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 진보라는 것은
진보와 보수는 꽤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내가 살아오면서 느낀 분야별 진보와 보수의 대체적인 경향이라면 다음과 같은 것.
사회적 평등 - 진보적일 수록 소득 분배와 사회적 안전망, 차별 철폐를 위한 정부 개입을 강조하며, 보수적일 수록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을 것을 주장한다.
개인적 자유 - 진보적일 수록 개인적 도덕이나 종교의 영역에 대한 정부 개입에는 부정적이다. 보수적일 수록 국가가 도덕이나 종교의 문제에 개입하는 데에 긍정적이다. 특히 종교적 우익.
외교 - 대체로 진보적일 수록 외교적 수단과 협력을 강조하며, 보수적일 수록 군사적 수단을 강조하는 것 같다. 그러나 국내 정책에 비해 사상적 색채보다는 실익이 결정적인 분야이기도 하다.
대충 이렇게 나누어 본다면 (정치성향 테스트 참조) 사회적 평등과 개인적 자유 면에 둘다 진보라면 꽤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고, 개인적 자유 면에서는 좌파이지만 사회적 평등에 대해서는 (특히 경제 분야, 내지는 다른 거 다 필요없고 세금이 싫어!) 보수적인 '캘리포니아 공화당원'도 설명할 수 있겠지. 사회적 평등을 위한 정부 개입에 대해 호의적이고 개인적 자유에 대한 정부 개입에도 호의적인 종교적 우파도 있고, 사회적 평등이든 개인적 자유든 정부 개입에 대해 부정적인, 가장 정통 보수라고 할 수 있는 자유론자도 있고.
여기에 더해서 외교에서까지 일관적인 사상적 색채가 드러난다면 이제 실리주의에서는 좀 벗어난 '이상주의적 좌파' 혹은 '군사 침략을 넣으면 즉석 민주주의가 나와요 네오콘'의 양극단이 나올 것 같다. 네오콘 쪽이 훨씬 위험하기는 하지만 어느 쪽이든 정부 이념으로서는 썩 신뢰가 가지는 않는다. 이상주의적 좌파는 각종 NGO에서 좋은 일 하고, 네오콘은 불평하며 시간 보내기 정도가 가장 어울리는 역할인 듯.
정치적으로 진보라는 것은 대체로는 평등을 위한 국가 개입은 긍정하고 개인적 자유의 영역에 대한 국가 개입에는 부정적인 쪽을 가리키는 것 같다. 미국 민권운동이 가장 극명하려나. 차별 철폐를 주장하면서 흑백 혼인금지법은 반대한다든지. (흑백 혼혈 정치인이 다음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나라에서 그런 법이 몇십 년 전만 해도 있었다니, 참나.) 다만, 개인적 자유의 영역은 가장 그야말로 '개인'의 자유만을 가리키고, 예를 들어 고용이나 주택 임대와 같은 경제 활동의 자유는 (흑인이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고용하지 않을 자유라든지!) 평등을 위해 다소 규제하기도 하는 입장.
결론적으로 진보라는 건 결국 개인적 자유를 확장하면서, 누구든지 자유로울 수 있게 기회의 평등을 확보하고 차별적 사회 분위기를 쇄신하는 걸 기본으로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어떻게 보면 사회와 사회의 모든 성원의 더 큰 자유와 성장을 향한 움직임 아닐까.
모든 성장에는 물론 고통이 따른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Paul Krugman)은 그의 저서 '진보의 양심 (The Conscience of a Liberal)'에서 미국이 최근 몇십 년 간 우경화한 이유를 1964년 민권법 통과를 민주당이 지지한 데서 찾고 있다.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연방법에 분노한 남부 백인들이 민주당에 등을 돌리고 공화당에 표를 던지면서 공화당이 선거에 이기기 시작했다는 거지.
민권법 통과 당대에 살아가는 당사자들도 그런 결과를 모르지 않았다. 린든 존슨은 민권법에 서명하고서는 '이제 앞으로 수십년 간 남부를 공화당에 넘겼구나' 하고 탄식했다고 한다. 그건 존슨 개인에게도, 민주당에도 상당한 정치적 희생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도덕적 정당성은 확실한 결단이기도 했고.
변화에는 언제나 고통과 저항이 따르기에 어떻게 보면 진보란 보수보다 근본적으로 어려운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회적 태도가 변하고, 사람들의 생각이 변해야 정치적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 때도 있고, 미국 민권법 통과때 그랬듯 큰 대가를 치르면서 제도적 변화를 통해 사회적 변화를 자극해야 할 때도 있으니까.
물론 그 과정에서 현실적 문제도 늘 생각해야 하고, 보수적이고 현실적인 목소리의 제어도 필요하다. 공익만 생각하다가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할 위험성도 있고, 목표만 보다가 거기까지 가는 길이나 대가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도 종종 진보 진영의 약점이며 보완해가야 할 점이다. 그러나 사회가 더 발전하려는 한, 바로잡을 불의가 있는 한 나아갈 길은 궁극적으로 변화이지, 현상 유지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정치적 진보란 계속 변해가고 성장해가는 사회의 요구이며, 불의가 극명할 때면 단순한 양심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진보란 정체와 엔트로피에 대한 끝없는 저항, 그리고 한 사회의, 나아가서는 인류의 영적 성장을 향한 몸부림이 아닐까. 그래서 정치적으로 진보라는 것은 나에게는 일종의 사회적 사랑이기도 하다.
사회적 평등 - 진보적일 수록 소득 분배와 사회적 안전망, 차별 철폐를 위한 정부 개입을 강조하며, 보수적일 수록 시장에 정부가 개입하지 않을 것을 주장한다.
개인적 자유 - 진보적일 수록 개인적 도덕이나 종교의 영역에 대한 정부 개입에는 부정적이다. 보수적일 수록 국가가 도덕이나 종교의 문제에 개입하는 데에 긍정적이다. 특히 종교적 우익.
외교 - 대체로 진보적일 수록 외교적 수단과 협력을 강조하며, 보수적일 수록 군사적 수단을 강조하는 것 같다. 그러나 국내 정책에 비해 사상적 색채보다는 실익이 결정적인 분야이기도 하다.
대충 이렇게 나누어 본다면 (정치성향 테스트 참조) 사회적 평등과 개인적 자유 면에 둘다 진보라면 꽤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고, 개인적 자유 면에서는 좌파이지만 사회적 평등에 대해서는 (특히 경제 분야, 내지는 다른 거 다 필요없고 세금이 싫어!) 보수적인 '캘리포니아 공화당원'도 설명할 수 있겠지. 사회적 평등을 위한 정부 개입에 대해 호의적이고 개인적 자유에 대한 정부 개입에도 호의적인 종교적 우파도 있고, 사회적 평등이든 개인적 자유든 정부 개입에 대해 부정적인, 가장 정통 보수라고 할 수 있는 자유론자도 있고.
여기에 더해서 외교에서까지 일관적인 사상적 색채가 드러난다면 이제 실리주의에서는 좀 벗어난 '이상주의적 좌파' 혹은 '군사 침략을 넣으면 즉석 민주주의가 나와요 네오콘'의 양극단이 나올 것 같다. 네오콘 쪽이 훨씬 위험하기는 하지만 어느 쪽이든 정부 이념으로서는 썩 신뢰가 가지는 않는다. 이상주의적 좌파는 각종 NGO에서 좋은 일 하고, 네오콘은 불평하며 시간 보내기 정도가 가장 어울리는 역할인 듯.
정치적으로 진보라는 것은 대체로는 평등을 위한 국가 개입은 긍정하고 개인적 자유의 영역에 대한 국가 개입에는 부정적인 쪽을 가리키는 것 같다. 미국 민권운동이 가장 극명하려나. 차별 철폐를 주장하면서 흑백 혼인금지법은 반대한다든지. (흑백 혼혈 정치인이 다음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나라에서 그런 법이 몇십 년 전만 해도 있었다니, 참나.) 다만, 개인적 자유의 영역은 가장 그야말로 '개인'의 자유만을 가리키고, 예를 들어 고용이나 주택 임대와 같은 경제 활동의 자유는 (흑인이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고용하지 않을 자유라든지!) 평등을 위해 다소 규제하기도 하는 입장.
결론적으로 진보라는 건 결국 개인적 자유를 확장하면서, 누구든지 자유로울 수 있게 기회의 평등을 확보하고 차별적 사회 분위기를 쇄신하는 걸 기본으로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어떻게 보면 사회와 사회의 모든 성원의 더 큰 자유와 성장을 향한 움직임 아닐까.
모든 성장에는 물론 고통이 따른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Paul Krugman)은 그의 저서 '진보의 양심 (The Conscience of a Liberal)'에서 미국이 최근 몇십 년 간 우경화한 이유를 1964년 민권법 통과를 민주당이 지지한 데서 찾고 있다.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연방법에 분노한 남부 백인들이 민주당에 등을 돌리고 공화당에 표를 던지면서 공화당이 선거에 이기기 시작했다는 거지.
민권법 통과 당대에 살아가는 당사자들도 그런 결과를 모르지 않았다. 린든 존슨은 민권법에 서명하고서는 '이제 앞으로 수십년 간 남부를 공화당에 넘겼구나' 하고 탄식했다고 한다. 그건 존슨 개인에게도, 민주당에도 상당한 정치적 희생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도덕적 정당성은 확실한 결단이기도 했고.
변화에는 언제나 고통과 저항이 따르기에 어떻게 보면 진보란 보수보다 근본적으로 어려운 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회적 태도가 변하고, 사람들의 생각이 변해야 정치적 지지를 얻어낼 수 있을 때도 있고, 미국 민권법 통과때 그랬듯 큰 대가를 치르면서 제도적 변화를 통해 사회적 변화를 자극해야 할 때도 있으니까.
물론 그 과정에서 현실적 문제도 늘 생각해야 하고, 보수적이고 현실적인 목소리의 제어도 필요하다. 공익만 생각하다가 개인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할 위험성도 있고, 목표만 보다가 거기까지 가는 길이나 대가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도 종종 진보 진영의 약점이며 보완해가야 할 점이다. 그러나 사회가 더 발전하려는 한, 바로잡을 불의가 있는 한 나아갈 길은 궁극적으로 변화이지, 현상 유지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정치적 진보란 계속 변해가고 성장해가는 사회의 요구이며, 불의가 극명할 때면 단순한 양심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진보란 정체와 엔트로피에 대한 끝없는 저항, 그리고 한 사회의, 나아가서는 인류의 영적 성장을 향한 몸부림이 아닐까. 그래서 정치적으로 진보라는 것은 나에게는 일종의 사회적 사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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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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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예전에 정치성향 테스트를 해 봤을때, 저는 중심축과 로키님 성향의 가운데 정도로 나오더군요. 이쯤되면 거의 중도라고 주장해도 될 지 모르겠네요. (진보에 아주 살짝 가까운.)
재미있는 것은, 저는 사회적 평등을 위한 정부 개입을 찬성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사회의 시스템이 평등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다." 라던가, "같은 출발선에 설 수도 없는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 라고 믿으면서도 말이지요. 어쩌면 저는 정부 불신론자인 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요. "어린애들에게 엄격한 인성 교육을!" 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성인의 종교적, 도덕적 판단에 대해 타인이 왈가왈부하는게 말이나 되느냐. 하물며 정부 개입이라니, 맙소사." 정도의 성향이기도 하구요. 어찌 보면 색깔이 참 뚜렷하지 못한 것도 같아요. (정부를 믿지 못한다는 점에선 아주 뚜렷할지도 모르겠지만요.)
제가 보기에 정부의 효용은 그저 특정 사업을 벌이는 경제적 효율성의 도구에요. 정부 개입도 그런 맥락에서 주장하는 거고요. 군사, 소방, 사회보장, 기본 의료보험 등은 영리를 목적으로 한 사기업보다는 국가에서 하는 게 더 효율이 높다는 식으로요. (예를 들어 의료보험을 사기업이 하면 영리를 위해 보험금을 안 줄 궁리를 하는 악몽 같은 비효율이 발생하죠.) 그래서 정부보다 그런 공공 사업을 더 잘 할 수 있는 단체가 있다면 미련없이 그쪽으로 바꿔도 상관없다는 생각이에요. 결국은 효율의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