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넬리


편지: 드디어, 파리넬리.

오늘밤 우리의 오랜 대립이 끝을 맺는구나.

신 앞에서 우리의 빚을 정산하자.

두 사람의 소년기에 형이 약속한 오페라를 기억하는가?

그가 얼마나 흥분하며 오페라 이야기를 했는지?

그것이 네 거세의 고통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그의 울부짖는 양심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는지

의문을 가진 적이 있었는가?

핸델: 이제 진실을 직시할 때가 왔다.

유년기부터 너를 괴롭혀온...

알고 있었으면서 어째서 외면하는가?

너를 거세시킨 형에게 재능을 바쳐왔음을.

형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핸델의 얼굴에 침을 뱉었지.

네가 당한 것과 같은 짓을 나에게 했구나.

나의 상상력을 거세했어.

나는 다시는 오페라를 쓰지 않을 것이다.

너에게 처음 알리는 것이며, 오로지 너의 책임이다.

나에게 빼앗은 노래를 끝까지 부를

힘을 달라고 신께 기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파리넬리.

Farinelli Il Castrato (카스트라토 파리넬리)는 제목 그대로 18세기의 유명한 카스트라토 까를로 브로스키, 예명 파리넬리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아닌만큼 뭐, 허구적 가공은 필연적으로 들어갔지만. 아이팝에서 공짜로 해주길래 보느라 밤늦게까지 감동먹었던 영화이다. (시하야님도 끌어들여서 둘이서 MSN으로 수다떨면서 봤다는 전설이..) 수려한 영상과 아름다운 노래, 배신과 증오를 뛰어넘는 예술혼과 사랑, 마지막에는 용서와 화해로 이어지면서 줄곧 사람을 놔주지 않는 감정선...

특히 한참 옛날 노래들인데도 파리넬리가 초기에 불렀던 형의 노래들과 나중에 핸델의 노래를 부를 때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특별히 클래식에 정통한 것도 아닌데도 기교만 부리고 가벼운 곡과 진중한 감동을 주는 곡은 내가 듣기에도 차이가 났다. 영화에서 핸델이 파리넬리의 적수로 나오지만, 그러면서도 파리넬리의 목소리를 진정 해방시켜준 것도 핸델이었다는 것은 참 역설적.

Venti, Turbini (바람이여, 회오리여) - 1절

Di speranza un bel raggio
Ritorna a consolar l'alma smarrita;
Sì adorata mia vita!
Corro veloce a discoprir gl'inganni;
Amor, sol per pietà, dammi i tuoi vanni!

희망의 서광이 다시 한번
내 요동치는 영혼에 비추게 하라
사랑하는 이여!
나를 기만한 자들을 치러 이제 달려가니
사랑의 큐피드여, 불쌍히 여기어 날개를 달아주오!

카스트라토란 참 여러가지 면에서 경계를 넘나드는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남자가 입을 여니까 소프라노 목소리가 나오는데 한편으로는 소름끼치면서도 얼마나 멋진지... (영화의 목소리는 낮은 소프라노와 테너를 합성했다고 들었다.) 카스트라토가 거세된 남자이면서도 의심의 여지 없이 '남자'라는 점이라든가, 생식력이 없으면서도 성욕도 있고 여자들이 따르는 점이라든지..  (실제로 성욕 자체는 적을지 몰라도 거세된 남자들도 발기도 되고 다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존재가 있을 때 그의 주변에서는 끝없는 갈등과 변화, 경계의 재편성이 있게 마련이다. 파리넬리가 바로 그렇다.

카스트라토의 역사는 의외로 19세기 후반까지도 이어져서, 가장 늦게까지 유지했던 이탈리아가 1870년에 법으로 금지했다. 1902년 레오 13세의 포고로 영원히 교회 음악에서 카스트라토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고 교회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카스트라토 알레산드로 모레스키가 1913년 떠나갔으니, 카스트라토가 사라져 간 것은 아주 옛날 일도 아닌 것이다.

Venti, Turbini - 2절

Venti, turbini, prestate
Le vostre ali a questo piè!
Cieli, numi, il braccio armate
Contro chi pena mi diè!

바람이여 회오리여, 나의 발걸음에
그대들의 날개를 빌려주오
하늘이여 신들이여, 나의 팔을 강하게 하소서
나에게 고통을 준 자들에게 대적하도록!

현대에는 매우 드물게 거세 없이 호르몬관계가 비정상인 카스트라토나 특수훈련을 받아 카스트라토 음역을 내는 가수는 있을지 몰라도 음악을 위해 어린 소년을 거세하는 야만적인 풍속은 사라졌다. (그렇게까지 해도 가수로 성공하는 비율은 극히 낮았다는 점이 또 비극이지만...) 실제로 당시에 카스트라토를 위해 작곡된 곡 중에는 오늘날에는 공연이 불가능한 것도 있다고 들었다.

그럼에도... 비록 잔혹한 야만성의 산물이지만 파리넬리와 같은 위대한 예술가의 목소리를 듣고 그 아름다움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카스트라토를 부자연스러운 존재라고 혐오한 영화 속의 핸델마저도 결국에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니. 비인간적 풍속이, 인간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천상의 목소리는 그 고통의 깊이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진흙 속에 피어난 연꽃처럼...


Lascia ch'io pianga (울게 하소서)

Lascia ch'io pianga mia cruda sorte,
E che sospiri la libertà.

Il duolo infranga queste ritorte
De' miei martiri sol per pietà.

울게 하소서
나의 고통스런 운명에
한숨으로 나는
자유를 갈구하나니

이 고통으로 인하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어
이 환난의 사슬이
끊어지기 간구하나이다
2006/11/22 03:48 2006/11/22 03:48
로키
분류없음 2006/11/22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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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krdmswkddls 2007/05/21 16:23  수정/삭제  댓글쓰기

    ggg

  2. 김도클 2009/11/04 04:21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좋은 글 쓰셨네요.
    많은 도움이 되었고 재미있고 유익한 글이었습니다.
    동영상도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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