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내밀지 않으면.
손을 내밀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어.
이메일을 쓰지 않으면, 예약을 하지 않으면, 물어보지 않으면, 전화를 하지 않으면, 신청을 하지 않으면, 문자를 보내지 않으면, 부탁을 하지 않으면.
가만히 있는데 누가 뭘 갖다줄 리가 없지. 내게 필요하고 소중한 모든 것은 나에게서 시작하니까.
오래 전, 브라이언 올디스 (Brian Aldiss)의 SF 단편인 일종의 예술 (A Kind of Artistry)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이야기 자체는 그저 그랬지만 (중학생에게 딱히 재미있을 내용이 아니었을지도), 어느 한 대목의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2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그 골자는 기억하고 있다. 남들이 자신을 오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고 주인공이 다소 놀라는 얘기였는데, 기억을 더듬자면 대충 이렇다.
저 대목을 읽고 그렇게까지 충격을 받았던 건 역시 자신의 모습이 겹쳐서였겠지. 그리고서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별로 발전이 없다니, 하아.
먼저 손 내밀지 않는 것은 남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라 하더라도, 이유가 무엇이든 일종의 오만이다. 적어도 결과는 비슷하다. 교류와 공유의 거부.
두려움... 이 대목에서는 영화 예스맨 (Yes Man) 주인공의 대사가 생각난다. 난 타인에게 줄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내 상태가 그런 식이다. 아니, 평생 그런 식이다. 내가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걸 이성적으로는 알아도 믿지는 못한다. 사람이 자신이 죽을 것을 알지만 믿지는 못하듯이.
아직도 난 뭔가 야단맞고 (별로 심한 것도 아니었는데) 유치원 반 앞에서 엉엉 울던 꼬마이고, 아버지의 분노 앞에서 반발심과 자기혐오 사이에 얼어붙은 아이이다. 뭘 하든 내가 하면 잘못할 거라는 두려움은 늘 끈질기게 따라붙고, 내 생각과 판단, 감정은 다 틀렸다는 확신은 내면의 목소리가 되어 함께한다.
(그동안 잘해온 것들은 사실 정말로 잘한 게 아니라 운이거나 속임수이거나 애당초 별거 아닌 일이라서야. 실체가 드러나서 실망과 비웃음에 노출당하기 전에 빨리 실패해버리는 게 좋겠지, 하고 속삭인다. 감당하지 못할 데까지 올라가지 말고. 얼마나 멀리 떨어지려고? 결국 미끄러질 테니까. 미끄러질 거야.)
그 목소리가 뿌리박고 자리잡도록 허용한 건 자신이다. 아마도 편안해서겠지. 어려운 것은 아마 할 수 없을 거야 하고 포기할 수 있고 (유행하는 말마따나 '난 아마 안 될 거야'), 실패하면 난 원래 그러니까 하고 치부해버릴 수 있다. 그 속에는 불편한 안주가 있을 뿐, 자신과 대면하고 삶을 연마해가는 용기는 없다.
실제로 할일을 미루는 습관과 낮은 자존감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당연히 그렇겠지. 하면 잘못할 거라는 두려움 앞에서 누가 선뜻 행동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미루는 자신을 미워하는 악순환을 계속하겠지.
그러니까 난 못해~ 하는 편안하고 지저분한 보금자리는 슬슬 걷어버려야 하지 않을까. 잘 안 되면 왜 안 됐나 생각하고 깨달아서 다시 하면 된다. 잘못하면 깨끗이 인정하고 더 잘 하면 된다. 사람인데 처음부터 다 잘 할 수가 있나. 그러지 못한다고 자신을 몰아붙여선 안 된다. 그건 경험의 아픔에 자신을 닫아버리는 두려움이며, 또 오만이니까.
좀 더 겸손하게, 덜 두려워하며, 좀 더 열심히 살고 싶다. 일을 내고, 좌충우돌 실수하고, 혼도 나고, 그러면서 배우고 싶다. 그러려면 손을 내밀자. 그러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으니까.
이메일을 쓰지 않으면, 예약을 하지 않으면, 물어보지 않으면, 전화를 하지 않으면, 신청을 하지 않으면, 문자를 보내지 않으면, 부탁을 하지 않으면.
가만히 있는데 누가 뭘 갖다줄 리가 없지. 내게 필요하고 소중한 모든 것은 나에게서 시작하니까.
오래 전, 브라이언 올디스 (Brian Aldiss)의 SF 단편인 일종의 예술 (A Kind of Artistry)을 읽은 기억이 난다. 이야기 자체는 그저 그랬지만 (중학생에게 딱히 재미있을 내용이 아니었을지도), 어느 한 대목의 인상이 너무 강렬해서 2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그 골자는 기억하고 있다. 남들이 자신을 오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알고 주인공이 다소 놀라는 얘기였는데, 기억을 더듬자면 대충 이렇다.
그는 자신이 수줍음을 탄다고 생각했지 오만하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쩌면 양자는 통하는 데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자신을 내어주고 타인과 공유하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이니까.
저 대목을 읽고 그렇게까지 충격을 받았던 건 역시 자신의 모습이 겹쳐서였겠지. 그리고서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별로 발전이 없다니, 하아.
먼저 손 내밀지 않는 것은 남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라 하더라도, 이유가 무엇이든 일종의 오만이다. 적어도 결과는 비슷하다. 교류와 공유의 거부.
두려움... 이 대목에서는 영화 예스맨 (Yes Man) 주인공의 대사가 생각난다. 난 타인에게 줄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내 상태가 그런 식이다. 아니, 평생 그런 식이다. 내가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걸 이성적으로는 알아도 믿지는 못한다. 사람이 자신이 죽을 것을 알지만 믿지는 못하듯이.
아직도 난 뭔가 야단맞고 (별로 심한 것도 아니었는데) 유치원 반 앞에서 엉엉 울던 꼬마이고, 아버지의 분노 앞에서 반발심과 자기혐오 사이에 얼어붙은 아이이다. 뭘 하든 내가 하면 잘못할 거라는 두려움은 늘 끈질기게 따라붙고, 내 생각과 판단, 감정은 다 틀렸다는 확신은 내면의 목소리가 되어 함께한다.
(그동안 잘해온 것들은 사실 정말로 잘한 게 아니라 운이거나 속임수이거나 애당초 별거 아닌 일이라서야. 실체가 드러나서 실망과 비웃음에 노출당하기 전에 빨리 실패해버리는 게 좋겠지, 하고 속삭인다. 감당하지 못할 데까지 올라가지 말고. 얼마나 멀리 떨어지려고? 결국 미끄러질 테니까. 미끄러질 거야.)
그 목소리가 뿌리박고 자리잡도록 허용한 건 자신이다. 아마도 편안해서겠지. 어려운 것은 아마 할 수 없을 거야 하고 포기할 수 있고 (유행하는 말마따나 '난 아마 안 될 거야'), 실패하면 난 원래 그러니까 하고 치부해버릴 수 있다. 그 속에는 불편한 안주가 있을 뿐, 자신과 대면하고 삶을 연마해가는 용기는 없다.
실제로 할일을 미루는 습관과 낮은 자존감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당연히 그렇겠지. 하면 잘못할 거라는 두려움 앞에서 누가 선뜻 행동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미루는 자신을 미워하는 악순환을 계속하겠지.
그러니까 난 못해~ 하는 편안하고 지저분한 보금자리는 슬슬 걷어버려야 하지 않을까. 잘 안 되면 왜 안 됐나 생각하고 깨달아서 다시 하면 된다. 잘못하면 깨끗이 인정하고 더 잘 하면 된다. 사람인데 처음부터 다 잘 할 수가 있나. 그러지 못한다고 자신을 몰아붙여선 안 된다. 그건 경험의 아픔에 자신을 닫아버리는 두려움이며, 또 오만이니까.
좀 더 겸손하게, 덜 두려워하며, 좀 더 열심히 살고 싶다. 일을 내고, 좌충우돌 실수하고, 혼도 나고, 그러면서 배우고 싶다. 그러려면 손을 내밀자. 그러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으니까.
tags :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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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31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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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와 반갑습니다~~ 저도 정말 그런 상태에요. 우리 함께 힘내봐요! ㅠㅠ
지른 다음에 생각합시다!
그럴 수 있어야 하는데..ㅠ
저도 비슷하게 잔뜩 움츠러들어 있을 때가 많아요. ^^; 다같이 극복해나가며 멋지게 살도록 하죠 ㅎㅎ
맞아맞아~ 서로 힘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