이래서 별다른 악의 없이도 인간관계는 틀어지기 쉬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크게 화가 나거나 한 건 아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A양을 좀 다르게 보게 된다. 나도 이런 실수를 한 적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같은 장학금에 지원하는 두 학생의 대조도 재미있다. 추천서 받아가는 또 다른 학생인 B양은 미리 나한테 연락하고 직접 찾아와서 증빙서류도 다 주고 추천서도 오늘 또 찾아와서 받아갔는데, 정말로 가정환경이 어려워서 장학금을 꼭 받아야 한다는 게 팍팍 전해졌다. 반면 A양은 추천서 써달라는 연락도 서류 마감 전날이었던 어제 하고, 나한테 서류 하나 내민 적 없고, 추천서 받을 시간약속이 잡히고 말고도 크게 신경쓰지 않은 거 보면 장학금이 별 필요없는데 한 번 찔러보는 기색이 역력하다.

솔직한 심정이라면 B양은 장학금을 꼭 받았으면 좋겠고, A양은 받든 말든 별로 상관없다는 생각이 든다. B양은 가정환경이 정말로 어려운 걸 증빙하는 온갖 서류를 줬었는데, 어떤 서류가 있는지만 보고 돌려줬었다. 경제사정은 어차피 내가 심사하는 것도 아니고, 집안 재무에 대한 온갖 서류를 모르는 사람인 나한테 내미는 성의로 충분했다. 게다가 일일히 찾아오는 성의가 얼마나 마음에 드는지, 장학금 못 받기라도 하면 내가 직접 학교에 항의하고 싶은 심정이다. A양은? 별로 안 어려운 것 같은데 왠만하면 그 기회는 더 어려운 학생에게 가는 게 좋을 듯? (그리고 재밌게도 나하고 친한 쪽은 A양이고, B양은 장학금 업무로 두 번 만난 것 외에는 모르는 학생이다.)

사람 일이라는 건 결국 사람이 하는 거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은 예의와 성의, 간절함에 움직이게 되어 있다. 이런 내용을 A양의 발전을 위해 얘기해주고 싶어도 과연 좋은 얘기로 들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망설이게 된다. 내 잘못을 지적해주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날 위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고. (거의 부모밖에 없지, 사실.) 나도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중에 내 스승이 있다던가. A양과 B양은 둘다 학생이지만 내 스승이다. 둘 중 하나는 이 상황에서는 반면교사에 가깝지만...
2009/05/22 11:56 2009/05/22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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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Xenosia 2009/05/22 17:39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애들은 강하게 크죠.
    그런데 자생력은 없습니다 [..?]
    뭐 여하튼 인맥인겁니[..]

  2. lhovamp 2009/05/23 11:21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면교사 [...]

    • 로키 2009/05/24 11:34  수정/삭제

      반면교사도 엄연히 스승이라능!

미쿡에 왔습네다

변호사 선서하고 의무 강좌 들으러 DC에 어제 내렸다. 선서는 내일 하고 의무 강좌는 모레 듣는다. 내가 또 시차 적응은 잘해서 좀 졸리긴 하지만 특별한 고생은 없다. 다니던 학교 와서 태연하게 학생증 보여주며 지나가니까 무사통과해서 현재는 학교 도서관에 앉아있다. 재학생 카드인지 졸업생 카드인지 눈으로 봐서 알 길이 없으니 당연하겠지. 사람이 눈으로 확인하는 건 통과되는데 기계는 속질 않아서 긁는 건 안 된다. 이로써 낮 동안 지낼 곳 확보. 온 김에 논문이랑 수업 관련해서 책 좀 많이 찾아봐야지. 빌리진 못하지만 어떤 책이 도움이 되는지 구경은 해볼 수 있으니까.

잘 지내고는 있는데 귀국 직후에 피검사를 받기로 되어 있어서 우울하다. 몇 년 동안이나 지지고 볶은 끝에 병원 공포증은 거의 신적 수준이랄까. 재발하지 않는 치료라는데 재발한 것 같아서 더 우울하고, 그러면서도 몸 상태는 좋아서 이상하다. 주기적 마비 같은 갑상선 중독 증세도 완전히 사라진 걸 보면 결국은 갑상선이 문제라기보다는 내 몸 자체가 문제였다. 그래서 장기적으로 몸이 좋아지다 보면 이쪽도 해결될 것 같은데 마치 갑상선이 모든 것인양 검사 결과에 얽매이고 일일히 보고하고 걱정하고 어쩌고 하는 게 짜증난다.

잘 풀리는 일이 있으면 답답한 일도 있는 게 당연하겠지. 어제 타로를 뽑아보니 잔의 다섯이 나왔다. 쏟아진 잔에 대해 불안해하느라 잘 서있는 잔을 못 보는 건 바보같은 일이다. 결국은 다 잘 될 거야.
2009/01/09 05:41 2009/01/09 0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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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sdee 2009/01/09 14:01  수정/삭제  댓글쓰기

    옙! 힘내시고 건강히 잘 돌아오세요~ :)

  2. Wishsong 2009/01/09 21:05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 잘 될거야. 힘내!

  3. Xenosia 2009/01/11 19:07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래 버그를 찾기 위한 테스트는 미친듯이 꼼꼼하게 해주는게 좋은 거죠
    덕분에 요즘 남자의 눈물을 흘리고 있습[..]
    여하튼 즐거운 쌀나라 여행 되시길.

    • 로키 2009/01/13 16:35  수정/삭제

      조의를 표합니다..(..) 덕분에 쌀나라는 잘 다녀왔습니다.

  4. lainavi 2009/01/12 09:34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번 병을 겪고나면, 병에 대해서 더 용감해지는 것 같아. 나도 가끔가다 자다 일어나서 문득문득 목을 만져볼 때가 있어. 병은 평생 내 발목을 쥐고 놓지 않을거야. 끊이지 않는 근원의 공포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지. 일상속에서는 최대한 잊고 살려고 노력해. 왜냐면, 병을 의식하여 떨면서 사는 것은 결국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올 죽음을 매일 의식하며 사는 것 만큼이나 바보스러운 일일테니까.

    • 로키 2009/01/13 16:36  수정/삭제

      하긴, 결국은 그렇네. 아무리 아파봤자 사람이 죽기밖에 더 하나..ㅋㅋ

타고난 아마추어

웹스터 사전 넘기면서 마음에 드는 단어 어원 모으는 게 취미였던 적이 있다. 그때 찾은 영단어 중 dilettante라는 게 있다. 별 깊이는 없이 이것저것 집적거리는 사람. 팔방미인의 부정적 의미 정도 된다. 흔히 사용하는 의미 중 하나는 취미로, 좀 더 부정적으로는 폼으로 예술 하는 사람.

개인적으로 난 내가 타고난 딜레탕트인 것 같다. 머리는 적당히 좋지만 계획성이 없고 뭐 하나 깊게 파기는 싫어하고, 직관적으로 한 번 퍼뜩 보고 감동을 느낀 다음에 다음 감각으로 옮겨가기 바쁘니까.

딜레탕트라는 말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어원 때문이다. 딜레탕트의 어원은 이탈리아어의 dilettare, 즐거움이다. 얕게 알고 지나가기 좋아하는 내 성향은 근본적으로는 정신적 쾌락주의라는 점에서 어울리는 말이다.

딜레탕트인 나는 사실 거의 어떤 자리에 취직했어도 지금보다는 스트레스를 덜 받았을 거다. 난 기본적으로 업무라는 걸 즐긴다. 일하느라 뭔가 새로운 걸 알아가고, 남들하고 얘기하고 접하고, 배운 걸 활용하고, 또 그게 지나가면 새로운 걸 배우는 흐름이 재미있다.

하지만 삶이라는 게 재밌어서, 꼭 가장 도전이 되는 자리에 사람을 갖다놓는 것 같다. 딜레탄티즘과는 가장 거리가 멀고, 숨가쁜 업무의 흐름도 없이 하루의 대부분을 혼자 보내고 어떤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하는 자리에 취직하다니.

당연히 불평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과분하지. 그저 나한테 어떻게 보면 제일 안 어울리는 자리에 어느새 앉아있다는 사실이 재미있을 뿐. 가장 편한 자리에 들어가서 편한 모습 그대로 굳어지려는 걸 막아버리는 게 삶이 주는 짖궂은 선물 중 하나일까.

그래서 이제는 내가 변해야 할 때. 타고난 아마추어인 내가 선택한 분야의 프로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그 답을 확인하는 것은 또 다른 배움이자 즐거움이겠지.
2008/11/16 12:21 2008/11/16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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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shsong 2008/11/18 19:18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이 힘든가보다; 그래도 결국에는 분명 누나는 프로가 될 수 있을거야!

    • 로키 2008/11/18 22:41  수정/삭제

      그래야지!^^ 많이 힘들거나 하진 않아. 그 도전 자체가 재밌으니까. 게다가 이제는 뭘 연구하고 싶은지 감이 잡혀서 그쪽으로 매진할 생각하니 편해졌음.

첫 시험을 치르다

아니, 바로 두 달 전까지만 해도 난 시험을 보는 입장이었지, 내는 입장이 아니었다고. (..) 처음으로 수험자가 아닌 출제자, 그리고 평가자로서 시험을 치렀다. 가뜩이나 어렵다고 원성이 드높아서 (엉엉 내가 뭘 어쨌다고) 출제에 상당히 끙끙 앓았다. 풀 만한 문제가 하나는 있게 문제 여럿 중 하나를 선택하는 식으로 내기도 했고. 자세한 얘기는 다음번 수업에 듣겠지만, 일단 어려워서 못 풀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다 한 얘긴데 어려워서 못 풀면 좀 문제가 심각하기도 했을 테고.

학생 하나는 시험에 30분쯤 늦게 들어와서 날 당황하게 했다. 11시에 했어도 1~2분에서 30분까지 늦게 들어오는 학생들이 있는데, 애들 대다수가 원한 대로 9시 반 목요일로 옮겼으면 어떻게 될 뻔했어. 맞을 매는 빨리 맞는 게 낫다고, 중간고사 하나라도 빨리 끝난 걸 지금쯤 다들 안도하고 있을 거다.

어쨌든 늦게 들어온 학생이 참 딱하더라. 차분하게 풀라고 얘기해주고, 시험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준 다음에 '괜찮아? 침착하게 할 수 있지?' 하면서 등도 좀 쓸어주고, 약간 훌쩍거리길래 (얼마나 놀랐겠어, 시험에 늦다니) 휴지도 갖다주고 하니까 좀 차분해지는 것 같았다. 그 학생 생각해서 끝에 전원에게 시간을 5분 더 주긴 했지만, 그 5분이 끝난 다음에는 단호하게 그만 쓰라고 끊었다. 안된 건 안된 거고 원칙은 원칙이니까.

그래도 나중에 시험 끝나고 찾아왔을 때 고마워하데. 부족한 시간에도 답안지를 꽤 빼곡하게 채웠던데, 생각보다 잘 봤을지도 모르고 기말고사 때 열심히 하라고 위로해줬다. 늦은 건 어쩔 수 없지만, 불쌍하긴 참 불쌍하더라. 나도 특히 아플 때는 온갖 엉망인 짓을 다 해서리 남 얘기 같지 않았다. ;_; 최소한 시험은 다 봤었고 그래서 어찌어찌 졸업은 한 거지만.

어쨌든 이런 식으로 새로운 경험이 하나씩 쌓여간다는 기분이 든다. 그 속에서 뭔가 배우고 변해가는 게 있겠지? 모두 중간고사 잘 보기를 (내 시험 잘 못봤으면 주거써..ㅡㅡ++),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나도 더욱 성장하기를. 그래서 경험이야말로 나의 교실이고, 나의 학생들은 나의 선생이다. 그리고 배움이란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는 과정이다.
2008/10/14 18:57 2008/10/14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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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lhovamp 2008/10/15 00:32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 시험 잘 못본 학생을 죽이실 것 까지야.

    세상에는 D-라던가 D0 같이 좋은 게 많은걸요 [...]

  2. Asdee 2008/10/15 08:45  수정/삭제  댓글쓰기

    언더 더 씨..의 세계인가... (=ㅁ=;)

    암튼 수고 많으셨네요. 흐흐. 나중에 채점할 때가 더 고민이 많겠지만.. 그것도 재미있겠죠? ㅋㅋ

    • 로키 2008/10/15 12:05  수정/삭제

      언더 더 씨..ㅋㅋㅋ 채점이 재밌을까 모르겠다만, 재밌게 하려고 노력해야지!

  3. Wishsong 2008/10/15 09:41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번 시험은 정말 잊지 못할 경험이겠네. (권력자 로키!) 앞으로도 계속 성장하면서, 더 많은 걸 배우고 가르치기를!

    • 로키 2008/10/15 12:06  수정/삭제

      훗훗 권력은 좋은 것이라는 걸 배웠삼(..)

  4. 고냥 2008/10/15 11:01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 예전에 독일어 전공과목 들었다가....

    시험시간에...
    후...
    한개도 모르겠는거야 -_-

    남의 전공을 왜 들었을까! 이게 다 차주희의 꼬임 때문이닷

    교수님이 날 너무 불쌍하게 봐서 아주 걍 무제한으로 시험시간을 주셨더랬지 ㅠ_ㅠ
    그것도 나름 곤혹스런일이야 ㅋㅋㅋ 짧게 맞고 끝나는게 나아 ㅎ

    • 로키 2008/10/15 12:07  수정/삭제

      안습.. 어쩌다 그랬삼. 아주 매를 무한정으로 맞았었구만? (..)

후, 비디오 찍었다

며칠 동안 스트레스 받았던 일인 10분짜리 비디오를 오늘 찍었다. 평생 비디오 카메라를 다뤄본 일도 없고, 뭘 가지고 떠들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집에서 찍기는 좀 그래서 학교 가서 찍어야겠는데 강의실 써도 되느냐고 전화로 물어보니까 직원이 윗사람한테 물어보겠다고 하고서는 좀있다 끊어버리고...

빌린 카메라가 어제 와서 좀 돌리면서 작동법 파악하고, 오늘 오후에 정장 다려서 입고 책가방에 카메라랑 노트북이랑 막 우겨넣고 학교로 일단 갔다. 정장에 책가방이라니 좀 갓 쓰고 자전거 타기이긴 했지만, 비디오에 책가방 메고 나올 거 아니니까 괜찮다 이거야! (..) 카메라용 케이스가 있긴 하지만 커다란 검은 가방을 들고 학교에 들어가면 경비 하나쯤은 멈춰세우고 질문을 할 것 같았고.

처음에는 얌전하게 학교 사무실 가서 정식으로 허락 받으려고 했는데, 그쪽으로 가는 길에 강의실 하나를 시범적으로 열어봤더니 왠걸, 방학 때 다 잠겨있다던 강의실 문이 훤하게 열려 있네. 형광등만으로는 화질이 별로일 것 같아서 햇빛이 잘 드는 4층 강의실을 찾아가봤지만,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서 포기. 결국 다른 강의실을 찾아 형광등만 받으며 촬영했다. 어차피 비디오 잘 찍었다고 상 주는 것도 아니고. 최소한 부엌 배경보다는 좀 나았겠지.(..)

발표 같은 걸 하면서 종종 느낀 것은 연습을 하면 할 수록 나아진다는 것. 그래서 시범 촬영을 해보면서, 그리고 그냥 앉아서도 중얼중얼 2~3번 연습했다. 혼자 떠들다 보니 가끔씩 사람이 들어오기도 하던데, 아무 얘기도 안하고 다들 슬금슬금 나가데. 싱거운 사람들 같으니라고. 나야 이제는 학교 학생도 아닌데다 기본적으로는 개인 용도로 강의실을 무단 사용중이었으니 도둑이 제발 저렸지만.

그러다가 학교 사무실 시간이 끝날 때쯤 도둑이 제일 발 저린 존재, 경비가 들어왔다! 그런데 다행히도 내가 아주 잘 아는 아저씨였다! 다른 경비 아저씨였으면 어땠을지 모르겠는데 (사실 졸업생이 직장 지원하느라 강의실을 배경으로만 쓰는데 설마 내쫓진 않았겠지만), 알 아저씨는 무슨 일 하는지 설명하니까 아, 그렇냐고, 잘 하라고 격려해주고 가셨다.

비디오는 내용은 그저 무난, 기술은 심히 열악한 정도. 특히 느낀 것이라면 비디오를 통해 열의나 감정을 전달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이었다. 저화질이라 더 그럴 수도 있지만, 나름 웃어도 비디오로는 무표정하게 나오고, 목소리도 더 평면적이고 해서 참 재미없다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못생기게 나온 게 가슴아프다. (어흑) 그래도 요즘엔 생판 모르는 남자들이 왠지 실실 웃으며 인사하는 일도 있는 걸 보면 비디오에 나온 것만큼 못생기진 않았다고 생각해!

뭐 어쨌건 (흠흠) 스트레스 받았던 일을 해치울 수 있어서 기쁘다. 이제 DVD로 구웠으니 내일 부치기만 하면 된다. 이것까지 하면 8월까지 취직 관련으로 더 할 일은 없으니 시험 공부에 집중할 수 있겠지. '합격만 하면 되니 도를 넘어서 열심히 하지는 말라'는 당부(?)도 오늘 학원에서 듣긴 했지만. (그런 의미에서 놀고 있..) 에휴, 몇 시간 동안 떠들었더니 배고프네. 저녁 먹고 공부해야지.
2008/06/11 08:55 2008/06/11 08:55
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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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Xenosia 2008/06/11 09:20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것 참 보고싶군요 [..]

  2. Asdee 2008/06/11 11:15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디오 면접... 같은 건가요;ㅁ; 고생하셨네요. ^^
    열심히 준비해서 시험도 잘 치르시고 좋은 일자리 잘 연결되길 바라요. 화이팅!

  3. Asdee 2008/06/11 11:19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 동영상, 유튜브에 올리세욥!
    ...이라 말하고 싶었었지만, 드롭킥을 맞을 듯 해서 침묵. (=_=)

  4. 로키 2008/06/12 02:15  수정/삭제  댓글쓰기

    DVD 레코더로 찍은 거라 올리긴 어려울 것 같군요. 게다가 유튜브 무료계정의 한도인 10분보다 긴 12분이라 더욱.. (훗 피했다!) 말씀대로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를 내보겠습니다!

  5. Wishsong 2008/06/12 11:26  수정/삭제  댓글쓰기

    10분으로 편집해서 유튜브에! 아니면 판도라 TV에!(...)

    • 로키 2008/06/12 12:21  수정/삭제

      원본 DVD가 이미 태평양을 건너가고 있어서 소용없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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