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문제를 다룬 2005년작 영화 크래쉬 (Crash)를 DVD로 본 소감은... 으쓱. 잘 만든 영화긴 하다. 기술적 완성도도 높고, 연기도 대체로 좋고. 역시 무거운 소재를 다룬 군상극인 '매그놀리아'나 '트래픽' (구도는 좀 다르지만 '히트' 역시)의 계보를 잇는 야심작으로 보이지만 감동은 좀 덜하다. 어떤 부분에서는 인물의 사연이나 동기에 대한 조명이 부족했고, 어떤 대목에서는 '지금 관객 갖고 노냐?' 소리가 절로 나오더라. 기교는 좋되 뭔가 허한 영화.
스포일러다.
생각 1: 주제의식과 중심 이미지는 좋았는데, 그걸 꼭 영화 첫 장면 첫 대사에서, 그것도 그렇게 직빵으로 쏴줘야 하나. 그냥 관객이 스스로 발견하도록 시간과 공간을 주었으면 더 좋았을걸. 산드라 불록이 연기한 부잣집 마나님은 오직 그 주제의식을 형상화하기 위해 존재하는 인물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연기는 좋았다.
생각 2: 왜 사람이 그딴 식인지 그나마 공감이 갔던 게 라이언인가 하는 경찰이었고, 징징거리는 부잣집 마나님이나 말도 안되는 억지쓰는 가게주인 아저씨는 솔직히 짜증났다. 분명 나름 사연이 있을만한 인물들인데, 그런 사연들은 관객이 짐작할 뿐 직접 보여준 건 없으니 공감이 덜할 수밖에. 내가 왜 낯선 나라 이민와서 온갖 괄세와 사기에 시달렸을 선량한 가장보다 경찰 직권 이용해서 길거리에서 남의 아내나 만지작거리는 인간말종한테 공감해야 하냐고.
어, 그리고 부잣집 마나님은 영화 내내 찌질거리다가 멕시칸 가정부하고 끌어안고 끝난다 이거지. (그 가정부 아줌마 인상 한번 푸짐하더라. 인디오 피가 강해보였다.) 그걸로 갑자기 용서가 될 것 같냐, 대사의 대부분이 인종차별 아니면 짜증이었는데.
생각 3: 관객 감정 쥐었다 놓기와 반전을 위한 반전. 말했듯 기술이나 기교가 부족한 영화는 결코 아니어서, 감정을 적당히 고조시키고 흥을 돋구는 건 잘한다. 어떤 대목에서는 약간 뻔하긴 하지만 용서할만은 하다. 하지만 관객을 갖고 노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자물쇠 수리공의 어린 딸이 총에 맞은줄 알았던 장면이라든지, 두 경찰의 엇갈린 운명이라든지.
두 경찰에 대해서 말인데, 성인 관객이라면 누구나 세상에는 절대적 악인이나 선인은 없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그 사실을 굳이 관객 머리에 때려박으려고 그렇게 극단적인 결론으로 갈 필요가 있었을까. 인종이 뭐든지 간에 히치하이커 태우는건 하지 말자는 공익광고 역할은 톡톡히 했지.
생각 4: "조진구! 조진구우우우!" 한국 아줌마가 남편 이름을 저렇게 막 부르는 경우도 있나? "아무개 아빠!" 혹은 "진구씨!" 아니려나. 이민 2~3세쯤 돼서 그러려니하고 납득하기에는 영어가 어설펐고 말이다. LA에 한국계가 얼마나 많은데 저거 하나 확인해줄 사람이 없었냐. 그리고 우리의 조진구씨가 당장 가서 캐쉬하라는 수표는 대체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 내 머리로는 납득불능.
그럭저럭 재밌게 본 영화긴 하다. 하지만 묘하게 신경을 긁는데가 있고, 결정적인 부분에서는 좀 부족한 작품. 생각없이 보기엔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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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구! 라고 부를 수도 있죠. ㅋㅋ 남편한테 악감정 있거나, 우습게 보면 그러기도 해요. 제 형은 엄마 보고 심심하면 '아지메'라고 부르는데, 이것도 말 쓰는 법에 잘 안 맞죠? ㅎㅎ
악감정이 있다면 그럴 수 있는데, 보통 병원에 누워있는 남편이 걱정되어서 정신없는 상황에서 쓰는 말은 아니지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