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내일 죽는다면

이런저런 할 일과 하고싶은 일 사이에서 정신없어하다가, 문득 내가 내일 죽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다음에도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아쉬운 기분이 들까? 슬프려나?

물론 당장 내일이라면 아쉬움은 남을 거라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논문을 남기지 못한 것이라든지, 책을 쓰지 못한 것이라든지, IRC 프로그램 코딩을 다 하지 못한 것이라든지. 하지만 살아있는 한 뭔가 뚝딱뚝딱 하는 건 계속 있게 마련이고, 그런 아쉬움은 내일 죽든 80년 후에 죽든 다소간은 있을 것 같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그리고 물론 아버지 계신 동안에 내가 먼저 가는 것은 '막심한' 불효이므로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기도 하고.

하지만 살아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을 더 못하는 아쉬움, 그리고 도의적(..) 문제 외에는 내가 내일 죽는다고 해도 크게 슬픈 일일 것 같지는 않다. 죽음의 슬픔이란 사실 주변 사람에게 남는 거지 죽은 사람 개인의 것이 아니기도 하고, 또 내가 한 것들과 살고 있는 삶에 나름 만족감이 들기도 하고.

그래서 역설적일지 모르지만 나는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내일 죽어도 크게 후회할 건 없으니까.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조바심내는 많은 것들이 죽음 앞에서는 그다지 큰일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자 마음이 편해졌다. 어차피 한 번 살다 가는 건데, 업적이니 성취니 하는 건 이루면 좋지만 내 존재를 정의하지는 않는다. 기왕이면 죽기 전에 이름을 좀 남기고 싶기는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고 죽어서도 눈을 못 감는다거나 하진 않을 것 같아.

다시 생각을 뒤집어보면 내일 죽어도 크게 아쉽지 않다는 것은 오히려 불행하다는 증거일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아이나 남편이 있었으면 죽음을 생각하면 온갖 걱정이 다 들 것 같다. 내 애는 어떡하나, 저 사람은 어떡하나 등등. 나한테 의지하는 사람, 내가 책임질 사람, 내가 누군가의 삶에서 할 역할이 없다는 사실이 개인적으로는 홀가분하지만, 그건 뒤집어 말하면 어떤 결핍일지도.

어쩌면 나에게 부족한 것은 삶의 과정에 대한 집착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에는 후배 결혼식에 갔는데,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식이나 후배의 예쁜 모습에도 전혀 부럽지 않다는 점이 새삼 놀라웠다. 나보다 어린 후배가 저렇게 훌륭하게 결혼하는데 사실 뭔가 조바심을 내야 할 때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 관심은 주로 이틀 후에 하는 수업 준비에 쏠려있기도 했고, 결혼에 대한 환상은 애당초 없기도 했으니까.

많은 사람이 날 편하게 느끼는 것도 내가 별로 감정이나 집착이 없어서인 것 같다. 사람에 대한 감정과 집착, 기대는 온갖 부담을 동반하는 만큼 가족처럼 감정적으로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마음이 무겁기 쉽고, 친구처럼 먼 관계일 수록 가볍고 편한 법. 감정적으로 종종 나는 '참여자'라기보다는 '관전자'이니까 그만큼 더 사람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쉬운 것 같다. 그 사실을 나름 즐기기도 하고.

결국 내일 죽어도 크게 아쉽지 않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애착이 별로 없다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주변 사람에 대해서보다는 내가 하는 일이라든지 도의 같은 객관적 기준을 더 생각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중심적인 걸까, 내일 죽어도 상관없다는 건.
2008/09/30 22:47 2008/09/30 22:47
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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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08/09/30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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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Xenosia 2008/10/01 09:13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과나무를 심고 플레이 한 번 하시면 됩니다 [..?]

  2. lhovamp 2008/10/01 09:30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고보니 떠오르는 건데, 예전에 한 백문 백답 같은데서 "죽기 직전에 어떤 노래를 듣고 싶어요?" 라는 질문이 있었어요. 제 답은 "Let me live" (...) 저는 감정이나 집착이 강해서 사람들이 불편해하는 걸까요. (먼 산)

    아무튼, 제노님 의견에 동의.

    • 로키 2008/10/01 15:28  수정/삭제

      Let Me Live라, 말 되네..ㅋㅋ 내가 떠올리는 Let Me Live는 복음성가 가수 팻 분의 낙태 반대 노래이지만, 뱀프군이 생각하는 건 아마 퀸?

      사람들이 뱀프군을 불편해하나? ㅋㅋ 항상 목표지향적이고 부지런해서 사람을 긴장시키는 건 있을지도.

      그건 그렇고 자네도 사과나무파인가! (..)

  3. 비밀방문자 2008/10/01 14:34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 로키 2008/10/01 15:52  수정/삭제

      어이구 그래..(토닥) 근데 바보라고? (투닥투닥)

      어쩌면 집착이 없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희대의 거짓말일지도 모르지. 상처받기 싫어서, 자존심 상하기 싫어서 초연한 척, 초월한 척하는.. 심적으로 지친 상태라 그럴 수도 있고, 그래서 사람의 온기를 원하는 걸지도.

      그래도 항상 날 붙들어주는 건 어쩌면 내가 하는 이상으로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는 주변 사람들인 것 같아. 늘 감사하게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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