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 그 이후는?

전국을 휩쓰는 촛불 문화제와 시위의 열풍을 외국에서나마 지켜보고 지인에게 이야기를 전해듣는 것은 벅차면서도 조마조마한 경험이다. 벅찬 이유는 (거의) 누구나 느끼고 있는 것이겠지. 국민이 거리로 나서는 모습을 보면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재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지켜보면서 동시에 조마조마하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촛불시위가 감동으로 다가온다고 해도 시위란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활동이며, 확고한 목적이 없이는 추진력을 잃기 쉬우니까. 촛불시위의 끝이 흐지부지하다면 풀뿌리 정치활동 자체에 대한 냉소가 생길까봐 더욱 불안하다.

일단은 쇠고기 수입 문제가 가장 눈에 띄고, 정말 재협상까지 하게 된다면 그건 대단한 승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쇠고기 수입은 이번 정권에 산적한 문제 중 오히려 덜 심각한 편이라고 본다. 광우병에 대한 모든 과학적 증거가 아직 불확실하고, 과연 국산 쇠고기는 안전한가 하는 문제가 남기도 하고.

물론 국민 건강과 생명에 대한 중대한 문제에 국민을 납득시킬 노력조차 하지 않고 밀어붙인 점이 이 정권의 오만을 잘 보여주고 있는 건 사실이고, 정책의 정당성 확보의 총체적 실패의 결과가 지금의 시위라는 점에서 중요한 문제이긴 하다. 그러나 대운하 사업, 포털 사이트와 방송국에 대한 압력과 언론의 자유 문제, 경제적 양극화를 유발할 소득세 개편 문제 등이 오히려 더 심각하지 않을까.

이러한 수많은 사안을 공론화하고, 논의하고, 이들 문제에 대해 압력을 행사할 틀이 되지 않으면 촛불시위는 국민 감정이 가라앉을 때쯤 스러지기 쉽다. 정부의 멋진 과잉반응 덕분에 사람들 뇌리에서 쉽사리 사라질 문제는 아닐 것 같지만. 그래서 촛불시위는 기회이자 위기이며, 한국 정치의 판도를 앞으로 어쩌면 수십년 동안 좌우할 수 있는 이 순간의 원동력이자 상징이다.

결국 '이명박이 싫다'는 것은 매우 공감 가는 감정이기는 하지만(...) 촛불시위를, 그리고 그 이상으로 그 뒤에 있는 풀뿌리 정치운동을 오래 지속하기에는 불충분하다. 단순한 안티 이명박으로 그치는 대신 정책 대안을 제시하고, 이들 대안을 꾸준히 연구하고 공론화하고, 또 이명박 주변에 있는 친일과 군사독재의 잔재, 기업주의, 종교적 극우 세력에 대한 정치적 대안이 되는 후보를 내보내고 당선시켜야 근본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다.

촛불시위는 분명 좋은 시작이지만, 부정 (不正)에 대한 부정(不定)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정의에 대한 긍정까지 가려면 촛불시위는 끝이 아닌 더 폭넓고 종합적인 정치적 노력의 시작이어야 한다. 그 촛불이 허무하게 꺼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면.
2008/06/12 06:42 2008/06/12 06:42
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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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sdee 2008/06/12 13:45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문제의 본질은, 광우병 위험보다 정부의 독선과 밀어붙이기 행정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맥락에서 대운화나 의보 민영화 등 다른 정책에 대해서도, 정부의 일방적 독주를 억제하는 흐름이 이어지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일단 쇠고기 문제라는 대중적 이슈를 명분으로 뭉쳐있기에, 쇠고기 수입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가 걱정됩니다. 다른 이슈에 있어서도 이만큼 일치된 목소리를 낼 수 있을지, 앞으로도 이런 열성적 시위가 이어질 지는 미지수겠지요. 설사 이어진대도 늘 촛불시위가 필요하다면 그것도 바람직하진 않겠죠. 시민단체가 활성화되어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해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했으면 좋겠습니다. 진보 정당, 언론들도 좀더 힘을 얻고요.

    적어도 시민들의 저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현 정부에 시사한 바는 적잖을 거라 봅니다. 정부가 뭔가 좀 배우고 앞으론 좀 달라졌으면 좋겠지만... 지켜봐야겠죠.

  2. Xenosia 2008/06/12 13:43  수정/삭제  댓글쓰기

    앞으로 어떻해야할지 결정하기 힘든가보더라고요.
    어찌되든 촛불시위를 빈 손으로 끝내지는 않을거라고 입을 모으지만요.

  3. 아사히라 2008/06/12 17:43  수정/삭제  댓글쓰기

    6.10일 촛불시위에 참석한 사람으로써 뭔가 현실적인 주장이 부족하다는 것에서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와서 정부의 무리한 정책강행에 반대의사를 표명하는 모습은 보기가 좋더라고요.

  4. 로키 2008/06/13 03:50  수정/삭제  댓글쓰기

    촛불시위의 감동이 민주주의의 꿈이라면 확고한 목적 하에 움직이는 정치적 활동은 민주주의의 현실이며 시민생활이겠지요. 이 꿈을 어떤 현실로 바꾸어가느냐가 결국 우리 저력의 진짜 시험대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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