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다음 주부터 시작할 수업 교과서를 사러 학교 서점에 짐가방 끌고 간 김에 의사당 쪽으로 산책도 다녀왔다. 가방 끌고 갔다오기가 좀 불편하긴 했지만 (돌돌돌돌) 오늘처럼 흐린 날은 일찍 어두워지는데다, 한 번 집에 들어가면 나오기 싫거든.

싸늘한 바람에 연못은 잿빛으로 물결치고, 수면 위에 나는 하얀 물새의 울음이 왠지 가슴을 찔러왔다. 화창한 날이면 장사진을 이루곤 하는 관광객도 없이 구름낀 하늘만큼이나 휑한 주변. 차갑지만 맑은 바람을 타고 태프트 기념비의 종소리가 들려왔다.

별것도 아닌데 가끔 묘한 감동으로 남는 순간들이 있다. 내게는 그때가 그랬다. 중년 부부가 사진찍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잠시 걸음을 멈추고 연못과 건너편의 의사당을 내다본 그 순간이. 바로 그때 난 내가 6개월 후면 이 도시를 떠난다는 것을, 그리고 이곳이 그리워지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으니까. 처음 도착한 순간부터 떠날 준비를 하면서도 어떻게든 3년 가까이 여기서 생활을 영위해 왔으니. 공부하고, 게으름피고, 생각하고, 조바심치고,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나를 의심하고, 힘들어하고, 외로워하고, 때로는 혼자 울면서.

떠날 때가 가까워 오니 내가 여기 남긴 흔적이 너무 작은 것이 좀 아쉽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은 공부를 하러 온 거지 뭔가 엄청난 일을 해내려고 온 건 아니긴 하니까. 별로 대단하거나 특별할 것 없는 시간을 보냈지만 그 가치는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겠지. 나 역시 별로 대단할 건 없지만 무조건 버티는 것 하나는 할 수 있는 사람. 3년이 끝나가는 지금, 이제 거의 끝까지 온 내게 말할 수 있다. 축하한다고, 잘 버텼다고, 이제부터 더욱 힘내보자고. 이 3년 유배의 끝은 남은 인생의 시작이기도 하니까.
2008/01/11 06:41 2008/01/11 06:41
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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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08/01/11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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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shsong 2008/01/11 18:24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고하셨습니다.

  2. 종횡무진 2008/01/14 16:40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로 열심히 생활하셨네요^^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3. orches 2008/01/14 20:31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고하셨습니다, 로키님 (꼬옥)

  4. lhovamp 2008/01/14 23:04  수정/삭제  댓글쓰기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막바지로군요. 지금까지 그래오신 것처럼, 남은 기간도 멋지게 마무리하시길!

  5. 로키 2008/01/15 01:54  수정/삭제  댓글쓰기

    별로 열심히 하지 않은 것 같아서 아쉽긴 하지만, 남은 한 학기 동안은 더욱 노력하고 싶네요. 모두 성원에 감사드립..(퍽)

  6. Asdee 2008/01/17 10:36  수정/삭제  댓글쓰기

    남은 시간도 더욱 값지고 보람차게 보내시길! 돌아오는 날 기다릴게요-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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