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틸러의 삶과 죽음
5월 31일 미국 캔자스에서는 낙태 시술 의사 조지 틸러 (George Tiller)가 평소 다니는 교회에서 총격을 당해 향년 67세로 숨졌다.
낙태를 시술하는 의사가 또 살해당했다는 사실 외에도 낙태의 자유를 주장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 양측에 틸러의 존재는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그는 미국에서 임신 20주 이후의 낙태를 시술하는 단 세 명의 의사 중 하나였기에.
20주 이후의 임신 3분기 태아는 매우 성장한 상태이며, 모체 외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경우도 있으므로 가뜩이나 예민한 낙태 사안 중에도 더욱 첨예한 대립이 있는 사안이다. 그래서 틸러의 클리닉은 유달리 심한 시위에 시달렸고, 그는 1993년에 양팔에 총격을 당하기도 했으며, 스토킹을 당하다가 연방 수사관 경호를 근 3년 받았고, 형사소송을 당했다가 무죄 판결이 나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은 교회에서 가족과 친지 눈앞에서 살해당했다.
극심한 시위와 협박에 시달리면서도 그가 일을 계속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돈이 벌리는 것도 분명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훨씬 안전한 일도 많은데도 굳이 낙태 시술을 계속했던 이유를 그는 '여성들에게 내가 필요해서'라고 말했다.
낙태 클리닉과 시술자, 직원에 대한 시위와 폭탄 테러와 암살은 확실히 효과가 있어서, 미국에서는 낙태를 가르치는 의과대학도 줄어들고 있고 그 수많은 어려움을 견디면서 굳이 낙태를 시술하는 의사도 줄고 있다. 결국 낙태 반대론자들은 어느 정도는 성공한 셈이다. 낙태를 살인으로 규정하지는 못했지만 낙태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만드는 데는 성공했으니까.
그래서 틸러의 죽음은 (살해행위 자체를 비난하면서도) 낙태 반대론자들에게는 승리이다. 적어도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틸러에게 살해당하는 태아는 그만큼 줄어들었을 테니까. 그러나 과연 그럴까? 여성을 위한다는 틸러의 말은 그저 위선에 지나지 않았을까?
낙태를 법으로 금지해서 정말로 태아를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태아가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산모의 몸속에 있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그 존재를 숨기기도 쉽고, 아무도 모르게 처리할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로 낙태가 불법을 통해 음성화되면 여자들은 낙태를 포기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수가 몰래 아이를 떼려고 한다. 여자들이 아이를 떼는 건 '심심한데 낙태나 해볼까' 하는 심리가 아니고 도저히 낳을 수가 없는 것이므로 합법이든 불법이든 낙태를 선택하는 거다. 다만, 불법이면 불법 시술자에게 위험하고 비위생적인 시술을 받는 차이가 있다.
그래서 의사가 시술하는 합법적인 낙태는 태아를 죽이는 게 아니라 산모를 살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미래에 아이를 낳기로 선택한다면, 미래의 아이 또한 살리는 행위이다. 태아가 불법으로 위험하게 낙태당한다고 해서 안전하게 의사에게 낙태당하는 것보다 뭐가 나을 게 있는가? 그저 임신한 여성, 그리고 그 여성이 미래에 낳을 수 있을 아이들만 위험해질 뿐이다. 나는 이게 낙태 불법화 주장의 최대 허점이며 도덕적 공허라고 본다.1
그래서 조지 틸러는 여성들에게 자신이 필요하기에 아무리 위험해도 그만둘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총을 맞아도, 가족까지 협박에 시달려도, 클리닉을 요새화해야 할 정도로 시위와 테러 위협이 극심해져도. 그의 사무실 벽에는 환자들의 감사 노트가 즐비하다고 한다. 틸러는 낙태 일을 가리켜 젊음을 앗아가고, 피가 마르도록 지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자신을 필요로 하는 여성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다고 했다.
틸러에게 3분기 낙태 시술을 받은 한 여성의 이야기가 있다. 9년 전, 미리엄 클라이만은 29주 된 태아의 두뇌에 심각한 이상이 있어서 태내에서, 혹은 출산 직후에 아이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죽어가는 아이를 도저히 두 달 동안 태내에 품고 있을 수 없었던 그녀는 그렇게 늦은 낙태를 시술하는 사람은 없다는 의사에게 빌다시피 해서 틸러의 이름을 받았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극렬한 시위대를 뚫고 틸러의 요새와 같은 클리닉에 들어가 시술을 받았고, 떼어낸 태아를 집으로 데려와 장례를 치러주었다. 지금 그녀는 두 아들의 어머니이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에게 무엇이 옳은 선택이었는지 타인인 우리가 어떻게 얘기할 수 있는가? 어차피 죽을 아이인데 굳이 수술까지 해서 떼어냈어야 했냐고 욕할 수 있는가? 두 달 동안 몸 속에서 아이가 죽기를 기다리며 (그리고 태내에서 죽었으면 어차피 떼어냈어야 했다) 서서히 피가 마르는 게 어머니로서 그녀의 의무였을까? 결국 참지 못하고 낙태가 불법인 나라에서 몰래 불법 수술을 받고 그녀가 감염으로 죽거나 자궁을 들어내서 지금의 두 아들도 영영 태어날 수 없게 되는 땅이 낙태 반대론자들의 유토피아겠지.
사람에 따라서는 남은 두 달만이라도 임신한 채 작별인사를 하기 원했을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은 클라이만과 마찬가지로 그 상황을 견딜 수가 없다. 어느 쪽이 옳은지 그녀 자신과 가족이 아닌 누가 정하는가? 그리고 아이가 생긴 것을 뒤늦게서야 안 여성에게, 역시 무엇이 옳은지 타인이 정해줄 수 있는가? 도저히 아이를 낳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된 여성에게는? 누가 그 결정을 내리는가?
조지 틸러는 여성에게 그 결정을 내릴 권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자의 손에 살해당했다. 반 낙태 단체들은 이 살인을 정죄하면서도 조지 틸러는 대량학살자였다고 강조한다. 천하의 어리석은 바리새인들, 독사의 자식들, 회칠한 무덤 같은 자들. 조지 틸러는 아기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살리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사실 여성을 돕는 것은 조지 틸러를 죽인 자와 그 사상적 동지들에게는 아기를 학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니 더 무거운 죄이겠지. 여성이 안심하고 건강하게 사는 세상은 권위주의적 통제가 설 곳이 없는 세상이니까. 여성과 섹스를 두려움과 죽음의 위협으로 통제하는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억압적 종교·정치적 권력의 근간이었기에.
그리고 그 통제가 약해져가는 것은 권위주의자들에게는 한없이 두려운 일일 것이다. 공포와 미신, 증오가 가득한 그들의 세상이 죽어가는 시대에 그들은 이렇게 폭력으로 맞서 싸우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해도 몰려오는 현대화와 세속화의 파도를 막을 수는 없다는 점이 그들의 비극이다. 그 싸움의 과정에서 조지 틸러처럼 용기있는 사람이 희생당했다는 사실은 더 큰 비극이고.
링크
이전에 썼던 낙태 자유화 찬성 글
낙태 반대운동의 결과 - Unborn in the USA 혹은 Lake of Fire (다큐멘터리)에서 들었다
Footnote.
- 물론 낙태 불법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우선순위 여성 건강이니 생명이니 하는 기능론적 혹은 공리주의적 사고가 아니라 감히 애를 떼려는 더러운 X들이 합당한 대가를 치르는 거니까--감염으로 죽건, 자궁을 들어내건 죄없는 생명을 죽인 대가인 거지--징벌적 사고의 관점에서 본다면 허점은 아니다. 코미디언 조지 칼린이 말했듯 낙태 불법화의 발로는 친생명이 아니라 반여성이다.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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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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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관련 다큐 검색하다 알게 되었는데요. 님 레이크오브파이어라는 다큐 혹시 어디서 구해볼 수 있을까요? 제가 다큐를 준비중인데 꼭 알고 싶습니다. http://blog.naver.com/kkokkamhy
제 블로그인데 여기에 답변 주실 수 있을까요? 굽신굽신..