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싫어하는 사람

셋이 길을 가면 그중 둘은 나의 스승이라던가. 확실히 누구든지 사람에게서는 (하다못해 반면교사라도) 배울 것이 있다. 그게 설령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라 해도 말이지.

아니, 어떻게 보면 내가 싫어하는 사람, 썩 느낌이 맞지 않고 감정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이다. 내가 왜 그 사람을 싫어하는가? 하는 질문에 정직하게 답한다면 나에 대해 아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니까.

이 글 (영문)에서 읽었는데, 타인에 대한 적개심은 종종 투사(投射)의 결과라고 한다. 즉, 인정할 수 없는 자신의 충동과 감정을 타인의 것으로 돌리는 방어기제라는 얘기지. 자신에 대해 싫어하는 부분을 남에게서 발견하면 (혹은 발견했다고 생각하면) 자신에 대한 적대감을 타인에게 돌리는 거다.

나와 A는 어떨까? 다른 분이 우리를 가리켜 동종혐오라고 했듯 실제로 내 거부감의 상당 부분은 닮은 데서 나올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나는 A를 차갑고 까칠하다고 생각하는데, 생각해보면 나도 그런 얘기 꽤 듣거든. 사실 난 까칠하다기보다는 내성적인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다면 그 A도 마찬가지일 수 있지 않을까?

투사현상 외에 또 적대감의 원인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사람의 성격이나 특징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A를 대하면서 느낀 것에는 두려움이 상당히 작용한 것 같다. 의견을 말할 때면 언제나 확고하고 절대적인 것 같아서 위협을 느꼈거든. A와는 토론을 해도 늘 실수를 걱정해야 했고, 배울 공간이 없는 것 같았어. 뭔가 새로운 걸 배웠다고 인정하면 꼭 패배하는 것 같아서 말야. 두려움을 인정하기보다는 분노하는 편이 쉬우니까 더 사람 자체를 싫어하게 된 거겠지.

물론 나도 할 말은 많지. 모든 토론은 의견 차이라기보다는 늘 내 잘못으로 몰려가는 기분이었고, 토론을 한다기보다는 늘 뭔가 잘못했다고 윽박지름을 당하는 것 같았거든. 난 대화하고 배운다기보다는 늘 망신당하고 혼나는 걸 두려워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두려움과 적대감은 더욱 커졌고. 전혀 상관없는 얘기를 할 때도 내 정체성 자체를 지켜야 하는 기분인데 그 속에 안심하고 편하게 대화를 나눌 공간이 어디 있었겠어?

이런 두려움과 적개심의 존재는 인정해야겠지. 옳건 그르건 그건 내 감정이고, 부인한다고 사라지지 않으니까. 더 중요한 건 그게 A라는 사람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나 자신의 약함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거다. 정체성 대화에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첫 번째, '나는 유능한가.' 두 번째, '나는 좋은 사람인가.' 세 번째,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가.' A와 토론하며 종종 나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정체성 대화에 대한 부정에 직면했고, 그로 인한 앙금은 쉽게 사라지진 않을 것 같아.

시시비비를 가린다는 말이 '시비건다'는 별로 안 좋은 말이 된 것도 세상에 옳고 그름이라는 게 없어서가 아니라 대개의 대인관계에서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는 식의 시비 가리기는 극도로 비생산적이라서 그런 것 같다. 오직 자신이 다 틀렸고, 나는 무능하고 나쁜 사람이라는 정체성 대화를 순순히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 그리고 그런 굴욕을 상대에게 안겨주고 얻을 게 뭐가 있을까?

오늘도 느꼈지만 이미 이전의 전력이 있어서 그런가, 아니면 정말 성격 차이인가 무슨 말을 해도 서로 어긋나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내가 정체성의 위협을 느낀 만큼 나도 A의 정체성을 위협했던 걸까. 그래서 서로 하는 말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정도가 된 걸지도 모르겠다. 참, 이 무슨 우스운 일이야.

내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적 반응 외에 객관적으로 보자면 A는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에 지대한 기여를 했고, 분석적이고 참신한 접근도 지적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굉장한 창의성과 추진력을 동시에 갖춘 점도 본받을 만하다. 그래서 더욱 A가 나와 맞지 않는 이유를 'A는 나쁜 사람' 정도로 치부할 수 없는 것이겠지.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화두에 대한 내 잠정적인 결론이라면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란 곧 나를, 내 정체성을 위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싫어하는 사람이란 내가 느끼는 두려움의 실체를, 내가 가장 약한 부분을 거울처럼 비추어주는 존재다. 그 거울에 비친 나를 살피는 과정이 고통스럽다 해도, 비춰주는 내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해도 나를 알려고 한다면 피할 수 없는 과정이겠지. 그래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란 곧 나의 스승이다.
2008/03/16 06:26 2008/03/16 06:26
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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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08/03/16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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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비밀방문자 2008/03/16 17:13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2. lhovamp 2008/03/17 11:33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다면 담요맨은 우리의 스승인거군요! (음?)

    호-불호의,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감정적인 문제에 있어서조차 배울 점을 찾는다는 발상이 멋져요. +_+

    • 로키 2008/03/17 21:42  수정/삭제

      저런..(..) 반면교사일지도요? 그리고 아무래도 개인적인 감정에서야말로 저 자신에 대해 배울 게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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