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쓰는 것

요즘 심심할 때마다 끄적끄적 쓰는 소설의 한 장면. 전체 얘기의 구성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이 있지만 가끔 이런 장면들은 마음에 든다. 중세 유럽에서 귀족 아이들을 서로 피후견인으로 보내던 풍속은 여러모로 흥미로워 보인다. 마치 하나하나가 가문의 희망과 이권과 동맹의 약속을 실은 씨앗이 되어 바람에 흩어지는 걸 지켜보는 기분이랄까.

이건 여러모로 현대화된 판이긴 하지만 (그때 여자 나이 열넷이면 약혼자를 만날 나이가 아니라 대충 식 올릴 때기도 하고, 귀부인이 남편한테 버럭버럭 화내는 것도 좀 무리가 있어 보이고, 테레온은 너무 부드럽고 현대적인 남성상이고), 어쨌든 '중세가 아니라 판타지니까~' 하며 빠져나갈 구멍은 있는 셈이다. 이래서 판타지란 여러모로 편리한 매체라니깐.


“어째서죠!”

“진정해요, 시엔나.”

테레온은 시엔나의 어깨를 붙들었지만, 시엔나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진정 못해요! 어째서 케일리를 스킬트 성에 보내겠다는 거예요!”

“열넷이면 그 아이도 이 변방지역을 벗어나서 다른 젊은 숙녀들과도 어울리고, 좀더 세련된 교육을 받을 때가 됐소. 늘 믹과 테오하고만 어울리느라고 애가 점점 선머슴이 돼가잖소. 게다가 스킬트공의 맏아들 에일란과 만날 기회-”

“진짜 이유를 내가 모를 것 같아요? 차라리 테오를 보내요. 어차피 남자아이를 떠나보내는 게 더 일반적이니까! 케일리는 안돼요. 테오와 떼어놓느라 나하고도 떼어놓을 참인가요?”

“그 생각을 내가 못했을 것 같소?”

테레온은 양손으로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지끈거리는 두통이 시작되고 있었다.

“하지만 테오는... 테오를 멀리 보내는 건 위험하다는 건 당신도 잘 알잖아. 발세라 영지의-”

“그놈의 발세라 영지! 이제 지겨워요! 그 땅덩어리 때문에 대체 얼마나...!”

“여보...”

“그 때문에 억지로 테오를 태어나게 만들고... 우리는 레오닌 발세라의 애를 키우고... 이젠 내가 우리 애를 못봐야 하는 건가요?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시엔나는 지금 감정이 격한 상태라고 테레온은 자신에게 상기시켰다. 비록 레오닌 발세라의 씨라 해도 테오는 그 어미의 아들이기도 했고, 부모가 누구인지를 떠나서 나서부터 받아 키웠던 아이에 대한 정은 아들과 별반 다름이 없다는 것을.

“시엔나, 이성적으로 생각해요. 케일리를 보내지 않으면, 스킬트 공의 후계자인 에일란을 안스로벤으로 데려올 수는 없잖소. 모르는 사람에게 케일리를 가축처럼 팔아넘기고 싶진 않아. 이건 둘이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기회가 될 거요.”

“알아요... 이유가 넘치도록 많은 건 아는데...”

목소리가 떨려오자 시엔나는 그에게 등을 돌리며 얼굴을 서둘러 닦아냈다. 테레온은 그 뒷모습을 아프게 보다가 다가가서 허리에 팔을 둘렀다.

“미안해...”

“아녜요. 화내서 미안해요...”

그는 아내의 머리칼에 얼굴을 묻고 그 포근하면서도 매혹적인 향내를 들이쉬었다. 그의 손을 쓸어주던 아내는 고개를 돌려 그와 이마를 맞대며 떨리는 소리로 속삭였다.

“하지만 케일리... 우리 케일리 못봐서 어떡해요? 우리 딸 없이 나 어떻게 살죠?”

조용히 가슴이 찢어지는 것을 느끼며 테레온은 아내의 뺨에 반짝이는 눈물자국을 입술로 지웠다.

“자주 부르고... 우리도 찾아가고... 당신도 찾아갈 수 있으니까. 한 계절이나 두 계절에 한번은 꼭...”

“하지만 매일 보는 것하곤 다르겠죠.”

아내는 조용히 흐느끼며 그의 가슴에 고개를 기댔다.

“아침마다 일어나서 그 환한 얼굴을 보는 것하곤...”

“응.”

그는 아내의 머리에 턱을 대고 꼭 끌어안았다. 마치 시간의 잔인함이 닿지 못하게 온몸으로 감싸기라도 하듯.

“미안해...”

“아녜요. 언제까지나 어린아이가 아닌 걸요. 애들은 커가는 거니까...”

그렇게 두 사람은 오랫동안 서로의 체온을 붙들고 서 있었다. 그들의 아이들이 자라서 남자와 여자가 되고, 각자 자신의 아픔과 불안을 안고 세상에 마주해야 하는 그 참혹한 고통을 나누며.
2007/02/26 01:15 2007/02/26 01:15
로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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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없음 2007/02/26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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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ihaya 2007/02/28 10:44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후후... 요새는 글 쓰는 사람만 보면 모종의 프로젝트(...)에 끌어들일 수 없을까 하는 생각밖에 안들어요.. (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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