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무지개

오늘 아침에는 그야말로 끝내주는 여명이 창밖에 가득 펼쳐졌어. 보랏빛과 분홍색, 백금빛의 향연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그 해돋이 밑에 서려고 잠바를 걸치고 나갔어. 나가는 길에 엘리베이터 옆에 떨어진 신문이 보였어... 뭔가 예감이 들어서 집어보니 역시나 나한테 배달된 신문, 그것도 4일 전 것. 어떻게 4일 전 내 신문이 내 아파트에서 거리가 있는 곳에 떡하니 떨어진 것일까. 매일 청소하는 복도에 말야.

신문을 팔에 끼고 로비에 있는 아더에게 아침인사를 하며 차가운 아침을 향해 나갔어. 하늘과 구름은 기묘하게 아름다운 황금 레몬빛으로 물들어 있었어. 그 노란 빛이 그림자에 잠긴 익숙한 건물들의 꼭대기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일상의 정경을 꿈으로 바꾸었지. 연기처럼 뿌연 노란색 구름은 바람에 흐르며 하늘을 낮게 지나갔고, 그 언저리의 아침 하늘은 눈과 영혼을 찔러오는 맑고 차가운 연청색. 찬바람이 세차고, 공기에는 톡 쏘는 청량함이 있었어.

뉴저지 가에 접어들자 등뒤에서 날 밀치듯 바람이 불어왔어. 머리와 옷을 마구 날리는, 그 등뒤를 떠미는 바람 때문에 걷기가 힘들어서 뛰었어. 바람에 쫓기듯, 바람을 앞서듯 그렇게 텅 빈 거리를 미친 여자처럼 달렸어. 달리다 보니 웃음이 나왔고, 그 웃음이 소리가 되어 바람에 섞이게 내버려 두었어. 미친 것처럼, 미친 척, 미쳐서.

그 찬 날씨에 바람에 쫓겨 레몬 잿빛 하늘 아래 달리며 느낀 것은 행복이라기보다는 기쁨. 행복에 안정과 안주, 절제가 있다면 기쁨은 결코 안주할 수 없는, 길들일 수도 없는 것. 고통의 칼날에 아주 가까이 걸으며 영혼과 존재를 찔러오는 날카로움이니까. 때로는 견딜 수 없는 환희인.

조금 달리다 보니 바람은 방향을 이리저리 바꾸며 광풍이 되었어. 잡동사니가 날리고, 비가 조금씩 흩뿌리기 시작했어. 근처 공사장의 먼지가 바람에 마구 날려 하늘로 소용돌이치는 것을 보고 레몬빛 연기 같은 구름의 정체를 알아차렸어. 이 미친 바람에 흙먼지가 날려올라간 먼지구름이, 그걸 날리고 있는 바람이 내게 이렇게도 기이한 기쁨을 안겨주었다니. 그렇게도 부조리와 기쁨은 연인처럼 뒤얽혀...

그리고 공사장 위로 눈을 드는 순간, 무지개가 눈에 들어왔어.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고 하늘이 연회색으로 변하는 동안, 연하면서도 선명한 무지개가 공사장 위로 두둥실 떠올라서 빌리 고트 주점이 있는 그 파란 유리 건물 지붕에 내려앉더군. 너무 가슴이 벅차서 비를 맞고 거꾸로 걸으며 계속 무지개를 올려다봤어. 물새 한 떼가 마치 흩어지는 빛의 입자처럼, 마치 무지개를 타듯 그 우아한 색의 곡선을 따라 날아오르는 모습도.

의사당 쪽으로 길을 건너고 제자리에 서서 입을 조금 벌린 채 무지개만 쳐다봤어. 보니까 그 위에 있는, 조금 더 굵고 더 흐릿한 무지개도 보이더군. 차들이 지나갔지만 저들은 보고 있었을까? 도심의 잿빛 하늘에 휘영청한 저 무지개를. 각자 현실을 생각하며 바삐 지나가느라 놓치는 이 작은 기적.

그렇게 가만히 서서 무지개를 나의 것으로 만들었어. 어떤 사진이나 영상으로도 남길 수 없는 기록으로, 내가 비를 맞으며 쳐다본 시간과 느낀 놀라움만큼 나의 것,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변화시킨 만큼 나의 일부가 되도록. 무지개도, 이 차디찬 비바람도, 하늘 언저리의 가슴 시린 연청색도 모두 나의 것. 나는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일 시간과 정성을 들였으니까. 내 안에 들어오도록, 나를 바꾸게 허락했으니까.

다시 길을 건너 집으로 향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무지개는 이미 사라져 있었어. 마치 환영처럼, 마치 기적이란 이렇게도 빨리 지나간다고 속삭이듯이. 밋밋한 잿빛 하늘 아래 노숙하는 여인이 막 일어나는, 갈가마귀와 물새가 빵조각을 두고 싸우는 다리를 건너 집으로 돌아왔어. 놀라움은 짧게도 지나가지만 상관없었어. 무지개는 이제 내 안에 있으니까.
2008/02/11 06:42 2008/02/11 06:42
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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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shsong 2008/02/11 13:50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끝내주는 광경을 보셨네요. 부럽습니다.

    행복과 기쁨을 나누어 이야기하신 것, 전혀 생각해보지 못한 것들인데 곰곰히 되새겨보니 정말 그렇네요.

    행복도 기쁨도 많이 많이 누리시길 바랍니다. :)

    • 로키 2008/02/11 22:34  수정/삭제

      예, 꼭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어요.^^ 승한님 생활에도 언제나 행복의 따스함과 기쁨의 청량감이 함께 하길!

  2. 종횡무진 2008/02/12 14:31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키님 글에는 항상 희망찬 이야기만 가득해서 읽는 독자로서 참 기분이 좋아져요^^

    앞으로도 행복하고 기쁜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로키 2008/02/12 22:10  수정/삭제

      이 어수선한 세태에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지시면 좋겠네요..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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