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삶을 위하여
요즘에는 최근 읽은 책 때문에 사랑이라는 화두에 대해 부쩍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정신과 의사 스캇 펙 (M. Scott Peck)의 The Road Less Traveled인데, 정신 건강과 영적 성장을 다룬 이 책은 특히 영적 성장에서 사랑의 역할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랑은 흔히 말하는 연애 감정이나 다른 어떤 감정도 아니다. 펙이 정의하는 사랑은 대상의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려는 의지이다. 즉, 이 정의에 따르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 모든 노력을 하는 의지를 말하고, 배우자나 자식, 친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더 높은 영적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희생과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이 느끼는 감정 중에는 사랑과 흔히 혼동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 예를 들어 '너 없이 못 살아' 하는 의존성이나 애착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므로 사랑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대상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과보호 역시 상대의 성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이므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흔히 사랑이라고 부르는 연애감정은 어떨까? 연애를 할 때 자아의 경계가 함몰하는 환희 역시 사랑과 관련은 있지만 사랑 그 자체는 아니라고 펙은 말한다. 이러한 감정은 결혼과 육아라는 힘겨운 과정을 견뎌낼 동기부여를 하는 뇌화학적 속임수이며 (이른바 낚시..(..)), 오히려 이런 매혹이 희미해지는 때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그나마 저자가 말하는 진짜 사랑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가족 내에서이다.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주면서도 자신과 상대의 개체성을 인정하는 부부, 그리고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 불행히도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도 거의 항상 사랑은 사랑 아닌 것--의존성, 허영, 과보호, 분노, 두려움 등--과 쉽게 섞여서 자식에게 알게모르게 평생 가는 상처를 남기고, 그 자식은 또 부모가 되어 역시 정신적 문제를 마치 유전병처럼 물려준다.
사랑은 놀라운 것이지만 절대 쉽지는 않다. 그래서 아주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등 극소수의 사람 외에는 진정 사랑하기란 어렵고, 단 한 사람도 진정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그래서 내가 하는 생각인데, 세상에 대해 우리가 베풀 수 있는 최소한은 '소극적 사랑'이 아닌가 싶다. 마주치는 모든 사람의 영적 성장을 위해 자신을 바칠 수 없다면 최소한 그들의 영적 성장을 저해하지는 않겠다는 의지. 그만큼만 할 수 있어도 꽤 괜찮게 살아가는 삶이 아닌가 싶다.
사랑은 정말로 흔하고 쉽게 쓰는 말이지만, 진정한 사랑은 흔하지 않다. 어떻게 하면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정말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든다. 그게 별로 종교적인 인간이 아닌 내 나름의 영성일지도 모르지. (재밌게도 펙은 기독교인이지만 영성과 종교를 동일시하지 않으며, 종교를 전보다 덜 믿는데도 지금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영적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등을 돌린 건 영적 성장이 아니라 미신과 권위주의라고 말이지. 생각하는 게 마음에 드는 아저씨라니까.)
그러나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랑은 흔히 말하는 연애 감정이나 다른 어떤 감정도 아니다. 펙이 정의하는 사랑은 대상의 영적 성장을 위해 노력을 기울이려는 의지이다. 즉, 이 정의에 따르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 모든 노력을 하는 의지를 말하고, 배우자나 자식, 친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마찬가지로 그 사람이 더 높은 영적 단계로 나아갈 수 있게 희생과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노력하는 것을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사람이 느끼는 감정 중에는 사랑과 흔히 혼동하는 것이 너무나 많다. 예를 들어 '너 없이 못 살아' 하는 의존성이나 애착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므로 사랑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대상의 독립성을 저해하는 과보호 역시 상대의 성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만족이므로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흔히 사랑이라고 부르는 연애감정은 어떨까? 연애를 할 때 자아의 경계가 함몰하는 환희 역시 사랑과 관련은 있지만 사랑 그 자체는 아니라고 펙은 말한다. 이러한 감정은 결혼과 육아라는 힘겨운 과정을 견뎌낼 동기부여를 하는 뇌화학적 속임수이며 (이른바 낚시..(..)), 오히려 이런 매혹이 희미해지는 때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그나마 저자가 말하는 진짜 사랑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가족 내에서이다. 서로 이해하고 보듬어주면서도 자신과 상대의 개체성을 인정하는 부부, 그리고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 불행히도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도 거의 항상 사랑은 사랑 아닌 것--의존성, 허영, 과보호, 분노, 두려움 등--과 쉽게 섞여서 자식에게 알게모르게 평생 가는 상처를 남기고, 그 자식은 또 부모가 되어 역시 정신적 문제를 마치 유전병처럼 물려준다.
사랑은 놀라운 것이지만 절대 쉽지는 않다. 그래서 아주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 등 극소수의 사람 외에는 진정 사랑하기란 어렵고, 단 한 사람도 진정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도 수두룩하다. 그래서 내가 하는 생각인데, 세상에 대해 우리가 베풀 수 있는 최소한은 '소극적 사랑'이 아닌가 싶다. 마주치는 모든 사람의 영적 성장을 위해 자신을 바칠 수 없다면 최소한 그들의 영적 성장을 저해하지는 않겠다는 의지. 그만큼만 할 수 있어도 꽤 괜찮게 살아가는 삶이 아닌가 싶다.
사랑은 정말로 흔하고 쉽게 쓰는 말이지만, 진정한 사랑은 흔하지 않다. 어떻게 하면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나는 정말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요즘 많이 든다. 그게 별로 종교적인 인간이 아닌 내 나름의 영성일지도 모르지. (재밌게도 펙은 기독교인이지만 영성과 종교를 동일시하지 않으며, 종교를 전보다 덜 믿는데도 지금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영적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등을 돌린 건 영적 성장이 아니라 미신과 권위주의라고 말이지. 생각하는 게 마음에 드는 아저씨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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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3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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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드는책이군요 -_-b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지도요. 제가 대충 떠오르는 대로 얘기한 것보다 좋은 얘기들이 많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